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진통…뺄셈이냐 덧셈이냐

개혁파 '인적청산', 통합파 '외연확대' 주장

‘개혁정당이냐 통합정당이냐, 구 주류를 안고 가는 가 떼고 가는 가’

4ㆍ24 재ㆍ보선 이후 초 대형급 정계 태풍으로 다가온 민주당의 신당 창당 작업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향해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 없이 논란만 거듭되고 있으나 5월7일 이뤄지는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 정대철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최소한의 해법이 제시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민주당의 신당 창당 논의는 재ㆍ보선 참패직후 개혁파 일각에서 제기하면서 곧바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 불과 10여일 만에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란 점에서 민주당 신당 논의는 초 스피드로 진행됐지만 정작 시작 단계에서부터 의견이 두갈래 네갈래로 나뉘며 분당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신 주류중 강경파는 개혁세력의 집단 탈당 뒤 신당 창당, 온건파는 리모델링 식으로 구 주류와의 동승을, 신 주류 중 일부는 선(先) 당내 개혁을, 구 주류는 신당 반대를 주장하는 등 정파별 의원별로 이해관계가 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세는 신당 불가피 쪽으로 굳어졌고, 논점은 개혁세력 중심의 개혁정당과 기존의 민주당 의원들을 두루 망라하는 통합정당으로 양분된 상태다.

개혁정당파는 “모두 함께 가면 결국 ‘도로 민주당’밖에 더 되겠느냐”며 인적청산의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반면 구 주류 측에서는 “민주당의 법통을 계승하면서 외연을 확대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결국 동교동계를 비롯한 구 주류 전체를 안고 가느냐 빼고 가느냐 여부로 논지가 좁혀진 것이다.

그러나 정대철 김원기 김상현 김근태 조순형 정동영 의원 등 6명의 중진은 5월3일 만찬회동을 갖고 신당의 성격을 ‘개혁적 국민통합 정당’으로 두루뭉실하게 규정하면서 포장은 개혁정당, 실체는 신 민주당(이를 정동영 의원은 도로민주당으로 표현했다) 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아무래도 호남 민심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일단 미봉책으로 같이 갈 뿐 결국은 양측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둔 공천과정에서 각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중도성향 의원 모임인‘통합개혁모임'은 “우선 중요한 것은 당 개혁과 쇄신이며 그 일환으로 신당 문제를 논의할 수 있지만 선후가 잘못됐다”고 신 주류의 일방통행식 주장에 제동을 걸었으며, 추미애 함승희 의원 등은 “신당 창당의 명분이 없다”고 소신을 밝혔다. 큰 물줄기의 흐름이 잡히더라도 세부적인 조합 원칙까지 이끌어 내기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弱 덧셈식 통합’으로 귀결될 듯

민주당의 신당 원칙에는 국민이 민주당에 대해 이미 ‘사형선고’를 내린 상태에서 정치권 내외의 개혁세력을 총결집해 기존 정계구도를 개혁 대 보수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을 저변에 깔고 있다. 극우 보수에서 진보까지 총 망라된 ‘비빔밥’식 정당구조를 이념적 지향점이 명확한 정책정당으로 국민 심판을 받자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 원칙에는 신ㆍ구 주류가 모두 동의하고 있다. 현 체제하에서는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없다는 현실적 상황인식이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총선승리’라는 대 명제 속에서도 신당에 대한 접근법에는 각자의 정치적 계산서가 추가돼 있어 혼선을 빚고 있다.

신 주류의 강경 일변도 노선에는 또 당권의 명확한 헤게모니 쟁취라는 지향점이 있다. 지금처럼 구 주류에 발목을 잡히는 식의 정당체계로는 마치 DJP 공동정권에서 당시 국민회의가 자민련에게 상당 부분 끌려다녔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또 자신들의 선명성을 위해서라면 당의 외연은 줄어들더라도 유권자들에게는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 정동영 의원 등 차기를 바라보는 ‘포스트 노’ 군에서는 이참에 ‘영감님’들과 헤어지고 신당의 당권에 가깝게 가는 것이 세대교체와 함께 지역구도 해소에 앞장서는 개혁적 후보자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이런 계산법들이 이들을 더욱 강경 노선으로 밀어넣고 있다.

반면 구 주류 등 통합신당파들은 민주당 법통계승이란 명분을 앞세워 사실상 호남민심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 호남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기반을 승계해야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여기에 신 주류의 강경 노선에 밀려 쫓겨나는(또는 일부만 당에 잔류하는) 모양새가 될 경우 오히려 지역 민심이 동정론으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도 포함돼 있다. 이는 15대 총선을 앞두고 민자당에서 ‘팽’ 당한 JP가 충청권을 중심으로 자민련을 창당해 성공한 사례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전체가 같이 가는, DJ의 민주당을 모태로 한 신당이 아니고서는 동참할 수 없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신 주류내 통합정당파와 신당 반대파 들이다. 정대철 대표를 포함한 신 주류내 통합정당파들은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강경노선에 합류하자니 신당에서는 오히려 구 세력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고, 구 주류와 뜻을 같이하다가는 신당과 배를 갈아타는 형국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신당 반대파도 그렇다.

