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사는 법] '팍시 러브' 대표 이연희

자기의 성을 바로 알면 쾌락과 행복은 덤

‘G-SPOT이나 Cul-De-Sac을 아는가?’

신문이나 잡지 등을 꼼꼼하게 보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기억이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정확히 그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까지 이른다면 명확한 답변을 해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할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 ‘성’에 관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성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게으를 뿐 아니라, 노력한다는 것 자체를 굉장히 수치스럽고 창피하게 생각하는’ 대개의 우리를 향해 당당히 ‘즐거운 섹스’를 구가하며 ‘대한 여성 오르가즘 찾기 운동’을 하겠다고 나선 여자가 있다.

성인전용 사이트 ‘팍시 러브’의 대표이며 이른바 음란 바(Bar)‘G-SPOT’운영자 이연희(29)씨가 바로 그다. 이미 몇 번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쾌락을 추구하는 나쁜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의 대상이 된 그녀를 만난 곳은 서울 신촌에 자리한 자그마한 사무실이었다. 대여섯 개의 책상과 컴퓨터가 있는 그 공간은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그녀의 일터였다.


평범한, 너무나 평범한 그녀?!

‘여성의 즐거운 성’을 위해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애무 테크닉’, ‘본격 명기(잘 조이는 여자) 탐사 프로젝트’ 등의 일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해치웠으며 최근엔 G-SPOT에서 ‘네 유방을 보여줘!’라고 외치며 유방워크샵을 치러낸 여자 이연희의 첫 인상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받쳐 입은 말괄량이 아가씨 모습 그대로다.

“그냥 평범했어요. 중ㆍ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도 너무나 평범했어요. 제가 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어요. 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관심을 갖는 부분인데도 여자들의 성에 관해 물어볼 곳은 별로 없잖아요. 3년 전 제가 처음 온라인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성을 다루는 사이트라는 게 성인사이트, 여성사이트, 부부커뮤니티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성인사이트는 너무나 공감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아 받아들이기가 껄끄럽고, 여성사이트는 너무 징징 짜는 소리가 많아서 짜증이 났어요. 그러면서도 여자가 여자의 적이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일탈을 고백할 때도 그것들을 끌어안아주는 것들이 너무 없었어요.

부부사이트가 그나마 편안하게 접근할 수가 있어 거기서 성에 대한 저의 경험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죠. 당시엔 저 역시 익명성을 빌어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동요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특히 여자들은 제 얘기를 듣고는 아, 사실은 나도 그래~ 하면서 털어놓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연스레 팬도 생기고, 그만큼의 안티도 생겼어요.”

전철 승강장의 신문 가판대 앞을 서성이다 보면 매일 같이 성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그런데 기사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명이거나 아니면 H양, L양 등 이름자의 이니셜을 딴 글자를 쓰고 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엔 인터뷰나 기사에 실명과 얼굴이 나가는 것에 대해 아주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하는 일이 창피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나 이렇게 반문하는 그녀가 하는 일이 그녀 자신의 개인적 믿음과는 무관한 일일 수도 있다. 요컨대 다른 누군가의 ‘성’에 관한 궁금증은 가히 폭발적인데 비해 정작 자신의 성은 누구도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 사회이며 불과 얼마 전만 해도(아니, 지금도 그런가?) ‘처녀가 아이를 가지는’ 일은 입이 열 개라도 말 못할 잘못의 가장 적절한 비유가 되는 사회였으니 말이다.

“제 친구들은 다 보수적이라 모른 척 해요. 제가 하는 일 다 알면서도 그냥 ‘너, 요즘 잘 나가네!’라고만 말하지, 거기에 직접 참여하진 않아요. 혹시 모르죠, 몰래 가입해서 닉네임으로만 활동하는지는.(웃음) 가족들도 처음엔 모르셨어요.

한번은 저희 사이트 홍보를 위해 스티커를 만들어 전철역 화장실에 붙인 적이 있었는데, 저희 엄마가 제가 하는 사이트가 ‘팍시 러브’인 건 알지만 정확히 뭐 하는 사이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스티커를 보신 거예요.

여느 부모처럼 자기 딸을(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내 딸은 결혼 전까지 숫처녀이리라!) 믿고 있던 엄마가 충격을 많이 받으셨어요. 결혼도 안 한 딸이 오르가즘 찾기 운동을 하다니요! 부모님들께서는 남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에 제가 상처 받을까 걱정하시만,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은 믿어주세요.”

