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마지막 결전 임박

정면돌파 일변도서 우회전략 병행으로 숨고르기

5월9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 앞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 했지만 23명의 소속 의원중 무려 10명이 불참했다. 불참자는 한나라당 김덕룡 이부영 유흥수 의원 등 7명, 자민련은 이인제 의원이었고 민주당에서는 한화갑 추미애 의원이 불참했다.

정권 초기에, 그것도 방미에 앞서 대통령이 초청한 자리에 절반 가량의 국회의원들이 (그것도 여당 의원을 포함) 참석치 않은 것은 그리 흔한 장면이 아니다.

국정원장 인사 강행과 잡초제거론 등에 따라 극도로 불편한 관계에 놓인 한나라당 입장에서야 대거 불참이 어찌 보면 당연한 편이고,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부터 앙숙이 된 이인제 의원의 거부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문제는 한화갑 추미애 의원. 이들이 누군가. 한 의원은 신당론에 맞서 민주당 사수를 선언하며 ‘포스트 DJ’의 동교동계 정신적 지주역할을 맡고 있고, 추 의원은 신 주류에는 속하지만 “신당 창당에 명분이 없다”며 소장 강경파와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이들의 불참은 노 대통령의 복심(腹心)들이 추진하는 신당론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전후해 파죽지세로 치닫던 신당 논의가 일단 수그러드는 느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 대통령의 방미기간에 수면아래로 잠복하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고, 신ㆍ구 주류간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마지막 전력 탐색을 위한 운명의 제2라운드를 준비하는 셈이다.


민주당 구 주류의 반격

민주당 구 주류의 반격은 미국을 순방하고 귀국한 한화갑 의원의 발언에서부터 점화됐다. 한 의원은 5월7일 공항에서 “민주당을 끝까지 지키겠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당이 바뀌면 정통성이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상현 의원도 “말로만 개혁신당을 떠들고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솔직히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이 DJ에게 충성해 당선된 사람들이 아니냐”고 뇌관을 건드렸다.

그간 발언을 자제하던 김옥두 의원도 같은 날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해 “누가 누구를 나가라고 하느냐”며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독선”이라고 신 주류의 인적청산론에 극도의 불쾌감을 표시했다. 입을 맞춘 듯 동교동계의 대표 선수들이 일시에 신당 논의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온 것. 이에 힘을 받은 구 주류는 서서히 집단 행동으로 역공자세를 취해 갔다.

이틀 뒤에는 신 주류인 이강철 대구 중구 지구당위원장의 대구시 지부장 직대 임명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정균환 총무는 “당 해체를 주장한 사람을 어떻게 지부장으로 임명하느냐”며 “4ㆍ24 재ㆍ보선에서 당원이 뽑은 고양시 후보는 갈아치우고 이번에는 지구당 위원장의 추천도 없이 지부장을 임명하는 것은 무슨 원칙이냐”며 비난했다.

신기남 추미애 의원의 상임고문 임명안을 놓고도 또 한번 파열음이 났다. 이번에는 이 협 의원 등이 나서 “지도부에서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사퇴한 사람과 다시 일하는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숨죽이던 구 주류가 결연한 자세로 일제히 반격 태세로 돌입한데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도 제기됐다. 물론 동교동측 김한정 비서관은 “당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어른의 조언을 듣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으나 김 전 대통령은 정중하게 사양했다”고 밝혔다. 신ㆍ구 주류로 나뉘어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DJ가 현실정치에 일절 관여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긴 하지만 정치적 해금이후 87년 자신의 손으로 만든 첫 정당인 평민당을 모태로 현재의 민주당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DJ의 손때가 묻어있는데 이에대한 존폐론이 제기되는 것 자체를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주당 텃밭인 호남 출신 의원들도 입을 열었다. 김상현 박상천 강운태 김옥두 천용택 김홍일 의원 등 호남 지역의원 12명은 의원은 최근 모임을 갖고 분당을 통한 신당 반대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나라당은 때를 놓치지 않고 민주당 신ㆍ구 주류의 갈등을 부각시켜 신당 논의의 김빼기 작전에 들어갔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7일 “민주당이 신당 창당에 대해 개혁이니 통합이니 하며 국민을 기만했지만 한화갑 의원은 패거리 정치이며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며 신ㆍ구 주류의 다툼을 ‘추악한 밥그릇 싸움’으로 표현했다.


신 주류, 盧 귀국 후 본격 행보 예상

구 주류와의 정면 대응을 피한 뒤 우회하고 있는 신 주류는 일단 노 대통령의 방미에 따라 최전선에서는 물러나 있다. 적어도 5월16일로 예정된 워크숍 때까지는 특별한 움직임은 자제할 태세다. 그러나 ‘같은 편’끼리 모이는 워크숍에서는 의외의 초강경 방안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구 주류의 신당 반대 움직임이 명확해진 마당에 신 주류 입장에서 내놓을 카드는 ‘탈당 불사’ 등의 정면 돌파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신 주류 내부에서도 온건파 보다는 강경파가 선명성을 앞세워 대세를 장악한 마당에 구 주류와의 타협론이거나 ‘덧셈식 신당’ 등의 방법이 국민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세부적으로는 구 주류에 대한 ‘각개격파’ 전략을 앞세워 선별적인 흡수전략을 펴면서, 동시에 핵심 인사들에게는 내년 총선에서 저격수를 내세워 차별 각을 세우겠다는 목표다. 여기에 당내 논의는 자제하면서도 ‘외곽때리기’ 전법도 병행될 듯 하다.

이미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킨데 이어 앞으로 대구 전북 등지로 확산시킬 방침이다. 밖에서부터 목을 조여오는 차선책이 동원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강경일변도 정책 속에 ‘쉬었다 가야 한다’는 협상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구 주류의 역공에는 구심점이 약한 신 주류 내부에서 빌미를 제공했다는 자성론에서다. 신 주류 강경파가 사전 조율없이 탈당 및 신당 추진을 주장한 것이 스스로 개혁신당론의 입지를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힘을 받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통합적 개혁신당으로 가되, 국민경선식의 상향식 공천을 통해 자연스레 물갈이 시키면 된다는 중재안이 다른 한편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신당에 대한 방향은 설정된 상태에서 인적청산 문제에 과연 어디까지 선을 긋느냐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양상이다.

여기에는 결국 DJ에 대한 특검제 수사여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가뜩이나 최근 심장 수술 등을 받아 DJ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만일 DJ가 특검에 소환돼 조사라도 받게 된다면 호남 민심의 화살은 노 대통령과 신당파들에게 겨눠질 것이란 전망이 이들 온건파들에게는 중요한 요소로 다가오고 있다.

물론 친노(親盧) 강경파들은 “아직도 시대변화를 모르고 DJ에게 정치생명을 구걸하려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막상 이 문제에 직면해서는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있다. 그만큼 호남민심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5/14 10:47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