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대학교수는 만능인가?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서울 유명대학의 J교수로부터 최근e 메일을 받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터놓고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라 바깥에서 본 노무현 새 정부에 대한 소회를 적어 보냈다.

“우리나라는 교수의 영향력이 너무 큰 나라일세. 정상적인 나라라면 도저히 교수들이 현실 정치에 바로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겠나. 경험이 있나 경륜이 있나, 더 나아가 책임감이 있나. 미국에서는 교수를 하다가 연방정부의 일을 하게 되면 대단한 영광인데, 그것은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지.(중략)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나라는 하루 아침에 교수들이 고관대작을 하는 나라이니, 그만큼 프로가 적고 펀더멘탈이 약한 것이 아니겠나. 아니면 (노동)운동하다가 정치하고….”

이 메일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두가지다. 우선 대학교수가 이 시대의 지식인 그룹인 것은 분명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과도하게 대접을 받고 있지 않느냐는 점이다.

J교수는 “나도 교수이니 이런 이야기를 직접 하기 곤란하여 고민 중이네”라고 토로했는데, 우리는 교수 타이틀만 따면 경험이나 경륜, 책임감의 유무에 상관없이 각 분야에서 엘리트로 대우하는 게 사실이다.

또 하나는 비교적 교조적이면서 현실감각이 부족한 교수진에서나마 발탁하지 않으면 적임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한 우리(특히 노무현 정권)의 (빈)약한 펀더멘탈이다. 때묻은 정치인은 굳이 배제하더라도 우리의 국정을 담당할 재목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새 정부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현실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J교수의 말처럼 적임자가 우리 주변에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새 정부의 시야가 너무 좁은 것일까?

교수의 국정 참여가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대학에서 연마한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삶의 현장이나 나라 운영 과정에서 부대낀 체험도, 현실 감각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잘 아는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 콘돌리사 라이스(애칭 콘티)를 보자. 40대 흑인 여성으로 미국의 안보 책임자가 된 콘티는 스탠퍼드대 교수 출신이다. 30대 초반에 국방부 합참 자문관으로 현실정치를 경험했고 1989~91년 부시 전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위(NSC) 소련ㆍ동유럽 국장, 대통령 특별안보보좌관 등을 지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콘티가 소련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게 “소련에 대해 아는 것은 전부 이 사람이 들려준 것”이라고 소개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콘티는 당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 논리를 제공할 수 있는 인재였다. 그리고 8년 뒤에 대통령 안보보좌관에 올랐다.

같은 교수출신이면서 논란 속에 임명된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은 어떤가?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95년 일본 도쿄대학에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 과정 1945-1961’ 논문으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북한 전문가다.

또 한국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 이종석 국가 안보회의(NSC) 사무차장(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윤덕민 외교안보 연구원 교수 등과 함께 북한문제에 관한 어떤 테마의 글도 부탁만 하면 무리없이 소화해 내는 학계의 몇 안되는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

따라서 그가 국정원에서 대북문제를 담당하는 3차장을 맡았으면 야당의 색깔공세는 더욱 심해졌겠지만 국가 전체로는 그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장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정규 직원만 해도 5,000명이 넘는 국정원의 조직 관리와 예산을 맡았다. 한 전직 안기부장이 사석에서 ‘마치 생명체를 가진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인다’고 표현한 거대한 조직의 관리와 예산을 담당하는 자리에는 서 교수가 적임자는 아니다. 과거 정권과 달리 정치색을 배제한 외부 인사를 앉히려면 ‘돈 관리를 통한 조직 쇄신”을 꾀할 수 있는 예산전문가를 보냈어야 했다.

최근에 만난 청와대 고위인사는 “서 교수의 임명에 대한 야당측의 공세가 그 자리를 맡을 만한 능력이 있느냐,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느냐가 아니라 색깔 문제로 일관하는데 양보할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뒤집어 말하면 그의 전공이나 경력을 볼 때 국정원의 조직과 예산을 담당하는 기조실장에는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을 야당이나 일부 보수언론이 논리적으로 지적했으면 바꿀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야당이나 보수언론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교수인데…’라는 우리 사회의 선입관때문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누구 누구도 그 자리에 앉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냐’는 생각이 교수 사회에 더욱 확산될까 두렵다. 아무리 유능한 교수라도 국가를 운영하는 일에는 아직 초보자이고, 아마추어일텐데 말이다.

콘티가 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됐을 때 언론이 쓴 인물평이 생각난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마저 “교조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큰 조직을 관리해 봤던 경험도 있다”고 썼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3/05/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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