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칼라 퍼플

흑인판 여자의 일생

스티븐 스필버그는 흥행에 관한 한 남부러울 것 없는 영화 감독이다. 데뷔작 <대결 Duel>(1972)로 주목받아 저예산 추적극 <슈가랜드 익스프레스 Sugarland Express>(1974)로 부터 흥행에 성공해 <죠스Jaws>(1975)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클로스 인카운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1977), <레이더스 Raiders of the Lost Ark>(1981), (1982), <인디아나 존스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the Doom>(1984)로 전세계 영화관을 휩쓸었다.

그러나 <칼라 퍼플 The Colour Purple>(1985)이 아카데미 영화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가도 단 한 개상도 받지 못함으로써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다음 작품 <태양의 제국 Empire of the Sun>(1987) 역시 어린이 시각으로 본 진지한 2차대전 영화지만,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 Indians Jones and the Last Crusade>(1989)으로 다시 흥행 감독으로 돌아섰고, 93년에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7개의 상을 받으면서 비로소 작품성에 대한 인정을 공식 추인받았다.

최근에 스페셜 에디션판으로 출시된 DVD <칼라 퍼플>(12세, WB)을 다시 보니, 스필버그에 대한 편견이 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칼라 퍼플>은 그렇게 푸대접 받을 영화가 아니었다. 아카데미상을 노리고 만든 영화라 해도 원작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면 뛰어들기 힘든 영화이니만큼 의도 자체를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었던 것같다.

<칼라 퍼플>은 세계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스필버그에 대한 시샘 때문에 과소 평가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추측에 신빙성을 더하는 것이 <칼라 퍼플>의 스페셜 피처에 담긴 원작자, 감독, 제작진, 배우들의 회고다. 인터뷰와 제작 당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조상들과의 대화>를 보면 스필버그

감독의 제작 의도가 분명해진다.

19세기 전반, 미국 남부 조지아의 농장을 배경으로 흑인 여성 샐리의 기구한 삶을 그린 ‘흑인판 여자의 일생’인 <칼라 퍼플>. 원작자인 앨리스 파커는 “조상의 이야기이고 조상을 위해 썼다”고 소설 집필 심경을 밝힌다. 이처럼 소중한 책이기에 워커는 영화의 조건으로 “제작진의 반이 유색 인종일 것”을 내걸었다. 파커의 이런 희망을 받아들여 제작진은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파커는 수시로 촬영 현장을 방문해 영화가 왜곡되는 것을 막았다.

스필버그 감독은 “유대인인 나도 소수 민족으로서 억압받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흑인 남성에 대한 응징이 아닌, 여자들 이야기여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주인공 샐리 역을 맡은 우피 골드버그와 소피아 역을 맡은 오프라 윈프리는 당시 신인이었던 자신들을 격려해 준 잊을 수 없는 영화라고 이야기한다.

샐리가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각하는데 도움을 주는 셕역에는 유명한 록스타 티나 터너가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티나 터너는 “난 이미 샐리의 인생을 살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티나가 전 남편에게 맞고 살았던 기구한 삶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만큼 유명하다.

이처럼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여주인공 샐리를 비롯한 등장 인물에 진정으로 공감했기에 <칼라 퍼플>은 재평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칼라 퍼플>은 또한 색채미, 영상미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애초 흑백 촬영을 생각했던 스필버그 감독은 “색에 관한 영화인데 색을 빼는 것이 모순임을 깨달았다”며 코스모스 들판의 칼라 퍼플 재현에 큰 공을 들였다.

또한 퀸시 존스가 참여한 음악을 자랑하면서 스필버그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난 평생 뮤지컬을 만들었다. 드라마든 SF든”

옥선희 DVD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5/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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