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속(續) 노문스럽다?

지난 주 이 칼럼에서 ‘노문스럽다?’는 표현을 썼더니, 몇 사람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원래는 ‘노문스럽다?’가 아니라 ‘이상과 현실 사이’란 제목을 달았는데 원고를 넘기기 전날 한 모임에서 ‘노문스럽다’는 말을 듣고선 바꿨다.

A:“노통(노무현 대통령)은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어. 물류대란으로 (수출입이 막히는 등) 저 난리가 났는데, 미국서는 ‘미국이 아니었으면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나 하고 있으니…”

B:“그러게, 걱정이야. 취임한지 아직 석달도 안됐는데, 워낙 난리를 치니까 한 삼년은 지난 것같애”

A:“그게 개혁의 피로라는 건데, 노통의 쓸데없는 말 때문에 더 심해졌어. 여기 가서는 이 말 하고 저기 가서는 또 저 말하니,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있어야지.”

C:“그걸 요즘 뭐라는 줄 알어? 노문스럽다고 한대”

A:“노문스럽다?”

C:“그래. 검사스럽다는 말에 빗대서. ‘노무현스럽다’고 하니 너무 길고 앞의 두 글자를 따 ‘노무스럽다’고 하면 ‘놈’같이 들리잖아. 그래도 대통령인데. 그래서‘노문스럽다’고 하는 거래”

처음부터 노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에 덧걸이를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권위를 깎아 내리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약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 주려는 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현실의 높은 벽을 갇혀 허우적대는 현상을 지적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노 대통령의 전략이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거나,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흐르다가 대세를 그르치는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지난 3월 노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의 대화 이후 급격히 번져나간 유행어 ‘~스럽다’ 의 노무현 버전인 ‘노문스럽다’를 차용해 왔다.

문법적으로 ~스럽다는 이름씨 등에 붙어서 그림씨를 만드는 말이다. 스럽다 외에 ~롭다·~답다·~되다·~지다·~궂다·~맞다·~차다 등이 있다. 그 중 ~답다와 ~스럽다 는 무척 생산성이 센 말로서, 주로 이름씨 뒤에 붙어 ‘그럴 만하다, 그런 성질이나 자격, 특성이 있다’는 뜻을 더한다고 한다.

포탈 사이트의 검색 창에 ~스럽다 를 쳤더니 많은 정보가 올라왔다. 유행어 ‘검사스럽다’는 이미 새끼를 치고 또 쳐서 “한 말을 또 하고 또 또 하고 짜증날 때까지 말하는 사람”을 비롯해 20여개의 뜻이 올라 있다, 노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놈현(노무현)스럽다’는 표현도 눈에 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뜻풀이가 달려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맞습니다, 맞고요’를 외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행동을 하는 사오정을 일컫는다”고. 또 “발설했다가는 완전히 왕따돌림 당할 수 있으므로 따라 하거나 넷(온라인)상에 유포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게 신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가? 오프라인상에 도는 것은 ‘놈현스럽다’가 아니고 ‘노문스럽다’는 인 것이. 솔직히 ‘놈현스럽다’보다는 ‘노문스럽다’가 더 점잖고 당기는 맛을 준다. 주변의 견해를 모아보면 ‘노문스럽다’는 “들을 땐 그럴듯한데 돌아서면 달라지거나, 내용이 없는 경우” “현실을 고려 않고 머릿속에서 모든 것을 혼자 다 하려고 하는 사람” “원칙없이 왔다갔다 하거나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 대처를 하다가 대세를 그르치는 햄릿식 인간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또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최근의 신세 한탄 때문에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밷는 좀생원”등도 오를 것 같다.

온라인상에는 역대 대통령의 이름에다 ~스럽다 를 붙여놓은 게 많은데, 자리가 자리이고, 역대 대통령의 스타일이 그만큼 대조적이고 개성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퇴임한 지 얼마되지 않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중스럽다’는 “무슨 일이나 개혁이 빨리 진행되지 않고 미적미적하거나 두루뭉술한 상황”을, ‘영삼스럽다’는 “지적으로 미흡한 사람이 나서다가 결국 일을 크게 그르치는 경우”를, ‘두환스럽다’는 “과거의 영화에 얽매어 세상 바뀐 줄 모르고 뻔뻔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르키는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또 반전 데모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공격을 명령한 부시 미 대통령은 ‘부시스럽다’(자신이 하면 악도 선이고 남이 자신의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선도 악이라고 우기는 것)로 남았다.

이렇게 ~스럽다 를 붙여 유명 인사나 특수 집단의 행동이 시대 흐름과 어긋날 때 사용하면 감칠 맛도 나고, 미묘한 뉘앙스를 손쉽게 전달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상황은 ‘노문스럽다’는 말로 웃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심각하다.

나사 풀린 국가기강에 경제 위기, 북핵 문제까지 노 대통령이 추스려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노문스럽다’는 말에 어려운 나라살림을 되살린 진정한 지도자의 의미가 들어가기를 기대한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3/05/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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