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눈 앞의 부와 명예를 놓친 사람들


도둑맞은 아이디어
(안드레아 페링거 외 지음/김지선 옮김/시공사 펴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오랑캐가 번다’라는 옛말이 있다. 땀 흘리고 노력한 사람과 그것으로부터 실제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다르다는 뜻이다. ‘눈 뜨고 도둑맞는다’는 말도 비슷한 의미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나 피나는 노력 등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빼앗는 새로운 것을 발명해 냈지만, 돈을 벌지는 못한 사람들이 있다. 계약서를 자세히 읽지 않았거나, 친구를 잘못 만났거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거나, 시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만 좋은 일을 시킨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도둑 맞은 셈이다.

이 책은 세계적 히트 상품을 발명해 엄청난 부와 명예가 손바닥 안에까지 들어 왔지만, 순간의 실수로 모두 놓쳐버린 불운한 천재들의 이야기다. ‘벼락 한 번 맞을 확률로 성공을 잡고, 벼락 두 번 맞을 확률로 그 성공을 놓친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들인 것이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어떤 판단 착오를 했을까.

‘뜻밖의 행운, 굴러들어온 복(Die Gluecksfalle)’이라는 원 제목은 그래서 더욱 함의적이다.

전 세계 4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1억2,000만 권 이상이 팔려 판타지 열풍을 일으킨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이끌어낸 장본인은 조르제라는 방송기자였다. 그러나 그는 조앤의 사랑을 무참히 저버려 ‘해리 포터의 아빠’가 될 기회를 잃어 버렸다.

조앤은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조르제는 마약 중독으로 한 동안 고생을 했고 직장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그는 조앤과 함께 생활할 때의 이야기를 대중지에 팔면서 생활하고 있으나, 이제는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됐다.

‘해리 포터’와 쌍벽을 이루는 ‘반지의 제왕’의 경우도 비슷하다. 원작자 존 로날드 로웰 톨킨은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영문학 교수, 언어학의 천재, 철학가이자 사색가였지만 영화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그는 1968년 1만 파운드의 세금 때문에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넘겼다. 톨킨은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며, 영화로 만들어진다 해도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그는 스스로 돈을 내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봐야 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대명사 격인 코카콜라의 이야기는 더욱 기가 막힌다. 골방에 파묻혀 수년간의 실험 끝에 콜라 열매와 코카 성분을 섞어 그 때까지 지상에 존재하지 않던 신비한 맛의 음료를 개발한 사람은 존 펨버튼 박사였다.

그는 1887년 6월6일 특허청에 ‘코카콜라 시럽 및 농축액’의 상표 등록을 신청했고, 20여일 후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후 2년 동안 음료수 공장에 두 번이나 불이 나 돈이라고는 구경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코카콜라 지분 3분의 2를 처분했다. 그것도 네 명의 공동 투자자가 아닌 제 3자에게 넘겼다.

그가 받은 돈은 2,300달러였다. 그 후 그의 아들은 자살했고, 부인은 궁핍하게 살아야 했다. ‘이보다 더 미련한 거래가 어디 있으랴’라고 저자는 한탄하고 있다.

이 밖에 슈퍼맨, MP3, 다마고치, 밀크 초콜릿, 워크맨 등에 얽힌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총 17가지로, 모두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발명하거나 발견했으면서도 정작 그것으로 돈을 벌거나 유명해진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경우다. 저자들은 이를 ‘세기의 히트 상품, 세기의 성공 실패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충분히 흥미를 끌 만하다. “아! 그 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각 장을 짤막한 소설처럼 엮었고 실제 사실에 픽션 요소를 가미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 형식을 ‘리얼리티 픽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 때 일본을 중심으로 ‘실패학’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이 책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저널리스트 작가 편집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들은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쥘 수 있는 세속적이면서도 고상한 의미의 성공이 어떻게 하면 가능한 지를 묻고 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노력 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행운과 통찰력, 때를 놓치지 않는 판단력 등이 결합될 때 비로서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역사는 어차피 최후의 승자만을 기억하는 법이니까. 좀 더 자세한 것을 알려면 www.pechvoegel.com을 참고하면 된다.

이상호의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3/05/02 13:1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