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고시열풍] 정부가 집값을 붙들겠다고?

두더지 잡기식 대책에 한계 일관성 있는 정책 절실

동그란 구멍 속에 두더지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다.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 구멍 위로 머리를 내밀 태세다. 고무 망치를 손에 움켜 쥔 아이들의 마음도 바쁘다. “올라 올 테면 올라 와 봐라.” 두더지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손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쿵쾅, 쿵쾅…. 두더지 잡기 게임은 아이들과 두더지들이 벌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오기 싸움이다.

“충청권 아파트 가격이 심상치 않은데요.” “그럼, 내리 쳐.” “이번엔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마구 오르고 있습니다.” “그럼 마구 내려 쳐야지.” 정부가 꿈틀대는 부동산 가격과 벌이는 두더지 게임이 점입가경이다. 두더지들이 고개를 내미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방향도 예측할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아예 망치를 2~3개 동시에 들고 나섰다.

겁먹은 두더지들이 더 이상 고개를 내밀 엄두 조차 내지 못하게 하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하지만 두더지들이 땅 속에 숨어 살아있는 한 언제든 고개를 내밀게 돼 있는 법. 전문가들은 “근원적 대책이 아닌 두더지 잡기 식 미봉책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세를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선봉에 선 재건축 아파트

올 초 부동산 전문가들이 내놓은 시장 전망은 ‘안정’과 ‘침체’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됐다. 지난해 수 차례 쏟아낸 정부의 안정 대책이 먹혀 들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가격 상승세가 정점에 달했다는 분석이 깔려 있었다. 적어도 3월까지는 이 같은 전망이 유효했다.

하지만 4월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재건축 아파트를 필두로 가격 상승세가 무서운 기세로 되살아 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지역 재건축 아파트의 주간 단위 가격 변동률은 0.38%(4일) →0.83%(11일) →2.06%(18일)로 갈수록 상승 폭을 넓혔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나온 뒤인 25일에는 상승 폭이 모처럼 둔화하기는 했지만 1.61%로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호가 기준으로 주요 재건축 대상인 강동구 고덕주공 2단지 15평형은 3월말 2억7,000만원에서 4월말 3억2,000만원으로 1개월 새 평당 300만원 이상 뛰었고,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17평형은 같은 기간 5억4,000만원에서 6억1,000만원으로 치솟았다.

재건축 요건을 대폭 강화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7월 시행을 앞두고 일선 조합과 건설사들이 그 동안 부진했던 사업 추진을 서두르고,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민들의 민원에 밀려 안전 진단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나선 것이 원인이었다.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일반 아파트도 덩달아 가격이 올랐다. 서울 지역의 경우 18일 전주에 비해 전체 아파트 매매가가 0.51% 상승한 데 이어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조정을 보인 25일에도 0.50% 올랐고, 전국적으로는 이 기간 0.32%에서 0.38%로 오히려 오름 폭이 확대됐다.


오르면 내리쳐라

부동산 가격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자 정부는 즉시 ‘망치’를 꺼내 들었다. 4월18일 건설교통부가 서울 강남구와 경기 광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에 요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정부는 25일 개최한 심의위원회에서 어김 없이 두 지역을 양도소득세가 실거래가로 부과되는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행정 수도 이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름세를 타고 있는 대전 서구와 유성구, 충남 천안시 일부 지역은 분양권 전매가 1년간 제한되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키로 했다. 여기에 서울 강남 송파 서초 강동 등 강남지역 4개구와 광명시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투기 혐의자를 파악해 세무 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국세청도 한 술 거들었다. 국세청은 29일 지난해 4월 고시 가격에 비해 평균 15.1% 상향 조정한 전국 공동주택의 기준시가를 정기 고시했다. 이에 따라 기준시가에 의해 부과되는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의 공동주택 양도세, 상속세, 증여세 등이 대폭 오르게 됐다. 이번 상승률은 1990년 46.5%를 기록한 이후 13년 만에 최대치.

게다가 지난해 9월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수시 고시를 한 데 이어 7개월 여만에 다시 정기 고시에 나선 것이어서 파급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됐다. 지역별로는 대전이 26.0%로 가장 많이 오른 것을 비롯해 인천(22%) 서울(19.5%) 경기(18.4%) 경남(14.9%) 등의 순이었다.

특히 지난해 9월 수시 고시 때 한차례 올랐던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은 6개월여만에 다시 9.6%가 추가로 올라 지난해 4월 고시 때와 비교하면 34.3%나 상승했다.


약발이 먹힐까

정부의 고강도 처방에 당분간 부동산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돼 거래가 줄어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동산 대책 이후 상승세가 다소 꺾이고 있는 것이 고무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 추가적인 투기지역 지정 ▲ 수시 고시를 통한 기준시가 재조정 ▲ 강도 높은 세무 조사 등 다양한 무기를 들이 대며 “부동산 과열은 반드시 막겠다”고 벼르고 있는 만큼 부동산 가격의 재반등이 그리 녹록치는 않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우선 장기 저금리 체제의 고착화는 부동산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한국은행이 추가적인 콜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 유력해진 상태다. 금리가 더 낮아지면 부동자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결국 이들 자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보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부동산을 대체할 만한 투자 상품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가격 상승 압력은 갈수록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악의 경우 세금을 올리면 올리는 만큼 매매가를 상승시키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주택 공급량 부족도 경계해야 할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7월부터 재건축 규제가 강화되고 경기지역 준농림지 개발이 묶이게 되면 결국 신규 아파트 공급 감소로 이어져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가장 근심스러운 대목은 두더지 잡기 식 정부 대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건축 시장에 손을 대면 분양권 시장이 뛰기 시작하고, 분양권 시장에 억제책을 쓰면 기존 아파트 시장이 꿈틀 대기 마련이다. 또 특정 지역을 투기 지역으로 지정하면 이에 따른 파급 효과로 인근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덩달아 오르는 법이다.

부동산정보 제공회사인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아파트 분양권 시장은 이미 입주한 아파트처럼 기준시가 개념이 없기 때문에 세금 회피용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 대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부동산114 김규정 과장도 “정부 대책으로 단타 투자는 당분간 자취를 감출 수 있겠지만 일관성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다시 시장이 꿈틀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5/07 14:27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