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가 아니라 COREA다"

영문국호 되찾기 운동, 시민단체 이어 학계 경제계로 확산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다. 그 흐름의 주체로 살고 싶다. Korea를 Corea로 바꿔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최근 인터넷 포털 ‘다음’(www.daum.net)에서 열린 핫이슈 토론 ‘국호 변경 논란, Korea vs. Corea’에 올라온 네티즌의 글이다.

‘Corea’ 되찾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영문 국호인 ‘Korea’를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Corea'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영문 국호를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지난해 월드컵 때 일부 네티즌과 붉은 악마가 표기 변경을 강력 주장하면서 불 붙었다. 월드컵 기간 중 붉은 악마가 사용한 응원 도구 중 ‘Corea’란 단어가 언론에 자주 노출됨에 따라 관심이 촉발된 것이다. 월드컵 기간 내내 확인된 국민적 지지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학계, 시민사회단체, 대학생 등이 “Korea를 Corea로 바꾸자”는 운동에 가세하고 있다.

경제계도 ‘Corea’ 열풍에 동참했다. 1944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제지 회사인 세풍은 4월 9일 페이퍼 코리아(PAPER COREA)로 사명을 변경했다. 새 사명은 과거 우리나라가 고려(Corea)로 불린 역사성과, 고려 시대의 우수했던 종이 문화를 계승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이밖에 우리투자신탁은 지난해 월드컵 붐을 타고 ‘우리 Corea 성장형 주식 HV-1’라는 투자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영문국호는 COREA다”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는 4월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 사무실에서 가졌던 학술연구특별위원회 창립기념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띄웠다.

서굉일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영문국호 Corea -Korea 문제의 현 단계 연구 내용과 과제’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Corea는 잃어버린 우리의 국호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하멜 표류기’뿐만 아니라, 각종 외교 통상 조약에 쓰인 국호 등 12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역사적 자료와 주변 정황을 볼 때 우리나라 국호는 ‘Corea’였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우리의 국호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을 전후로 일제에 의해 총독부 관보를 비롯한 모든 문서에서 ‘Korea’로 변경돼 사용되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일본 국호인 ‘Japan’보다 알파벳 순서를 뒤로 미루고자 하는 일제의 계략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문 국호를 바로잡아 식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도 “1910년 6월 일본이 ‘합병 후의 조선에 대한 시정 방침’을 논의하면서 영문 국호를 C에서 K로 변경하기로 정했다”며 “일본이 우리나라의 영문 국호를 바꾸는데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Corea’ 되찾기 운동은 단순히 국호 명칭 회복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김상일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아픔을 씻고, 국운을 바로잡는 것”이라며 “미국도 이라크를 점령하자마자 공항과 거리 등 이름부터 바꾸기 시작했다”며 국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학자들도 ‘Korea’는 일본의 역사왜곡 산물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최근 일본에 의해 ‘Corea’란 국호 영문 표기가 바뀌었다며 이를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방송은 “1902년 제 2차 영ㆍ일동맹 당시만 해도 C로 시작하던 국명이 1905년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카스라-테프트 협정’ 이후 K로 표기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일제 계략설은 속설” 주장도

이처럼 국호 변경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신중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명칭변경 개입설’에 대해 “근거가 희박한 속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주장의 근거 자료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충실하게 제시돼 있지 않다는 것을 비판하는 시각이다.

고지도 전문가인 국립중앙박물관 오상학 학예연구사는 “1840년 작성된 독일 슈페르트 제독의 외교문서와 1861년 만들어진 ‘중국수로지’(China Pilot) 등 이미 19세기 이전 서양 문헌에서 Korea로 표기한 사례가 여럿 있으며 ‘독립신문’도 Korea로 썼다”고 설명했다.

오 연구사는 “‘ㅋ’ 발음의 표기 통례상 라틴어계 언어들은 Corea로, 독일어계 언어들은 Korea로 표기한 것이 혼용되다가 점차 후자가 우세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은 오히려 ‘조선’의 일본식 발음 표기인 ‘Chosen’을 주로 썼으므로 일제 개입설은 해방이후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또 사회적ㆍ경제적 비용을 고려해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영문 국호를 바꾸게 되면 전세계를 상대로 국호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홍보 활동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기업체들도 회사명 등을 변경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는 견해다.

한 경제 전문가는 “일본이 고의적으로 변경했다는 것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국호를 바꾼다는 것은 감상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 77% 영문국호 변경 찬성

네티즌은 영문 국호를 Korea에서 Corea로 바꾸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포털 ‘다음’이 5월 11일 집계한 네티즌 즉석투표에 따르면 전체 투표자(70,594명) 중 77%(54,324명)가 국호 변경을 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체 투표자의 77%가 역사 되찾기 차원에서 바꿔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국호 변경에 찬성했으며,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해 바꾸는 않는 게 낫다고 반대한 투표자는 19.4%(13,665명)였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3/05/14 16:21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