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변화'열망을 안고… 이재오 의원

"확 바꾸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

“확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당을 이끌었던 주도적인 흐름을 완전히 타파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어요.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함께 깨끗하고 도덕성을 갖춘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야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재오 의원(서울 은평 을ㆍ재선)은 4월24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하려면 자신과 같은 개혁적 인사가 대표로 나서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보수 정당에서 보수 성향의 대표로는 많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당내에서 가장 덜 보수적인 인사가 나서야 기존의 보수층에 이어 중도와 진보적인 계층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제가 나서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의원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변화에 대한 당원들의 열망이 결국 자신을 선택할 것으로 믿는다며 대표 경선의 승리를 자신했다.

“각 후보 캠프마다 서로 우위에 있다고들 합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반드시 반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 한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을 상대로 한 후보간 지지도 조사에서 제가 1위를 했어요. 바닥에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경북 영양 출신의 이 의원(58)은 영양고와 중앙대를 졸업한 뒤 장훈ㆍ대성고교 등 일선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당시 유신 반대투쟁에 앞장서다 수 차례 투옥됐다.

이후 서울민중연합민족학교 의장과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조국통일위원장을 거쳐 민중당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는 등 오랜 재야 활동기를 거쳐 1996년 15대 총선때 한나라당으로 첫 배지를 단 이후 재선에 성공했다. 이 의원과의 주간한국 인터뷰는 한나라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김덕룡 최병렬 김형오 의원(무순)에 이어 5번째로 실시됐다.


“선수(選數)보다 도덕성이 제1의 기준돼야


- 당 대표 출마의 변은.

“지난 대선의 패배는 우리(한나라당)가 우리에 도취된 탓이다. 국민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데 한나라당의 시각에서 조망하다보니 오만과 자만에 빠져 있었다.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 각종 재ㆍ보선에서 이기니까 자만심이 우리의 눈을 가린 탓이었다. 이젠 그런 환상에서 깨어나 당이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한나라당은 5ㆍ16 쿠데타 이후 YS 정권까지 사실상 37년간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은 간판을 계속 바꿔왔지만 주도세력은 변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광주항쟁이 있었고, 군사 쿠데타도 있었고, 노동탄압, 빈부격차 심화, 권력부패 등이 있었다. 그것이 한나라당의 역사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려면 새 인물이 새로운 체제로 당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고 생각해 출마를 결심했다”


- 타 후보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손을 가로저으며) 정치인을 놓고 중량감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다른 의원들이 지난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에서 국회의원을 하면서, 그것도 전국구나 민정당 2중대 등으로 정치생활을 할 때 나는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감옥을 들락거렸다.

만일 내가 집권세력과 손을 잡았다면 나도 벌써 5선 의원은 돼 있었을 것이다. 당 대표를 가리는데 중요한 점은 단순한 선수(選數)가 아니라 누가 노무현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느냐. 누가 노 대통령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노 대통령도 겨우 1.5선 갖고 대선에 이기지 않았느냐” (노 대통령은 13대 총선 때 부산에서 당선된 뒤 15대에는 서울 종로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됐다. 이 의원은 이를 빗대 1.5선이라고 언급했다)


- 타 후보와의 차별점을 얘기한다면.

“나는 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 중 유일하게 직선 원내총무를 했다. 가장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총무를 맡아 여당 공격에 앞장섰다. 다른 후보들이 개인적으로 훌륭한 분들이라고 해도 도덕성 면에서는 노 대통령과 맞설 수 없다고 본다. 우리 당의 청산 과제인 부끄러운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지 않느냐”


- 특별한 승리 비책이나 선거 전략은.

“한나라당은 아직도 국민에게 답답하고 한심스럽게 비쳐지고 있다. 대선에서 져 놓고도 자기들끼리 다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에게 한나라당이 정말 변했다고 느끼게 하려면 신선한 충격이 아니고는 안 된다. 이전의 그 사람들이 나설 경우 누가 변했다고 보겠는가. 그래서 내가 나선 것이다. 평시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위기 시라면 나 같은 사람이 나서야 국민은 한나라당이 정말 바뀌었구나고 느끼며 관심을 쏟을 것이다”


- 당 대표가 될 경우 당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한마디로 당을 확 바꿀 계획이다. 지금까지 우리 당은 자유민주주의와 보수주의를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는 자유민주주의와 보수를 파괴한 측면이 있다. 난 이걸 타파하려 한다. 도덕성을 앞세운 깨끗하고 건강한 지도부를 만들어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정당체계를 갖추려고 한다. 먼저 청년과 여성을 위한 정치학교를 만들어 새로운 야당에 대한 의식화 교육을 실시하겠다.