한편 그녀는 갓 결혼한 새내기 주부이기도 하다. 결혼하면 남편과 함께 ‘오르가즘 운동본부’를 운영하고 싶었던 그녀와 결혼한 남편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저희 사이트는 커뮤니티가 가장 중심이고 그 핵심기능이라는 게 정보전달이 아니라 여자들이 그간 얘기하지 못한 것들을 털어놓음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거거든요. 그게 그냥 너 솔직히 한번 얘기해 봐,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 자신을 먼저 오픈하고 무장해제 시켜야 하는 거죠.

그렇게 제 사생활을 노출하다보면 상대방의 사생활 역시 노출되니까,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죠. 이전에 사귀었던 많은 남자 친구들이 말로,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그걸 견뎌내지 못해요. 현재의 남편은 예전부터 알던 사람인데, ‘팍시 러브’사이트를 통해 재회했어요. 원래 회사원이었는데, 현재는 G-SPOT의 대표고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그녀의 삶에서 ‘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 걸까.“내 삶에서 성은 25% 정도? 나머지는 일과 가족이 차지하고 있죠. 실제로 우리 부부생활도 완벽하진 않아요. 서로 바쁘니까요. 그럴 때 각자의 몸을 스스로 만족시켜주는 마스터베이션을 함께 할 수도 있어요. 저희는 두 사람이 서로 이렇게 도와주며 함께 하는 행위까지도 정상적인 섹스 범주에 넣고 있어요. 반드시 삽입성교만을 섹스라고 보지 않거든요.”

왜 꼭 이 일이어야 했는지 자신도 모를 일이라지만 그녀는 이 일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것과 이 일의 상업적 가능성을 함께 보고 있다. 이것이 아직 20대인 그녀가 우리의 성문화에서 스스로의 성찰로 건져 올린 것이라면 그녀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나는‘도덕적 보건 성교육’이 아니라,‘쾌락 성교육’을 하고 싶다

부부 커뮤니티를 통해 시작한 그녀의 글쓰기 작업은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필요로 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만큼 여성들이 성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녀의 개인 커뮤니티는 ‘음란’하다는 이유로 얼마 못 가 폐쇄조치 당했다. 여성이라는 제약과 ‘음란하다’는 주홍글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오프라인으로 걸어 나오게 한 것은 무엇일까.

“온라인에서 이야기되어지는 것들 중에서 특히 여자를 잘 아는 남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중에 ‘그게 아닌데?’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예컨대, 무조건 크고 힘 센 남자가 여자를 만족시켜준다는 ‘대물 콤플렉스’가 그렇고, 여성은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정서와 더불어 쾌락을 추구하는 여자는 밝히는 여자고, 나쁜 여자라는 등식이 그랬어요.

제가 무역대행업을 할 때, 해외출장을 다니다 본 성인용품 가게들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통유리로 된 가게, 마치 생활용품매장처럼 밝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성인용품을 접하는 그 문화가 부러웠어요. 우리는 아랫도리와 관련된 것은 죄다 은폐되어 왔잖아요.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온라인상의 제 글쓰기 작업과 독자들의 반응을 되짚어봤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이 ‘여자가 변해야겠다!’는 거였죠.”

사적인, 너무나 사적인 침실의 문제는 어느 한 쪽의 성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남성들의 몰이해를 이해로 바꾸기보다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여성들이 자기 성을 바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남성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 여성의 마음이 열려있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거든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남성의 어떤 행위가 상대 여성에게는 변태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저 역시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그녀는 일상생활에서 서로의 몸짓을 보는 것, 스치는 것, 접촉 등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소통의 행위가 다 성행위가 될 수 있으며 남녀가 동등하게 자신의 몸을 알고, 서로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한 ‘즐거운 섹스’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들 스스로가 성에 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

“포르노라는 것도 그래요. 그게 부작용도 있지만 우리가 실제 해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판타지를 실현해준다는 순기능도 있어요. 그런데 거의 모든 포르노가 남성들의 시각에 맞춰졌기 때문에 남성들이 가진 판타지만 그려내요. 어차피 완전히 없앤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여성용 포르노도 만들어 선택의 폭을 넓히다 보면 어떤 것은 너무 현실감이 없다는 게 드러나겠죠. 현실감이 없으면 ‘꼴리지’ 않잖아요.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의 하드코어인 항문성교 중 여성이 신음소리를 내는 영상을 보면 전혀 흥분되지 않거든요.”

지극히 ‘팍시 러브’적인 표현이다. 만 2년 되어가는 ‘팍시 러브’가 자칫 일반 여성들에게 껄끄러울 수도 있는 남성의 하드코어와 특정사이트 모방이라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지금 그녀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 걸까. “네, 처음엔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해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제 너무 앞서 가도 안 되고, 너무 쳐져도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결국 저에게 더 집중하려고요. 제가 수용할 수 있는 정도가 적정선일 거 같아요.”

양은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5/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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