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이혼하면 축의금 환불할게요"

드디어 때가 되었는가.

며칠 전부터 결혼 청첩장이 한 장 두 장 날아들기 시작했다. 꼭 참석해야 할 가까운 사이부터 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감이 안 잡혀서 며칠을 고민해야 할 사람까지 두루두루 얽혀 있다.

어떤 청첩장은 받아서 기쁘기 그지없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펼치자마자 이맛살을 찌푸릴 때도 있다. 분명 나한테까지는 안 와도 될 청첩장을 받았을 때의 난감함을 몇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럴 때 영리하기로 소문난 내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이 결혼했을 때 하객들의 방명록을 들춰본다고 했다. 자기의 결혼식에 왔었는지 점검하고 그 다음에는 축의금 액수를 확인하고 나서 거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녀석의 말을 들으면서 그래도 일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이 무슨 거래나 협상의 장도 아닌데 입맛이 씁쓸했다.

일반 사람도 그렇지만 연예인에게 결혼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만인의 주목을 받으며 어려운 연애를 하고 결혼식을 하기까지 남다른 감회가 깊다. 본인은 소박한 결혼식을 하고싶어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또 언제나 주목 받고 살아온 습성이 강해서 자신의 결혼식은 화려하고 성대하게 한마디로 대박 터지는 이벤트라도 벌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다.

결혼한다고 기자회견하고 야외촬영을 할 때도 기자들이 몰려드는 판국이니 무엇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연예인들의 속앓이 깊은 사정이다. 연예인들의 이런 고충과 습성을 재빨리 파악해서 덤벼드는 게 결혼관련 업체들이다.

호텔, 여행업체, 인테리어 회사들이 자사의 홍보를 위해서 달려든다. 인기 연예인들을 모델로 써서 홍보를 하려면 무지한 돈이 들지만 이럴 때 협찬을 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협찬사들은 연예인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다시피 한다.

문제는 몇몇 연예인들이 이런 기회를 너무도 잘 이용해서 지나치게 오만하게 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처음의 약속과는 다르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마음에 들지않으면 업체를 바꾸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한 연예인 커플은 신혼여행을 자신들의 코디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까지 데려가겠다고 해서 한동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결혼식을 또 다른 상품으로 생각해서 몸값으로 계산하는 일도 나오고 결혼할 때 내 돈은 한푼도 안들어갔다고 자랑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 돈 한푼 안들이고 거창한 잔치를 하고 나서 문제없이 잘 살아준다면야 고마운 일이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한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하면 행복을 기원했던 많은 팬들은 배신감까지 느낀다. 아침 프로에 나와 신혼집을 공개하고 장롱문이며 냉장고 문까지 열어보이며 듣기 민망한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늘어놓고 예쁘게 살겠다고 국기에 맹세하듯 다짐을 하던 연예인 커플들이 하나 둘씩 깨지는 걸 봐야 한다니.

연예인들의 결혼소식을 들으면‘얘네들은 끝까지 잘 살려나? ’‘2년 안에 안 갈라서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라는 무의식적인 중얼거림이 먼저 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 역시 언젠가 어떤 연예인 커플의 파경 소식을 듣고는 ‘어쩐지. 토크쇼에 나와서 온갖 오도방정를 떨더라니….’ 하면서 혀를 찼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나중에 이혼을 한 연예인 A가 또다시 청첩장을 보내왔을 때 참 기가 막혔다. 똑같은 사람에게 두 번씩이나 축의금을 보내야 하는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얼마 전 조금 있으면 결혼을 하는 연예인B의 청첩장을 받았다. “야, 제발 이혼하지 말고 잘 살아라. 요새같은 경제난에 축의금 2번 내는 것도 죽을 맛이다.” 짐짓 너스레를 떨자 당사자는 한술 더 떠서 아주 자신만만하게 장담을 한다. “걱정마, 형. 내가 이혼하면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은 꼭 돌려줄게.”

입력시간 2003/04/29 16:0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