[이상호의 경제서평] 경제회복은 묘약은 '전쟁' 아닌 '개혁'


■ 전쟁 이후의 미국 경제
(김인영 지음/21세시 북스 펴냄)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이번 전쟁은 9ㆍ11 테러와 직접 연관이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국가는 거의 없다. 이라크의 풍부한 석유, 갈수록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미국 경기 등도 전쟁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적 이유가 정치 외교 군사적 요인 못지않게 크다는 이야기다. 다만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전쟁 이후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회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책 제목 밑에 붙어 있는 ‘불황은 계속된다’라는 문구가 한 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서울경제 뉴욕특파원인 저자의 ‘월 가에서 보내는 현장 리포트’인 이 책은 ‘전쟁으로도 나아질 수 없는 미국 경제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우 교수는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임이 입증되었고, 따라서 갑자기 침몰할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기 사이클이 사라지는 ‘신 경제’에 돌입했다는 것으로,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대변했다.

그런 미국 경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보통신(IT) 분야의 거품이 꺼진 것이 계기였다. 1999년 11월17일, 뉴욕에서 국내 기업인 두루넷의 상장식이 거창하게 열렸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첫 나스닥 직접 상장이었다. 하지만 두루넷은 2003년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저자는 이러한 두루넷의 흥망에서 뉴욕 증시가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가 급격히 꺼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고 있다.

미국 경제는 일본을 닮아 가고, 경제 대통령이라는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은 불신을 받고 있다. 부시 정부는 능력이 의심스럽고, 감세 등 부자만을 위한 정책이 판을 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엔론 사태를 비롯한 각종 회계 부정이 줄을 잇고, 사회 전반에 걸쳐 신용은 크게 추락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미국 경제 문제가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미국이 겪고 있는 경기 침체는 지난 10년간의 장기 호황 후에 오는 구조적인 현상이며, 미국 자체의 개혁 없이는 근본적인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내부의 근본적 개혁보다는 제국주의적 면모를 강화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하려고 했으며,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테러 이후에 증폭된 미국인들의 애국 열기라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가라고 저자는 묻는다. 어쩌면 이 부분이 저자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우리에게도 더 관심거리일지 모른다.

저자가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붙인 이 부분은 경제 주권 회복으로부터 시작한다. 증권시장이 외국인에게 놀아나고 있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여의도 증시가 우리의 것이며, 그곳을 통해 한국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자존심을 쌓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처음부터 상당히 규범적이다. 원론적으로야 지극히 맞는 말이지만, 돈 앞에서 과연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가질 지는 의문인 것이 우리의 실정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한국에서 오는 신문을 넘기면 정신이 아찔하다’고 밝히고 있다. 서로 할퀴고 싸우는 정치 기사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경제가 무너지면 정치도 없고, 여도 야도 없게 되는 무서운 원리가 90년 이후 국제 사회에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정치인들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정치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한탄한다.

우리가 노키아에서 배울 점은 강소국 논리가 아니라 세계화의 이점이라는 주장은 유행처럼 되어버린 강소국 논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인 휴렛패커드와 컴팩의 합병을 놓고 서울과 뉴욕 증시가 정 반대의 반응을 보였다는 지적 또한 우리의 투자 행태를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통일을 준비하는 경제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이 책은 전쟁 후 미국 경제에 대해 단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가 다소 부족한 것이 흠이다. 지금까지 미국 경제의 행태로 보아 기본 흐름이 바뀌기는 어렵다고 해도, 전쟁 종료 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구체적 실증적 분석 없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수준의 비판에 머문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 한국 경제를 보면서 느낀 안타까움의 토로에 그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호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3/04/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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