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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 법] 영원한 배우로 사는 우연정

[이 여자가 사는 법] 영원한 배우로 사는 우연정

영화같은 삶, 세상앞에 다시 서다

“주책스러울 정도로 신이 나요. 제 전화 한 통에 바쁜 일정을 팽개치고 달려온 많은 분들을 보니 가슴이 벅차요. 다리를 절단하고 이혼했을 때, 세상 사람 전부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지요. 모두 나를 버리고 갈 줄 알았는데…”

4월 7일~11일 한국영상자료원이 개최한 ‘한국영화 명배우 회고전’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온 ‘각선미의 여왕’ 우연정(54)이 초대됐다.

1970년대 빼어난 몸매와 미모로 남정임ㆍ윤정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대표작 5편이 상영되는 자리였다. 첫 날 그녀의 자전적 삶을 영화로 만든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를 상영하기에 앞서 마련된 축하 리셉션.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김수용, 영화감독 이장호, 탤런트 이정길 등 영화계 관계자들과 디자이너 루비나 씨 등 절친한 동료 100여 명이 모인 축하연에서 그녀는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뒀던 눈물을 끝내 쏟아냈다. “이렇게 화려한 자리에 다시 서게 될 줄 몰랐어요. 벅찬 감격의 감정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행복이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예고와 숙명여대 무용과를 다니며 발레리나를 꿈꾸었던 우씨는 1971년 노진섭 감독의 영화 ‘사랑을 빌립시다’로 데뷔해 이듬해 ‘나와 나’로 모든 배우들이 꿈꾸는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명문대학을 나온 재원이라는 점과 발레리나라는 흔치 않은 직업, 스타킹회사가 주최한 ‘제 1회 전국 각선미 대회’ 입상 경력 등이 그녀의 주가를 한껏 높여주었다.

1980년도 이원세 감독의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를 찍기까지 10년 동안 10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하며 절정의 인기가도를 달렸다.


생을 지탱시켜준 세딸

남부러울 것 없이 톱스타로 군림하던 그녀에게 불행의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목욕 중에 다리에 난 종기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세 차례나 거듭된 수술을 받다가 골수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은 임신 6개월의 시점.

‘다리 절단’과 ‘임신 중절’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줬던 한쪽 다리를 통째로 들어내고 말았다.

“한창 젊은 나이에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남들보다 빼어나지는 않더라도 그저 건강한 두 다리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수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했죠. 인생의 모든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갈 것 같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그래도 뱃속의 아이만은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이 저를 버티게 해주었어요.”

다리를 절단하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항암 치료를 받는 와중에 태어난 첫 딸 민들레(22)는 그녀 삶의 커다란 희망이었다. 3.3kg의 건강한 아이를 보는 순간 그녀는 감격에 숨이 멎는 듯했다. “세상살이에 완패 당했다고 절망해 있던 저에게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었어요. 딸 아이의 엄마로서 새 삶이 열린 거죠.”

이후 지속된 항암제의 보충 치료로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지만 그녀는 기적처럼 연이어 민나리(20)와 민비(19)를 출산했다.

세 딸은 이제 모두 한 눈에 띄는 미모를 가진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했다. 특히 큰 딸 민들레는 전성기의 우씨를 꼭 빼닮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6년 동안 러시아에서 발레 수업을 받고 그녀의 뒤를 이어 발레리나로서의 꿈을 키워온 것까지 흡사하다. 그런 맏딸이 느닷없이 귀국해서 연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심하게 나무라며 반대했다.

“힘든 길이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당연히 말리고 싶었죠. 연예계는 최고가 아니면 살아 남지 못하거든요. 정상에 대한 집념이 사람을 얼마나 피마르게 하는데요. 오죽하면 다리를 절단하고 나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그 무서운 집착에서는 벗어났다고 안도했겠어요. 하지만 딸이 끝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더라구요.”

지난해부터 CF모델로 활동해온 민들레는 본격적인 연예계 데뷔를 앞두고 있다. 우씨는 “친분이 있는 유명 감독과 연예 관계자들에게 냉정하게 딸 아이를 평가해달라고 했더니 연예인으로서 완벽한 몸매와 재능을 갖췄다. 더 이상 말리지 마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대견해 한다. 수원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막내 딸 민비도 연기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굴곡진 엄마인생은 닮지 말았으면

“민들레는 생후 6개월 때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영화에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어릴 때부터 카메라를 자주 접했어요. 5살 무렵에는 아이가 갑자기 안 보여서 뒤돌아보면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앉아 있곤 했죠. 무려 하루에 10번이나요.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녀는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면 영화 배우 시절에 입던 옷을 꺼내 수선하곤 한다.

애정을 듬뿍 담아 딸들이 입을 옷을 손수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딸들이 서로 수선한 옷을 입겠다고 우길 만큼 인기 만점”이라며 흡족해 한다. “옷은 비록 엄마의 것을 입어도, 굴곡진 인생까지 따라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디 엄마의 좋은 점만 옮아가기를 간절하게 바라죠.”

현재 인천에서 세 딸을 홀로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이혼과 재혼, 다시 이혼으로 이어지는 역경을 겪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장애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매사에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인내심도 부족했고. 그래서 힘겹게 일군 가정을 깨뜨렸죠. 하지만 이혼을 안 하고 살았어도 후회했을지 모르잖아요. 이혼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용기인 것 같아요.”

사실 우씨는 암 선고를 받은 후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이 ‘의학적인 진단’에 따른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긴 생명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진 아니면 기적이라고 말들 해요. 골수암 환자가 20년을 넘게 살고 있으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저는 사람들의 관심이 불러모은 에너지에 그 비결이 있다고 믿어요. 그건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큰 힘이 있어요.”

그녀는 투병 시절 하루 400~500통의 편지를 받았다. 단순히 인기 영화배우에게 보내는 호기심 섞인 팬레터가 아니라, 혹독한 운명과 맞서 싸우는 그녀의 삶을 격려하는 팬들이 보내는 뜨거운 지지의 표현이었다. 요즘에도 어딜 가든 중년의 팬들은 거의 한 눈에 그녀를 알아본다.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고 서 있으면 반대편에서 지나가던 차가 방향을 돌려 우씨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같은 세대에 태어나고, 저의 투병 과정을 지켜봤다는 것만으로도 진한 공감대가 형성되나 봐요. 너무 고맙죠. 제 차를 기다리고 있다가도 택시가 다가오면 반가운 마음에 그냥 타요. 제 차는 나중에 전화해서 돌려 보내죠.”

활달한 성격으로 젊어서부터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던 우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힘을 얻는 동시에 짐을 안는 과정”이라며 “때론 더 없이 괴롭지만 그래도 그 힘을 끊임없이 갈구할 수 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나머지 삶은 장애인 위해 살겠다

IMF이후 활발하게 펼쳐왔던 건설업과 유흥업을 정리하고, 현재 한국장애인복지신문사 부이사장,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 이사 등으로 장애인을 위한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우씨는 빠르면 이 달 안에 정신지체인 주간보호 시설의 문을 연다.

심신으로 고통 받는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사재를 털어 재단을 설립했다. 딸들도 “어머니의 유산은 없다고 생각하겠다”며 그녀의 뜻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보호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그들 본인은 물론 가족 등 보호자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죠. 이들에 비하면 제 장애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기도 해요. 그래서 이들이 낮 시간이라도 보호자 없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시설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동안 이혼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억척같이 사업을 벌여 큰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돈은 중요한 게 아니네요. 뭔가 살아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사회에 진 빚을 갚아야죠.”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2003/04/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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