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은방울꽃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은 산딸기’라는 동요가 있기는 하지만 잎새 뒤에 숨어서 피어 나는 고운 꽃을 고르라면 은방울꽃이다. 나무가 들어찬 숲 속, 간간이 드러나는 틈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찾아드는 곳에서 넓적하게 두 갈래로 펼쳐진 잎새 사이에 숨어 있는, 작고도 순결한 백색의 은종들이 조랑조랑 매어달린 은방울꽃을 우린 만날 수 있다.

은방울꽃이란 이름도 이 고운 꽃의 모양을 따서 붙여졌겠지만, 실제 은방울꽃은 둥근 종과 같은 모양이며, 뒤로 살짝 말린 여섯 갈래의 잎 끝이며 작은 꽃들이 서로 사이 좋게 달려 있는 모습이며, 수줍은 듯 휘어져 고개 숙인 모습이며 모든 면에서 분명 이름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꽃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봄바람에 실려 오는 은방울꽃의 향그러움은 워낙 특별하여 뭇사람들의 향기를 대신하는 향수의 원료가 될 정도이니 현란하고 화려하진 않아도 꽃 가운데 이만한 꽃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은방울꽃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동시베리아 등 북반구의 여러 나라에서 자란다. 다 자라면 꽃자루의 높이 까지 합쳐서 20~30㎝ 정도 큰다. 이른 봄이면 땅 위로 막질의 풀모양의 잎이 몇 장이 올라오고 그 속에서 2장의 잎이 나와 밑부분을 서로 얼싸안아 원줄기처럼 된다.

이어 손바닥처럼 넓게 퍼지는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길이 12~18㎝, 폭 3~7㎝로서 끝이 뾰족하며 뒷면은 연한 흰빛이 돈다. 꽃은 두 장의 잎이 활짝 펼쳐지기 전 안쪽에서 꽃자루가 올라오고 자루를 따라 서너개에서 많게는 10개 정도 달린다. 열매는 구슬처럼 둥근데, 붉게 익어 예쁘다. 땅속에는 땅속줄기가 뻗어 가면서 군데군데에서 땅 위로 새순이 나오며 그 밑부분엔 수염뿌리가 있다.

은방울꽃은 향기가 있기 때문에 향수란(香水蘭), 영란(鈴蘭 또는 瓔蘭), 초옥란(草玉蘭)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봄에 피므로 오월화, 꽃의 모양으로 보고 초롱꽃 등으로 부른다. 일본인들은 은방울꽃을 방울처럼 생긴 난초라는 뜻으로 ‘사스랑’이라 부르며 매우 사랑하여 정원같은 곳에 군락으로 많이 심어 놓고 축제처럼 즐기기도 한다.

유럽사람들도 은방울꽃을 매우 좋아한다. 서양의 은방울꽃은 우리와 거의 비슷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처럼, 우리 꽃보다 꽃의 크기가 크고 잎에는 약간 흰빛이 도는 듯 싶다.

영국에서는 은방울 꽃을 두고 계곡의 백합(Lily of Vally)이라 하고 독일에서는 5월의 작은 종, 프랑스에서는 꽃송이들이 차례차례 달리는 모습과 비유하여 ‘천국에 이르는 계단’이라는 최고의 별명을 붙여 주었고 오월의 은방울꽃 꽃다발이 행운을 준다고 하는 풍속이 있어 이때가 오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칠 은방울꽃 묶음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봄의 여신이라고 하는 오스트라가 은방울꽃의 수호신이며 별명은 ‘성모의 눈물’이라고 한다. 모든 이름이나 별명이 성스럽고 순결한 이미지와 잘 맞는다.

은방울꽃은 여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독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름다운 꽃은 물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어린 싹도 위험하다. 잘못 먹으면 심부전증을 일으켜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독있는 식물이라고 한다.

한방에서는 붉게 익은 열매를 강심제나 이뇨제, 혈액순환 촉진제 등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뿌리는 8월경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두었다가 쓰는데 이뇨, 활혈, 거풍 등에 효과가 있어 심장이 약하거나 종기, 타박상,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 등에 처방한다고 한다.

공원의 나무 그늘 밑에 군식하여도 좋고 분에 몇 포기가 어울어지게 심어도 좋다. 꽃이나 잎을 절화용으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특히 신부들의 부케에 많이 쓰인다. 꽃에서는 향기나는 기름을 뽑기도 한다.

가는 봄을 잡으려고 산길을 떠났다면 넓은 잎새에 가려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잎새를 들추어 보일 듯 보일 듯 숨어 있던 그 아름다운 은방울꽃의 모습을 찾아내는 행복을 맛보길 바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2003/05/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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