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만 파서는 성공 못한다?

원소스 멀티유스 전략… 대중문화 질적 저하 부를 수도

장나라와 기무라 다쿠야. 한국과 일본 양국을 대표하는 최고 인기의 엔터테이너이다. 인기 최고의 스타라는 점 외에 두 사람을 보면 한일 양국의 스타 시스템과 스타 시스템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연예 기획사와 프로덕션이 스타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전략을 구사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연예 기획사가 스타화 전략을 구사하는데 있어 얼마나 많이 일본 시스템을 벤치 마킹하는 지도 알 수 있다.

기무라 다쿠야는 평균 시청률 30%대를 기록하고 최종회 시청률이 37.6%로 1990년대 이후 역대 3위 시청률을 차지하며 3월에 종영된 도쿄방송(TBS)의 ‘굿럭(Good Luck)’의 남자 주연이다. 그는 최근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성공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신드롬 현상까지 일으켰다. 그가 입고 나온 옷, 헤어스타일을 유행시키는 명실상부한 시청률의 보증수표다.


일본 스타시스템 벤치마킹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기무라 다쿠야를 인기 정상의 탤런트로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원래 멤버 다섯 명으로 구성된 그룹 SMAP의 한 사람으로 가수로 출발했다. 가수 데뷔이후 3~4년간은 주목을 받지 못한 그룹이었으나 SMAP의 소속사인 자니스 프로덕션이 이들 다섯 명에게 개그, 연기지도를 시킨 뒤 각종 쇼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인지도를 높인 다음 드라마에 출연시켜 인기를 폭발시켰다.

데뷔 3년 내 발표한 앨범은 10만장내외의 판매량에 그쳤으나 이들이 쇼프로그램과 드라마에서 관심을 모으면서 발표하는 앨범마다 5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 가수로서도 성공을 거뒀다. 그는 각종 광고 모델로도 나서 최고의 CF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나라. 그녀는 2001년 5월 1집 앨범‘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를 발표했다. 발표 당시 신인가수로 방송에 출연, 얼굴을 알렸으나 그녀의 존재를 알린 것은 정작 시트콤 ‘뉴논스톱’이었다. 그리고 이후 가요순위프로그램 MC 등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성을 확보한 다음 지난해 SBS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의 주연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덩달아 발표하는 앨범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2002년 그녀가 발표한 앨범 판매량은 105만장을 판매한 쿨에 이어 81만장으로 2위를 차지했고 KBS가요대상 등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올 들어서는 최고의 여배우 급에 해당하는 영화 출연료 3억원을 받으면서 ‘오!해피데이’ 에 출연하는 등 스크린에도 진출했다. 물론 장나라도 캐스팅 1순위에 올라와 있는 가장 잘 나가는 CF모델이다.

기무라 다쿠야와 장나라의 스타화 경로가 너무 흡사하다.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1980년대 후반부터 10대 청소년을 겨냥한 아이돌 스타를 배출하면서부터 가수들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스타의 수명이 짧아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고자 등장한 것이 원소스-멀티유스(One Sauce-Multi Use)전략이다.

연예인 지망생이나 그룹을 가수로 데뷔시킨 다음 오락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에 출연시켜 인기를 얻고 이 인기를 음반의 판매로 연결시키는 전략이다. 근래 들어서는 드라마나 영화에 데뷔한 연기자들이 인기를 얻은 다음 이 대중성을 바탕으로 가수로 진출해 음반의 판매로 이어가려는 원소스 멀티유스 전략도 성행하고 있다.


