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환경보전 없는 경제는 무의미하다

■ 21세기의 파이
(레스터 브라운 외 지음/이상훈 배규식 옮김/따님 펴냄)

세계은행은 최근 2015년 세계의 절대적인 빈곤층이 1999년에 비해 3억 명 줄어든 8억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비록 아프리카에서는 더 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감소한다는 것이다. 빈곤층은 하루 소득 1달러 미만을 말한다. 빈곤층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그 만큼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속적 성장이 유지될 것인가.

이 책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환경 에너지 인구 등을 연구하고 있는 월드워치 연구소의 연구자인 저자들은 생태계 변화에 주목한다. 그들은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생태계의 질이 지금처럼 계속 저하한다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성장을 지속할 수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암의 예를 보자. 끊임없이 자라나는 암세포가 숙주를 파괴해 결국 자신의 생명체를 무너뜨리는 것같이 끊임없이 팽창하는 세계 경제는 자신의 숙주인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성장을 위한 성장은 암세포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대부분의 정부와 뉴스미디어들이 몰두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성격이 다른 문제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파이의 크기가 끊임없이 커지던 지난날의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의 몫이 곧 커질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인내를 강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이나 정책의 일시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전체적인 소비가 마침내 지구의 생산능력을 압도해버림으로써 더 이상 파이가 커지지 않게 된 상황에서는 정치적 과제가 달라진다. ‘어떻게 파이를 나눌 것인가’가 우선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기본 입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분배 윤리의 정립, 환경 보전과 함께 하는 기술 발전 등이다.

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 등으로 전통적인 생계 수단을 잃은 뒤 새로운 환경에 진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저자들은 멕시코 남단 치아파스 주민들을 통해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이들은 사파티스타 농민군을 조직해 토지소유 및 사회체제 개혁을 요구하며 1980년대 초부터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오늘날 폭력적인 충돌은 거의 모두 국가간에서 일어나기보다는 나라 안에서 발생하며 또한 그 대부분의 근본 원인은 치아파스 사태의 경우와 똑같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이루어졌다. 1부 ‘강과 바다의 블루스’는 물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생명체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물이다. 그런데 강은 모두 사라져 해안은 신음하고, 바다는 죽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보고서다. 세계적인 하천인 나일강과 갠지스강, 콜로라도강, 황하 등은 1년에 상당 기간 강물이 바다에 닿지 못한다.

그 결과 바다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다. ‘개구리는 자기가 사는 연못의 물을 다 마셔버리지는 않는다’는 잉카 격언이 있다. 현대인들은 옛날 개구리만도 못한 것일까. 2부 ‘흔들리는 생물 체계’는 인간의 탐욕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자연 생태계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세계 GNP의 합계보다 많은 33조 달러에 이르나 이런 무료 서비스 기능을 파괴하고 있다.

3부 ‘절박한 위험과 희망의 씨앗’은 기후 변화의 위험과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그것이 가져올 위험을 예상하기조차 어렵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물과 공기오염 등 다른 환경 문제와 맞물려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서 시도되고 있는 ‘부드러운 에너지의 길’, 즉 바람 햇빛 등을 이용한 전력 생산 등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운동연합 에너지대안센터가 시범 태양광 발전 사업을 위해 1억원을 모금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궁금하다. 4부 ‘세기 전환점에 선 인류 사회’는 환경 파괴로 인해 직면하게 된 각종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 ‘사스’와 관련된 전염병에 대한 부분이다. 환경 교란은 인간에 가해지는 생물학적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기동성과 인구증가는 세균에 노출될 위험을 높이며, 정치적 경제적 혼란은 이미 알려진 예방 치료 수단의 이용마저 막는다는 것이 오늘날에도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유다. ‘세상에 부조화가 있을 때 죽음이 뒤따른다’는 인디언의 말이 새삼 다가온다.

이 책의 논점은 환경이 망가지면 경제도 없다는 것이다. ‘월드 워치 리더(World Watch Reader)’라는 원제가 잘 말해준다. 1999년에 발간됐지만, 시차가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절실히 다가온다. 다만 파이 분배에 대한 논의가, 번역판 제목과는 달리, 문제제기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쉽다.

이상호의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3/05/0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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