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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카족', 질주본능 "중앙선은 없다"

[르포] '폭카족', 질주본능 "중앙선은 없다"

즉석 부킹후 곡예운전, 판돈 내건 그들만의 레이스도

‘빠라바라바라밤~’

여의도 수난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밤이면 밤마다 인근을 질주하는 ‘폭카족’ 때문이다. 폭카족이란 오토바이 폭주족의 업그레이드 버전. 폭주 자동차족이다. 이들은 나이트클럽 네온사인 못지않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후 중앙선을 넘나들며 맘껏 속도를 즐긴다. 이들의 머리 속에는 안전이라는 단어가 없다. 운전이라기 보다는 곡예를 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인근 주민들은 아무 죄 없이 이들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고 있다. 안전사고의 위험도 폭주족 보다 더 높다. 게다가 최근에는 레이스를 통해 대포차 경매나 원조교제까지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어 관계 당국의 단속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주말 밤 11시 한강 둔치. 원효대교 아래쪽에 위치한 주차장으로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최근 여의도 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폭주 자동차족이다. 이들은 차에서 내려 무언가를 상의하더니 주차장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룹을 이끈 차량은 경찰차에서나 볼 수 있는 마이크를 장착한 그랜저 차량. 문제의 자동차가 출발하자 뒤로 수십여대의 차들이 따라 붙는다. 리더 차량 위로는 상반신을 반쯤 내민 한 남성이 형광봉을 흔들며 후미 차량을 지휘하고 있다.

굉음에 가까운 소음을 내며 이동한 곳은 마포대교 남단. 여의도 공원 좌측의 대로가 이들의 최종 집결지다. 도착한 자동차 중에는 고급 외제 자동차도 간간이 눈에 띤다.


배보다 큰 배꼽

그러나 대부분은 국내 자동차를 개조한 이른바 ‘튜닝카’. 차량 안팎에는 갖가지 네온 장식이 붙어 나이트클럽 네온사인을 무색케 한다. 치장이 화려해야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멋있는 차일수록 인기가 좋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씨(23)는 “이곳 저곳을 손보다 보면 수백만원 정도는 우습게 깨진다”며 “일부 마니아들은 외제차의 엔진을 얹어 개조 비용만 차값을 뛰어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폭카족들이 모인 장소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십여명의 여성들이 몰려와 자동차를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은 진한 화장을 한 채 정장을 입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쳐다보면 어린티가 난다.

이들이 이 곳을 찾은 목적은 단 한가지. 화려하게 꾸며진 자동차에 올라 무한질주의 스릴을 만끽하는 것. 때문에 일부 성급한 여성들은 길가에 주차된 차들에 동승을 시도하다 퇴짜를 맞기도 한다.

후미 차량이 도착하자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다. 선두 차량을 따라 수십여대의 차량이 여의도 공원 인근의 대로를 따라 줄달음을 친다. 다른 차량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는가 하면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간다.

경찰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단속을 하기는 하지만 이들을 쫓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속도가 워낙 빨라 순찰차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순찰차가 따라붙었다가는 보란듯이 속도를 올려 주변의 교통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차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도 있다.

폭카족들이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을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스릴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한결같은 대답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모씨(24)는 “솔직히 운전석에 앉기 전에는 겁나는 게 사실이지만 핸들을 잡는 순간 이전의 공포는 사라진다”며 “따라오던 경찰차가 포기하고 돌아갈 때가 가장 짜릿하다”고 설명했다.


대포차 경매ㆍ교환 등 불법도

여자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강남의 ‘야타족’처럼 여성들을 태운 뒤 하룻밤 즐긴다는 것이다.

이씨는 “보통 인터넷을 통해 모임을 공지하는데 이 글을 보고 찾아오는 여성들이 꽤 된다. 이들의 목적은 어떻게든 차에 동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냥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중에는 집을 나왔거나 나이 어린 미성년자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레이스 중에는 절대 옆자리에 사람을 태우지 않는 게 이들의 철칙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옆자리에 누가 있으면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을 태우는 것은 한강 둔치의 소로를 따라 시운전을 할 때와 레이스가 끝난 후다.

몇몇 폭카족들은 단순히 스피드만 즐기지 않는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불순한 의도를 가진 폭카족의 경우 대포차 경매를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한다. 요컨대 자동차의 성능을 선보인 후 즉석에서 다른 차와 교환하거나 경매를 한다는 것이다.

거액의 판돈을 건 내기 경주도 빈번하다. 목적지를 정하고 일제히 출발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판돈을 가지는 게 경주 방식. 이들은 카메라에 찍히거나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번호판을 바꿔 달거나 아예 떼어버리기까지 한다는 게 경찰측의 귀띔이다. 경찰은 “상당수 폭카족들이 거액을 걸고 자동차 경주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새벽에 자유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보통 도박 레이서들이다”고 설명했다.

통일동산 모임에는 전국에서 몰려들어
   
폭카족들이 여의도 일대를 주름잡고 있지만 통일동산에서 벌어지는 경주에 비하면 ‘몸풀기’에 불과하다. 한 자동차 마니아에 따르면 통일동산에서는 정기적으로 비공식 자동차 경주가 벌어진다.

경주가 열리는 날에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스피드광은 다 모인다. 스피드 마니아들에게 있어 이날은 일종의 축제일과도 같다. 대로를 따라 수백대의 차량이 정렬하고 있어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할 정도다.

경기는 보통 극도의 보안 속에서 진행된다. 때문에 경기 일정이나 장소도 회원들만 알고 있는 비공개 사이트를 통해 공지된다. 이곳을 찾는 자동차의 면면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벤츠, BMW, 아우디 등 고급 외제차는 다 끼어있다. 세계에서 얼마 생산되지 않은 희귀 차종도 가끔 참가한다.

그러나 성적이 자동차 가격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경기에 참가한 적이 있는 마니아의 설명. 국산 자동차 중에도 외국차를 누르고 우승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까지 우승한 국산종은 뜻밖에도 엘란트라와 크레도스 택시.

그는 “지난번 경주에서는 엔진을 개조한 엘란트라가 포르쉐와 BMW를 꺾고 우승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며 “올해도 마찬가지로 통일동산에서 열리지만 자세한 위치나 일정 등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

입력시간 2003/04/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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