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셈신당 가닥 "더 줄 것 없다"

신 주류 통합신당 구체화, 분당 위기·호남소외론 잠재울 카드

민주당 신 주류가 주도하는 신당 시나리오가 가시화되고 있다. 당내 신 주류 중심의 신당 추진 세력들은 5월 16일 구 주류와 일부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워크숍을 갖고 비공식 신당추진 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에서 김원기 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신당 창당은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론 가장 민감한 신당의 인적 자원 결정 문제에 대해서는 김 의장이 “결코 서두르지는 않고 큰 흐름을 확실히 형성한 뒤 당무회의에 붙이겠다”면서 “공천문제도 제도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진행하고 사전에 누구를 배제하는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신당 창당이란 대세는 기정사실화 하되 시작 단계부터 구 주류 측을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하면서 일단 함께 간다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여기에다 시민ㆍ사회단체 세력이 6월 중 전국 단위의 ‘범개혁신당추진운동본부(가칭)’를 구성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신당 창당에 본격 참여키로 했다. 이 조직도 결국에는 신당과 김원웅 유시민 의원의 개혁정당과 공동 보조를 취할 것이란 관측이다.

당 안팎의 분위기로는 신당 대세론이 탄력을 받은 상황이지만 각론에서는 이전과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신당 추진세력 중 개혁신당을 주장하는 강경파보다 통합신당 쪽에 무게를 두는 온건파들이 현실론을 들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중도세력과 구 주류에 대한 합류를 전제로 한 신당이 돼야 분당 위기와 호남소외론을 잠재우고 내년 총선에서의 유리한 고지 점령이 가능하다는 계산에서다.

이 같은 기류변화에 대해 구 주류 측도 태도를 바꾸는 듯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을 모태로 한 신당이라면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구 주류의 중심에 있는 한화갑 의원도 “외연 확대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팽팽히 맞서 있던 신ㆍ구 주류가 ‘덧셈식 신당’이란 절충점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신당에 대한 모호한 정체성과 인적 청산을 주장하며 개혁신당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신 주류 강경파들과의 의견 조율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신ㆍ구주류 타협 불발땐 분당 가능성도

신 주류는 6월중 전당대회를 열어 민주당을 해체한 뒤 당 안팎의 세력과 협의해 8월말까지 창당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9월 정기국회 때 신당으로 새롭게 출범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워크숍에 불참했던 구 주류와 중도파들을 최대한 설득해 임시기구인 신당추진모임을 당무회의에서 인준하는 공식기구로 승격시킬 계획이다.

이전과 같은 강경일변도 자세로는 구 주류 및 중도파들까지 반발에 가세해 자칫하면 분당사태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따라 일단 통합신당으로서의 모양새를 취하면서 반대론자들을 차근차근 포섭하자는 온건파 주장이 대세가 되는 상황이다.

당초 워크숍에서 101명의 의원 중 절반이 넘는 54명이 참여해 “국민과 기간당원이 직접 참여하는 상향식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민참여 정당의 창당에 나선다”는 결의문을 발표할 때만 해도 구 주류에서는 ‘쿠데타적 행동’이라고 일제히 성토하며 민주당 사수 의지를 밝혀 분당 위기가 한층 고조됐었다.

하지만 신 주류 측에서 외연확대 주장이 세를 얻어가는 가운데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에 대한 한총련의 사과요구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면서 뺄셈식 개혁신당 추종자들은 일단 목소리를 아끼는 분위기다.

배기선 의원도 신당의 명분으로 “민주당의 정통성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실현한다”는 점을 제시하되 “민주당의 분당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당내 모든 세력을 아우르는 신당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신당 논의는 당무회의를 거쳐 당 공식기구에서 진행되지만 민주당을 모태로 한 덧셈식 신당 창당으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신 주류는 구 주류와의 타협이 끝내 불발될 경우 당무회의 및 임시 전당대회 소집을 통한 표 대결과 최악의 경우 탈당 후 당 밖의 세력과의 연합전선 구축도 ‘히든카드’로 손에 쥐고 있다.

여기에는 흔들리는 호남 민심과 방미이후 느슨해진 진보세력의 결집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검제 소환조사 여부와 장남 김홍일 의원의 나라종금 사건 연루에 대한 검찰 조사도 정국의 향배를 좌우할 주요 포인트이다.


구 주류, “민주당을 모태로한 신당이라면…”

신 주류의 어정쩡한 신당 창당의 움직임에 구 주류 측은 겉으로는 신당 반대를 고집하면서도 “민주당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유지한다면…”이란 의견도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판 문화혁명’ ‘쿠데타적 행동’ ‘개혁과 통합론은 회유책에 불과’라는 식으로 신당 대세론에 정면으로 저항하던 모습과는 일견 다른 양상이다.

또 중도파의 입장 변화도 눈길을 끈다. ‘통합과 개혁모임’ 측은 “신당추진 모임의 방향이 개혁적 통합정당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며 “신당 논의와 추진기구 설치 등은 의원 총회와 당무회의 등 공식기구에서 조속히 폭 넓은 의견을 수렴해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신 주류 측 구상에 동조한 것이다.

이에 구 주류측에서도 ‘신당 반대’의 깃발아래 결집했던 소속 의원들의 단결력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다. 박양수 의원은 “신당을 반대하면 반 개혁으로 비쳐지는데 통합신당이라면 무작정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고, 이훈평 의원도 “당 공식기구에서 논의해 통합신당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신당 저항선이 신 주류 측의 1보 후퇴 전략에 맞물려 느슨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화갑 의원이 “어떤 경우든 민주당의 분당은 안 된다”면서도 “민주당의 정통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호 개방을 통한 외연 확대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도 구 주류 측 동요에 한몫을 했다.

그러나 구 주류가 앉아서 대문을 열어줄 것이라고는 보는 이는 적다. 앞으로도 신 주류와 신당 창당과 관련해 치열한 의견 다툼을 벌여나가야 한다. 신당의 정체성 규정과 신당 지도부의 인적구성 문제, 민주당 해체 여부와 아직도 의견 합치를 보지 못하는 지구당위원장 폐지와 진성당원 확충을 통한 상향식 공천문제 등이 중대 현안으로 남아 있다.

신 주류 측에서 먼저 개혁적 통합정당 식의 신당이란 추파를 던졌기에 구 주류 측에서도 화답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그래서 양극으로 치달으며 감정싸움으로 비화되던 신ㆍ구 주류의 갈등 양상은 이제 한풀 꺾인 채 중간 지점을 향해 1보씩 좁혀가는 추세이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5/20 15:25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