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남의 탓을 하지마라

골프 황제가 남 탓을 했다. 타이거 우즈는 최근 막을 내린 마스터스대회 최종 4라운드 도중 자신의 캐디인 스티븐 윌리엄스에게 불평 불만을 털어 놓았다. 우즈가 동반 캐디에게 화를 내는 일은 좀처럼 없던 것이어서 골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예전에 오랜 세월 동안 레이몬 플로이드와 호흡을 맞춰왔던 윌리엄스는 결코 말이 앞서지 않은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다. 우즈와 호흡을 맞춰 그랜드슬램의 위업까지 이룩한 그는 주급1,000달러에 우승 상금의10%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는 고액 연봉 캐디다. 웬만한 미국 PGA 투어 선수나 미국 LPGA투어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번다고 할 수 있다.

대회가 끝나고 우즈는 한 인터뷰에서 캐디인 윌리엄스 때문에 경기를 망쳤다고 말했다. 당시의 상황은 마스터스 3연패 달성을 노리고 있는 우즈가 마지막날 6언더파로 버디 행진을 이어갈 때 좁은 미들홀에서 일어났다. 우즈는 다소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롱아이언을 빼들었다.

하지만 캐디인 윌리엄스는 공격적으로 드라이버 티샷을 하라는 주문을 했다. 우즈는 윌리엄스의 조언대로 드라이버 티샷을 했으나 볼이 잘못 나가는 바람에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우즈는 이 때부터 샷 감각이 떨어지며 무너졌다. 우즈는 이 일을 마음에 두고 윌리엄스에게 경기를 망친 탓을 돌렸다.

이 일로 타이거 우즈는 적지 않은 질책을 받았다. 세계적인 대선수가 캐디 탓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잘 치면 내 탓이요. 못 치면 캐디 탓이다’ 라는 말이 있다. 우즈는 그 동안 그토록 많은 우승을 했지만 단 한번도 “캐디 때문에 우승 했다” 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단 한번 실수를 했다고 캐디 탓으로 돌리다니. 정말 실망이다.

필자는 “캐디 때문에 망쳤다”는 타이거 우즈의 말을 들으면서 골프 황제라는 그도 경기 중에 캐디인 윌리엄스에 상당히 의지하는 구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경기 중에 캐디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높은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특히 메이저대회 우승을 눈 앞에 둔 상태라면 더 더욱 그렇다. 캐디는 선수에게 골프장안에서 만큼은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스윙 템포를 잘 알고 있고, 선수의 표정만 봐도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다. 어떤 캐디는 선수 걸음걸이만 봐도 긴장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만큼은 캐디한테 의지한다라는 느낌을 준적이 별로 없었다. 다른 선수들은 그린 경사를 읽거나 거리 계산을 할 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클럽을 선택하기 직전까지 캐디와 상의를 하고 샷을 한다. 하지만 타이거는 캐디와 별 상의를 안 한다.

캐디가 거리 계산을 말해 주면 아무 말 없이 클럽을 스스로 선택해서 친다. 그래서 “캐디 때문에 망쳤다” 라는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어쩌면 타이거 우즈의 속내를 이야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에 있어 캐디와 선수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경기가 안 풀린다고 캐디 탓만 하는 것은 올바른 골퍼의 자세가 아니다. 아마 골퍼들도 마찬가지다. 라운드를 망쳤을 때 책임은 골퍼 자신이 전적으로 지는 게 옳다. 그리고 대개 미스샷은 자신의 스윙 때문에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쩌다 현장 도우미가 거리를 잘못 계산하거나 경사를 잘못 읽을 수가 있다. 이 때문에 내기에 지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우미에게 화내고 신경질 내 봐야 자기만 손해다. 그 순간 샷은 한없이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정말 멋있는 골퍼는 잘치는 골퍼가 아니다. 아마추어가 잘못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프로가 캐디 핑계를 대도 안되겠지만 아마 골퍼도 현장 도우미가 실수 하더라도 핑계를 돌리기 이전에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모습이 정말 멋있는 자세이다.

동반 플레이어들은 정말 누구(?) 때문에 실수 했는지 안다. 내가 지금 동반 플레이어들의 경비(?)를 내는 한 이 있더라도 절대 남 탓하는 작은 플레이어가 되지 말자.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3/04/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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