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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 법] 한국마술사협회장 정은선

[이 여자가 사는 법] 한국마술사협회장 정은선

마술의 길 30년, 국내 최초 여성 매지션
온몸으로 삶을 표현해내는 '시인'

마술이라는 걸 아주 하찮게 여긴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술을 그저 어떤 무대의 구색이나 맞추는, 빈 시간 메우기용 쯤으로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 마술은 우리나라 사람이 하는 마술에 국한된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비드 카퍼필드라는 잘 생긴 사내가 자유의 여신상을 없애고,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는 깜짝 놀랄만한 쇼를 펼쳐보이는 데 우리나라 마술사들은 고작 품속에서 비둘기나 꺼내 보였으니.

그러나 요즈음은 다르다. 우리가 우습게 여겼던 우리 마술이 어느 순간 세계 수준의 품격을 갖췄다. 여기저기서 마술 카페가 생겨나고, 어린이들까지 마술을 배우는 등 대중화에도 성공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제대로 된 대접도 못받으면서 묵묵히 마술의 길을 걸어 온 사람들의 정성이 밑거름이 됐다.

그 과정에서 30년을 마술에 매달려 온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매지션인 정은선(한국마술사협회장)씨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 마술계를 짓누르고 있던 칙칙함을 걷어내고 남녀노소 누구나가 소통할 수 있는 마술공간이 열리길 소망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환상과 꿈의 세계에 도달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마술의 세계를 열었다.


마술사의 첫 인사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한 ‘정은선 마술 연구소’에서 만난 그녀는 약간 지친 모습이었다. 그리고 선뜻 이야기를 풀어낼 뜻이 없는 듯 했다. 왜 하필 마술이었는지, 무엇이 좋아 이 길을 가고 있는지…. 그녀의 지친 모습을 보며 어디부터 이야기를 풀지 난감해 하는 필자의 마음을 읽어낸 걸까. 그녀가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 참 이상한 봄이에요. 원래 순서가 그렇잖아요. 봄이 온다 하면 진달래가 먼저 피고, 그 다음에 개나리가 피고, 그 다음에 목련이 피죠. 처음에는 진달래가 여기저기 한 움큼씩 몰래몰래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올해는 앗, 진달래다! 하고 돌아보니까 그냥 난리가 난 거예요.

한꺼번에 순서도 없이 꽃들이 피어서. 뭐가 그렇게 급할까. 바쁘게 산다는 게 좋다지만 좀 슬프네. 꽃이 한꺼번에 다 피어서 즐길 여유를 안 줘서 슬퍼요. 근데 그거 이상한 거 아니죠?” 아, 올 봄이 그랬구나! 피곤하고 지쳐있는 것 같던 그녀의 얼굴은 나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얼굴로 변해있었다. 이렇게 그녀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천재소녀를 마술세계로 이끈 호기심과 반항심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마술사는 십년, 이십년 전에는 물론 수십 년 후에도 지금과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실재하는 마술사, 정은선에게는 어린시절과 성장과정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열 몇 살이 많은 우리 큰 오빠가 나를 어깨 위에 인형처럼 얹고 다녔어요. 학교도 다니기 전에 이미 한글, 구구단, 천자문을 다 뗄 정도로 똑똑하고 예뻤다는데 지금 나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에요.”

그녀의 부모는 일찍부터 영특함을 보인 막내딸의 교육을 위해 고향인 청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했고 그녀는 초ㆍ중등과정에서 두 번을 월반하며 부모의 기대에 부응했다. 교편을 잡고 계셨던 어머니와 한의사였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기대와 사랑을 독차지 했던 예쁜 막내딸이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그 선생님의 마음을 읽기 위해 독심술을 배우려고 독심술에 관련된 책을 읽었어요. 4차원의 세계, 심령과학… 그런 거요. 그러다 거기서 파생된 마술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죠.”

여느 여고생들과 다르지 않게, 시인이 되고 싶고, 국어선생님을 흠모하고,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만난 마술이라면, 고교를 졸업하면서 혹은 대략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평범했던 건 아니죠. 궁금한 게 아주 많았고 한번 궁금한 건 끝까지 캐내야 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아주 어릴 땐데, 교회에 가면 그래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마리아가 잉태해서 낳았다고.

그럼 하나님과 마리아는 부부고 예수님은 아들이 한 가족인 거예요. 근데 왜 한 집에서 안 살고 천주교니 기독교니 갈라놓고 있어요? 아버지고 엄마고 아들인데 왜 그러냐고 목사님한테 물었어요. 나는 그때 나를 보던 목사님이나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하지만 누구나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주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고, 의당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치의 세계를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그녀는 왜 어긋난 걸까.

“학교 다닐 때 매일 상을 탔어요. 처음에는 난리가 났어요. 맛있는 거 사주고 별 걸 다 해줬죠. 그 다음에 타가니까, 아닌 거야. 그냥 용돈 주고. 또 그 다음엔 거기다 놓아라. 그래서 잘 해도 별거 없네, 실망했죠. 나도 신경질 나서 임명장, 상장 뒤에 그림이나 그리고 그랬죠.

그게 상처가 되었나 봐요. 그래서 마술 할래, 공부 할래 묻는 엄마의 속을 최대한 썩이기 위해 마술한다고 하고. 마술은 계속 궁금하니까. 계속 하고 싶어지는 거죠. 그래서 집에서 원했던 법관도 아니고, 내가 꿈꾸던 시인도 아닌 마술사가 되었어요.”