다양한 수입원 창출

일본에서 시작된 원소스 멀티유스 전략은 발 빠른 한국의 연예 기획사의 벤치 마킹으로 주요한 스타화 전략으로 자리잡았고 한일 양국에서 성공을 거둬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다. 기획사로선 그야말로 엄청난 이익이 남는다. 다양한 수입원의 창출과 함께 2~3년이면 끝나는 아이돌 스타를 장기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 스타의 대표적인 그룹 핑클과 지난해 해체된 SES의 활동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들 멤버들은 가수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고 각종 방송 드라마와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핑클의 성유리는 지난해 ‘나쁜 여자들’ 드라마에 캐스팅돼 연기자로 영역을 넓힌 뒤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MC와 SBS 주말 드라마 ‘천년지애’의 여자 주연으로 나서고 있고, 이효리는 KBS ‘해피투게더’와 MBC ‘타임머신’의 MC로, 이진은 MBC ‘뉴논스톱’에 출연하고 있으며 옥주현은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활동중이다. 이들은 올 연말 새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SES의 멤버였던 슈는 현재 SBS 시트콤 ‘스무살’에 출연하고 KBS ‘뮤직뱅크’ MC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미니시리즈 ‘러빙유’에 주연으로 나서 연기자로 신고식을 마쳤던 유진은 KBS ‘러브스토리’ MC로 나서고 있다.

이밖에 강타, 신화의 전진, NRG의 이성진, 클릭B의 김상혁, 샤크라의 황보와 려원, 그리고 신성우, 채정안, 비 등 가수로 출발했던 연예인들이 각종 오락프로그램 MC나 드라마, 시트콤,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연기자로 데뷔한 뒤 인기를 얻은 다음 가요계에 진출해 음반을 발표하는 등 가수활동을 겸업하는 연예인도 있다.

그 중에서 안재욱 박용하 안재모 박광현 등이 눈에 띈다. 안재욱은 드라마 ‘별은 내가슴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곧바로 음반을 내 가수로도 장기간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 ‘친구야’를 타이틀곡으로 새 앨범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탤런트 박광현은 지난해말 ‘비소’를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표했고 ‘야인시대’의 김두한역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안재모 역시 지난해말 앨범 ‘For You’를 발표하고 가요프로그램 출연과 콘서트 등을 통해 가수로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1월 ‘기별’을 타이틀로 내세운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로도 정식 데뷔한 탤런트 박용하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최근 끝난 드라마 ‘올인’의 주제가 ‘처음 그날처럼’을 불러 가수로서의 인기도 정상을 달리고 있다.


만능엔터테이너 전략의 허와 실

이같이 한 사람의 연예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은 철저히 연예 기획사의 상업적인 전략의 하나다. 이로 인해 연예인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물론 우리의 대중문화 초창기부터 한 사람의 연예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한 분야의 인기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에 진출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극히 드문 경우였고 한편으로는 우리 대중문화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초래된 현상이었다.

우리 대중문화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의 경우 연예인에 대한 인식부족과 편견으로 연예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배우였던 이애리수가 가수로 나서 ‘황성의 적(跡)’을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등 악극배우 등 연기자들이 가수로 나서고 가수가 영화 배우를 하는 등 한 사람이 여러 분야의 연예활동을 했다.

점차 연예인의 인적자원이 확보되자 이러한 현상은 줄어들었고 1970년대 남진, 조용필 등이 가수로서 인기를 바탕으로 잠시 영화계에 외도했지만 가수로서 활동이 주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만능 엔터테이너’를 표방한 스타화 전략은 다름 아닌 철저히 상업적 계산이 깔린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의 다른 얼굴이다.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중문화의 질을 전반적으로 하락시켰다는 것이다.

대사연기조차 제대로 안된 가수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고 제대로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는 탤런트들이 인기만을 의식해 너무 쉽게 가요계에 진출해 대중음악계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

드라마에 출연한 유진과 성유리에게 대사와 표정연기가 어색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지난해 말 발표한 박광현의 ‘비소’를 한 일간지에서 최악의 앨범으로 선정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또한 이처럼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을 구사해 수익을 올리는 곳과 인기를 얻는 연예인은 대형 기획사와 그 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들 뿐으로 이는 실력 있는 가수와 연기자들의 연예계 진출과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으로 인해 대중문화 콘텐츠가 획일화되고 시청자들이 다양한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볼 권리를 잃는 것도 문제다. 물론 임창정이나 장나라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성공하고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문 경우다.

연예인들이 제발 실력도 없으면서 여러 우물 파려 하지 말고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팠으면 한다. 이제 관객과 시청자 그리고 대중에게 연예인의 연기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짜증을 내지 않을 권리를 되찾아 줘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5/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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