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만세] 3040세대의 향수를 노래에 싣고

인터넷 음악방송국 '아름다운 세상'
인터넷 음악전령사 아줌마 CJ, 함께 듣고 나누는 방송

“아름다운 세상에 오신 님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두시간 동안 감미로운 발라드 음악과 함께 여러분 곁에 머물겠습니다.”

오프닝 멘트가 끝나자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 나온다. 30~40대가 즐겨 들을 만한 음악들을 골라 내보내는 인터넷 음악 방송국 ‘아름다운 세상’은 청취자수 1~2위를 다투는 명실상부한 인기 방송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이 똘똘 뭉쳐 방송을 시작한지 이제 1년 하고도 2개월. 거의 매일같이 방송을 듣는 고정 팬들도 제법 생겼고, 세 명으로 시작한 CJ도 이젠 16명으로 늘어 났다.

요즘은 음악을 들려 주는 매체가 참으로 다양해졌다.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려 주는 사람을 DJ, 비디오를 매개체로 하는 사람을 VJ라고 한다면 인터넷으로 음악을 들려 주는 사람을 CJ 라고 부른다. 사이버 쟈키 혹은 컴퓨터 쟈키 또 어떤 이들은 채트 쟈키의 줄임말이라고도 한다.

CJ 는 양방향사운드카드가 내장된 컴퓨터와 헤드폰 세트 그리고 마이크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자판을 두드려 신청곡을 올리고 컴퓨터에 접속해 음악을 듣는다는 점만 빼면 라디오 방송과 다를 게 없다. 비교적 시간 운영이 자유롭다는 이유 때문에 주부 CJ 가 많다는 것도 일반 공중파 방송과의 차이점이랄 수 있다.


음악을 들어 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 가져야

“처음에는 컴퓨터 부팅조차 제대로 못했어요. 지금도 컴퓨터에 대해선 잘 몰라요. 오직 음악 파일을 다운 받아 내보내는 음악 방송에 필요한 기능만 알죠.”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컴퓨터가 이제는 제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는 주부 김진애씨(46).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우연히 음악 방송하는 법을 익히고 난 후부터는 무료하기만 했던 오전 시간이 활기가 넘친다. 마치 출근 준비하듯 서둘러 집안을 치우고 나서 모니터 앞에 앉으면 정겨운 친구들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에 마음이 푸근해 진다.

“시들었던 마음에 감정이 다시 살아 나는 것 같아요.” 진진이라는 애칭으로 CJ를 보고 있는 44세 주부 김은지씨는 음악 방송을 하고 나서부터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사소한 일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느낌과 상황을 기억해 두려는 버릇이 생긴 것. 방송을 함께 듣는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버릇이라고 한다.

“컴퓨터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필수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 방송을 들어 주시는 분들에 대해 고마워 할 줄 아는 마음인 것 같아요.” ‘살다보면’ 이라는 애칭을 사용하는 CJ 정희씨는 음악 방송을 내보내는 일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 버렸다. 많을 때는 300명이 넘는 청취자가 자신의 방송을 듣는다는 정희씨는 ‘아름다운 세상’의 인기 CJ 중 한 명이다.

전문 DJ 뺨치는 고운 음색과 자연스런 멘트 솜씨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청취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그녀의 인기 비결. 신청곡들을 일일이 검색하여 음악 파일을 다운 받고 사연을 소개하는 일이 때로는 성가실 법도 한데 그녀는 이 모든 일을 몹시 행복해 하며 진행한다. 살림하는 틈틈이 좋은 시들을 골라 보기도 하고, 이것 저것 새로운 음악들을 들어 보기도 한다.

그녀의 방 책장에 나란히 꽂힌시집 십 여권도 음악 사이사이에 시를 낭송해 주기 위한 방송 자료인 셈이다.


가족의 배려 없이는 힘들어

하지만 음악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자리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한 가정의 주부요 아이들의 엄마인 탓이다.

“음식을 수도 없이 태웠어요.(웃음) 이젠 방송 중에 요리는 절대 안 해요.” 음악이 나가는 사이 잠시 가스 불 위에 요리할 재료를 얹어 놓고 돌아 와 사연들을 소개하고 음악을 신청 받아 내보내노라면 그만 깜빡 잊어버리기 일쑤다. 아직 자녀가 어린 CJ들은 아이의 울음소리나 형제끼리 다투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파에 실려 나가는 방송사고도 종종 일으킨다.

“남편이 차라리 컴퓨터와 살라고 비아냥거릴 때가 제일 힘들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신나서 할 뿐인데, 남편은 채팅을 통해 음악을 방송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한가 봐요.” 남편과 아이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된다.

채팅을 통해 신청곡과 사연을 접수 받고, 채팅 룸을 만들어 음악방송을 찾아 오게 만드는 인터넷 음악 방송의 특성상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이들 주부 CJ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남편을 아주 멋진 남자라고 소개하는 강지라는 애칭의 주부 이선애(31)씨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음악 방송을 진행한다. 방송 중 혹 소음이라도 새어 나갈까봐 남편이 아이를 돌보며 안방에서 꼬박 두시간을 숨죽이고 기다린다.

“처음에는 물론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이제는 제가 하는 방송을 들으며 가끔씩 모니터링을 해주기도 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어요.”


3040세대의 편안한 쉼터가 되었으면

교복 차림으로 학교 앞 음악 다방에서 수줍게 음악을 신청하고, 깊은 밤 심야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귀 기울여 듣던 소녀들이 지금의 3040세대이다. 비디오문화가 지금처럼 흔치 않았고 딱히 마음을 붙일만한 놀이 문화가 거의 없었으므로 다들 자연스레 음악에 심취해 살았다.

“우리 또래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들을만한 공간이 별로 없어요. 공중파 방송에서는 거의 소외 된 상태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 잊혀진 곡이나 당시에 유행했던 노래들을 많이 올려요”.

40대 주부 CJ 서은주씨가 보유하고 있는 ‘그 때 그 시절’ 음악 파일만도 4천곡이 넘는다. 도대체 그 곡을 어디서 구했냐며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물어오는 청취자들도 많다고 한다. “같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모여 추억도 되새겨 보고 일상의 피로와 고단함을 잠시나마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음악이 갖는 위대한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CJ 로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황순혜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5/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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