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프레소] 100개의 황금손가락이 빚는 환상무대

‘100개의 황금 손가락’.

1995년부터 1~2년에 한번씩 한국의 재즈팬을 매료시켜 온 무대다. 손가락이 100개니 10명이다. 황금 같은 손가락의 주인공들, 이 시대 재즈 피아노를 대표하는 거물들을 매년 10명씩 초빙해 가져 오고 있는 행사다. 더러 빠뜨린 해도 있어, 올해가 다섯번째 무대다.

넓은 무대, 한대에서 네 대의 그랜드 피아노가 덩그라니 놓여 있다. 드럼과 베이스는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 책에서만 보던 거장을 여기서 보기도 했고, 최근 부각돼 음반으로만 만나던 신예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2001년 내한했던 존 루이스, 그 이듬해 30대의 나이로 할아버지뻘의 선배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웠던 브래드 멜다우가 그랬다. 특히 MJQ 출신의 루이스는 내한 공연 이듬해 노환으로 세상을 뜨고 말아, 그의 아내 머자나 루이스와 함께 인터뷰 할 수 있었던 행운에 내심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또 차세대 재즈 피아노를 이끌 재목으로 국내에서는 음반을 통해서만 알려졌던 멜다우는 그 자리를 빌어 국내 팬들과 첫 대면을 가졌다. 이듬해에 자신의 그룹과 함께 내한 공연을 가졌던 것이 바로 그 무대 덕택이었다.

한해 한해 연륜이 쌓여 가면서 국내 재즈팬들은 이 무대가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됐다. 좌석이 매진되는 바람에 정장을 한 어떤 관객은 공연장 통로에서까지 앉아 보는 해프닝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공연이다.

스탠더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무대는 재즈에서 피아노란 악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새삼 증명해 보일 자리다. 솔로, 듀오, 트리오, 쿼텟 등 다양한 편성에서 때로는 릴레이 연주까지, 다양한 연주 양식이 시도된다.

이번 공연은 5월 23일 일본에서 시작해 13개 도시에서 한번씩 무대를 펼친 뒤 이번에 한국에서 대미를 갖는 자리다. 다음은 이번 연주자의 면면.

흑인 특유의 끈끈함을 피아노로 구현한 주니어 만스, 찰리 파커, 덱스터 고든 등 거장들과 함께 활동한 돈 프리드먼, 97년 이래 재즈 전문지 ‘다운 비트’의 피아노 부문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해 온 케니 배런, 링컨 재즈 오케스트라 등에서 윈턴 마살리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성 에릭 리드 등 이들은 모두 혼자서 몇 시간씩이라도 무대를 꾸밀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번 무대에는 현대적 재즈 어법에 강한 르네 로스네가 홍일점으로, 등장해 또 다른 관심을 끈다.

주니어 만스와 레이 브라이언트는 그들의 장기인 하드 밥 연주로 즉흥성의 묘미를 맛 보게 한다. 만스는 올해 75세로, 최고령자이다. 꾸꿋하게 앨범을 발표하는 그는 바로 재즈의 산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열정의 대극에 서는 것이 재즈의 쇼팽 빌 에번스가 현현했다는 말을 듣는 돈 프리드먼의 명상적 피아노다.

재즈의 거성 아트 블레이키와 오스카 피터슨의 총애를 받았다는 베니 그린, 그래미와 다운 비트 등 음악전문지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지목된 케니 배런 등은 이미 거장의 반열을 넘보는 사람들이다.

각자 나름의 일가를 이룩한 자들이다. 이들이 하나의 곡을 가지고 연주한다는 것은 연주자의 수만큼 서로 다른 곡을 듣는 것과 똑 같다. 이 무대가 즉흥의 참 맛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또 재즈 아닌 재즈가 범람하는 이곳에서 참 재즈란 어떤 것인 지, 어떤 감흥을 선사할 것인 지를 실증할 무대이기도 하다.

피아노에 버금가는 능숙한 반주가 무대를 받쳐 준다. TV 프로 ‘세서미 스트리트’의 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한 베이시스트 밥 크랜쇼, 힘과 섬세함을 겸비한 드러머 그레디 테이트의 능숙한 반주는 재즈에서 리듬 악기로 분류되는 두 악기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 모든 사람들의 연주를 두고 ‘화려한 잼 세션’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나의 텍스트가 주어지면 각자의 기량대로 최대한의 즉흥을 구사하는 이 무대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잼 세션 본연의 의미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9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02)762-7304.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3/05/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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