노 대통령의 의지가 어느 정도 감지되는 상황에서 명분만을 앞세워 계속 딴 쪽으로 가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드는 실정이다.

결국 노 대통령과 정 대표의 회동에서 이런 문제점들을 포함한 폭 넓은 대화가 오갈 것으로 보이나 일단은 모두 다 안고 가는 통합신당론도, 완전히 배제하는 개혁신당론도 아닌, 대선기간 극심한 이적행위를 보인 반노(反盧)의 핵심만을 제외한 ‘약 덧셈식’ 통합구도로 가지 않겠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외곽의 노무현 사단, 들썩들썩

민주당 신ㆍ구 주류가 치열한 논리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당 외곽의 ‘노무현 사단’은 중단없는 전진을 계속하며 심장부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개혁국민정당은 민주당 신 주류와 함께 한나라당 개혁세력 및 개혁적인 무소속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소속 인사들을 망라한 범 개혁결사체의 성격을 띠는 정당 구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원웅 개혁정당 대표는 “민주당의 용기있는 의원들이 DJ와 ‘호남향우회’에 기대온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고 소수 정예로 뭉친다면 70~80명의 의원이 동참하는 거대 신당 보다 폭발력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민주당의 법통을 계승하자는데 민주당에 계승할 법통이 무엇이 있느냐”면서 “새로 만들어질 신당이 민주당 중심이 된다면 한나라당 개혁파들은 오고 싶어도 ‘철새’ 소리를 듣게 돼 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통합신당파들을 정면 비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사실상 분당을 통한 범 개혁신당 창당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도 10명 가량의 의원이 개혁신당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고 의외의 인물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나라당에서는 아직 대놓고 개혁신당의 참여여부를 밝히는 인사는 없지만 상당히 마음이 떠나 있는 김홍신 의원을 비롯, 당내 공천이 어려운 원ㆍ내외 위원장과 부산ㆍ경남 출신 정치인들이 관심있게 여당의 행태를 지켜보고 있다.

또 당 지원 외곽조직이 전국 각 지역에서 속속 결성되면서 사실상 전국 정당화를 겨냥해 민주당 구 주류에 대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5월2일 경남참여개혁운동본부가 발족된 데 이어 9일에는 부산정치개혁추진위가 출범하는 등 노 대통령의 출신지인 PK지역부터 ‘노 사단’이 깃발을 들고 일어서는 형국이다.

경남참여개혁운동본부는 노사모와 국민참여운동본부, 시민단체 회원 등이 주축이 돼 민주당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 신주류 핵심 의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발족했다.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도 노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과 조성래 변호사, 정윤재 민주당 사상지구당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정식 발족을 선언했다.

이들은 “신당은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에 초점을 맞춰야지, 당내 통합과 의원들의 조화에 초점이 맞춰지면 안된다”며 신 주류 강경파의 손을 드는 한편, 민주당이 추진 중인 개혁신당과 뜻이 맞는다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부산ㆍ경남에 이어 대구 광주 대전 전북 등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조직이 결성될 조짐이다.


4당체제 등 다당제로 재편되나

민주당이 개혁신당과 통합신당 사이에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 귀결되더라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는 신ㆍ구 주류가 갈라서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무게감 있게 전파된다. 일단 신당이 되더라도 당의 중심에는 신 주류 강경파가 서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구 주류 입장에서는 신당을 무조건 반대하다가는 오히려 ‘반개혁’의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크고 기득권 유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에 몰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단 신당호에 편승하되, 그 안에서 또 다른 노선과 명분투쟁을 벌여 나가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이 경우 구 주류는 호남민심을 자극하는 기존 전략을 고수하고 신 주류는 개혁당위론을 앞세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근본적인 지향점의 차이에 따라 이탈자나 낙오자 없이 ‘한지붕’ 아래에서 기거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여기에 있다.

결국 ‘노심’을 등에 업은 신주류측과 ‘호남민심’을 내세우는 구 주류 측이 향후 대북송금 사건 특검수사와 남북관계 등 나라 안팎의 각종 정국변수 속에서 어느 쪽이 우세한 여론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분당의 시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구 주류 측에서는 “우리가 자진해서 나가지 않더라도 총선 공천탈락을 통한 인적 청산을 고려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양측이 이같이 맞서 있는 상황에서 신 주류 측도 어차피 신당을 해도 훗날 갈라설 것이라면 당초 구상하는 개혁신당의 선명성을 위해 차제에 당을 나가 따로 만들자는 의견도 공공연히 대두된다.

개혁당 김원웅 대표도 “기득권을 가진 현 3당체제가 일거에 없어지기는 어려운 만큼 4당 체제로 총선을 치르고 내년 총선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지역주의를 없애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충청권에서 자민련이 10명도 안 되는 숫자로 줄어들었듯이, 내년 총선을 통해 민주당은 호남의 자민련화, 한나라당은 영남의 자민련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4당 체제가 될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과 신 주류 핵심이 내년 총선에서 다당제를 노린다는 일각의 관측이 나오는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5/07 13:20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