또 중앙당은 사업과 교육, 조직관리 등의 업무만 전담하고 각종 정책개발 등은 국회 내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 지구당은 일종의 사회봉사단체 성격을 갖도록 해 당 이미지를 생활정당,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당으로 바꿔갈 계획이다”


- 서청원 의원이 당 대표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면서 출마를 계획 중인데.

“(잠시 주저하다가) 개인적으로 서 의원과 나는 대학 선ㆍ후배 사이로 매우 친하다. 그간 서 의원이 각종 당내 선거에 나올 때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줬고 서 의원이 이번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부분도 내가 출마를 결심한 한 배경이 된다.

서 의원 출마는 개인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당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이미 대선 패배에 따라 대표 자격으로 불출마 약속을 했다. 서청원 개인의 약속이 아닌 당과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 점을 서 의원이 알았으면 한다”


“수도권 표심, 정권 견제심리 작용할 것”


-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할 것이란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도권은 철저히 견제 심리가 우선한다. 15대 대선에서는 졌지만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이겼고, 2기 지방선거는 졌지만 지난해 지방선거는 압승했다. 이런 견제심리가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심이다. 일방적으로 한쪽 편만 계속해서 지지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당 체제가 앞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는지.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내년 총선을 치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노 대통령이 임기 말이라면 탈당을 해도 관계없지만 내년 총선은 임기 초반인 시점이다. 국회 내에서 자기 당을 갖기 위해 어떤 일을 벌일 것으로 생각한다. 여권의 현재 상황은 집권자는 있으나 집권당은 없는 그런 상태 아닌가”


- 내각제 개헌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나는 내각제 반대론자다. 내각제는 통일이 된 이후 남북의회에서 실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금은 남과 북이 통일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각제가 실시되면 국가가 안정되지 못한다. 또 우리 당의 당헌이 대통령 중심제가 골자인데 대선에 패배한 지 몇 달도 안돼 느닷없이 내각제를 들고 나온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 이회창 복귀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사무부총장과 원내총무를 맡으며 지근거리에서 이 전 총재를 보좌해 그를 잘 아는 편이다. 그는 그럴(말을 번복할) 사람이 아니다. 정계은퇴 약속을 지킴으로써 이회창만의 도덕성을 견지할 수 있다. 누구보다 본인이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부도덕한 정권”


- 참여정부 초기 2개월을 평가한다면.

“먼저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와 관련, 우리나라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북ㆍ중ㆍ미 3국회담으로 귀결되자 ‘주도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을 바꿨다. 수도 이전 문제에서도 선거기간에는 1년 안에 확정한다고 해 놓고 막상 청와대에 가서는 2012년께 건설한다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

군복무도 4개월 단축을 내세웠다가 최근들어 2개월로 수정했다. 그렇다면 그간 내세웠던 각종 공약들이 선거전략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여기에 이 정권은 부패한 DJ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초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북한에 1원도 준 적이 없다고 했는데 거짓으로 드러났고, 설 훈의원이 주장한 이회창 총재의 20만달러 수수설, 김대업 공작건, 기양건설 로비설 등도 모두 민주당의 정치공작으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아무 말이 없다. 솔직하게 사과하든지, ‘알고보니 너무 심했다’는 식의 언급이라도 있어야 한다. 어물쩡 넘어가면 이보다 더 부도덕한 정권은 없다”


- 노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 대한 견해는.

“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는 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활용치 못하고 이전 대통령들을 답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 4ㆍ19 기념행사장에서 노 대통령을 봤는데 사방 팔방에 경호원들이 죽 늘어서 엄중 경호를 하는 모습을 봤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전ㆍ노씨의 경우처럼 누가 위해를 가할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또 대통령 취임식도 그렇게 수십억원을 들여 요란하게 할 필요 있느냐. 본회의장 내에서 선서하고 청와대 가는 길에 퍼레이드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의식과 절차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가치는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행보를 보면 역시 노 정권은 DJ 2기 정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강행으로 정국이 또다시 떠들썩하다.

“그게 바로 노 대통령의 편협한 인사스타일을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 변호사를 잘 알고있다. 내가 법정에 섰을 때 나에 대한 무료 변론도 했을 정도로 성품은 훌륭한 분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여야가 만장일치로 고 변호사 임명에 대한 반대의 뜻을 모았으니 대통령이 이를 따라줘야한다. 반드시 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 민주화 운동경력에 투옥 경험도 여러 번 있는 이 의원의 성향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정체성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멋적은 웃음을 지은 뒤) 사실 이전에는 독재정권과 맞서 죽기 살기식으로 투쟁했다. 하지만 이제 제도권으로 들어와 많이 걸러진 편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당시의 초심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 건강하고 양심적인 보수주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참다운 보수에 있다. 진정한 보수는 진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참다운 자유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노력하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4/30 14:57


염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