저 좋은 일만 좋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싫은 기색을 하며 싫증도 잘 내는, 어른들의 비밀을 너무 빨리 눈치채버린 영리한 소녀는 언제나 그녀에게 신선한 의문부호를 선사하는 마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그 끝에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간 거야

부모 몰래 택한 심리학과가 들통 나면서 대학을 자퇴한 후부터 집으로부터의 모든 지원은 끊어졌다. 급기야 아버지가 주신 이름도 쓰지 못한다는 엄명을 받고 집에서 나와야 했다. 처음 몇 년은 낮에는 직장(은행), 밤에는 마술을 찾아 밤무대를 쫓아다니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만의 무대는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 마술무대에서 여자는 ‘보조’일 뿐이었다. 누구도 여자에게 마술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할 줄 아는데, 할 수가 없었어요. 몇 년 그렇게 했어요. 내 거는 절대 안 보여주고. 그렇게 돈 쓸 새도 없이 번 돈으로 외국에 나가 새로운 마술을 보며 실력을 쌓아갔어요.”

문득 찾아온 기회였다. 무대에 서야 할 마술사가 의상을 가지러 간 사이 사정 모르는 무대에서 그녀 팀을 호명해 댔다. 주저 없이 혼자 무대에 올랐다. “옆에 보조가 필요한데 없으니 술손님을 무대로 불러올려 무대를 막 끝내려는 순간, 그 분이 들어오는데 얼굴이 사색이 되있더만요.”

한번 그녀의 무대를 본 팬들은 모두 다시 보고 싶어 했으므로 그녀는 보조가 아닌 동등한 마술사의 자격과 몫을 요구했다. “한번은 낮에 행사하고 밤에 공연 하러 갔는데, 이 놈의 남자가, 지는 가만있으면서 자꾸 이것저것 시키잖아. 아유, 선생님도 좀 하세요. 제가 놀고 있는 아니잖아요, 했더니 욕을 하고 난리가 난 거예요. 그래 나도 일하다가 벌떡 일어나 ‘이런, xxx?’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죠.”

그것이 홀로서기의 시작이었다. 곧바로 목수 2명을 고용해 자신이 디자인한 마술 도구를 제작했고, 후배 1명과 함께 한국 최초로 여성매지션 듀오를 결성했다. 그때부터 오랫 동안 그녀가 자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닐 때마다 사람들은 물었다.

“아가씨가 마술해요? 말 타는 거?” 일껏 설명하고 나면, 그녀가 그렇게 공들여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년씩 걸려 만들어낸 그녀의 마술을 너무나 쉽게 한번 보여주길 원했다.

“엄마가 시집갈 때 가져가라고 만들어준 목화솜 이불이 있어요. 그걸 이사할 때마다 버리지 않고 싸가지고 다니는데, 어떤 때 정말 막 눈물이 나죠. 그럼 켜켜이 쌓아놓은 목화솜 이불 사이로 머리를 딱 넣고 막 소리 내서 울어요. 그런데도 지쳤다든가,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정말 왜 (마술을)했는지 모르겠어요.”

마술사의 삶이 쉽지 않다보니 그녀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본능이 생긴 듯 했다. 민감한 질문을 던지면 여지없이 날카로운 반문이 튀어나왔다.

“여자로서 어린 나이에 남보다 일찍 사회에 나와 무수한 공격을 받았고 또 어린 나이에 밤무대를 나가다 보니 남자들의 꾀죄죄한 눈빛들로부터 스스로 방어해나가야 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 나이까지 독신으로 살아도 스캔들이 없어요. 하지만 나는 내 마음에 들면 찍어요.”

‘흑발 미녀 마술사’(국내 별명)이자, ‘동양의 진주’(유럽)로 그녀만의 마술세계를 펼치며 달려오는 동안 그녀는 방송, 글쓰기 등 언제나 마술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외롭다는 단어조차 필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내게 시간이 난다면 난 그것을 버리지 않겠다는 거니까. 밥 먹을 때는 밥을 맛있게 먹고, 잠잘 때는 잠을 열심히 자는 거죠. 나는 지금 이 일을 하며 110% 만족하거든요. 삶이란 힘든 것, 슬픈 것, 심심한 것들이 다 합쳐진 것이에요. 그 중 하나만 빠져도 삶이 아니죠.”

그녀는 마술사임과 동시에 옹골차게 삶의 뼈대를 통찰해내는 시인이었다. 그녀는 꼬맹이들의 장래 희망직업란에 ‘마술사’를 쓰게 하고 싶었던 10년 전 소망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 올 7월에 열리는 세계마술대회에 나갈 제자의 입상과 대기업이 마술에 투자하기를 소망하는 신지식인(‘99년 선정)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최고’를 거부한다. 다만 길 위에 올랐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마술은 사랑을 보여주는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길을 혼자 온 초등학교 5학년짜리 제자 현이가 필자에게 마술을 선사했다.

현이의 선생님 정은선은 그 순간의 내 느낌을 물었다. 따스했다. “세상에 모든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고, 그렇게 마음에 남는 잔영, 그것은 영원한 거예요. 마술은 바로 사랑이에요. 사랑을 보여주고 싶고, 느끼게 하고 싶고, 듣게 하고 싶다면 마술을 해보세요!”

양은주 자유기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2003/04/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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