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진보주의자와 신 보수주의자의 만남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기 위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미 길에 올랐다. 올해로 한미 동맹 50주년을 맞아 한미 관계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북한 핵 문제 등 긴급한 현안이 존재하는 위기 상황에서 보따리가 사뭇 무거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노 대통령 방미의 최대 과제는 한ㆍ미 양국간 신뢰 관계를 확고히 구축한다는 데 집중된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햇볕 정책을 둘러 싼 입장 차이로 껄끄러운 관계로 변질 된 한ㆍ미관계를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 선결 과제인 셈이다. 노 대통령을 반미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내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왜곡된 시각을 해소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성장 과정과 이념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했을 정도로 갖은 역경을 다 겪은 자수성가 형 정치인인 반면, 부시 대통령은 미국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하고 주지사를 역임하는 등 순탄한 엘리트 과정을 밟아왔다.

또 이념면에서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 이념 척도로 보면 진보로 분류되지만, 부시 대통령은 신 보수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두 정상은 캐릭터 면에서 닮은 점도 있다. 우선 1946년 생 개띠 동갑내기로 시골 출신이다. 탈권위적이며 소탈해 외교적 격식에 구애 받지 않는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공통된 코드를 가지고 있다. 성격적인 면에서도 두 정상 모두가 다소 급한 편으로 추진력이 강한 편이다.

최근 방한한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나도 내 아들을 잘 아는데, 노 대통령은 내 아들과 성격이 비슷해 잘 통할 것 같다”며 “소박하고 진솔한 농담을 즐기는 아들과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나눌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이번 방미 과제 가운데 북핵 문제의 해법 도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정부는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 안팎에서는 협상론과 동시에 정권 교체, 선제 공격, 해상 봉쇄론까지 제기되는 등 매파와 중도 노선간에 혼선이 빚어 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 등 양국간 주요 현안에서 신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 ‘예스 냐 노냐’식으로 2분적인 기조로 접근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이 “이것도 맞고요, 저것도 맞고요”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어, 단호하고 명쾌하게 얘기해야 한다는 일각의 우려가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수려하지만 애매한 화법보다는,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2003/05/14 10:27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