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여름향기'의 사랑이 온다

송승헌·손예진이 그려낼 운명적 사랑이야기

2000년 가을은 송승헌과 원빈 그리고 송혜교로 시작해 그들로 끝이 났다. 2001년 겨울의 처음과 2002년 겨울의 끝은 배용준 최지우와 함께 했다. 그렇다면 2003년 여름은 과연 송승헌과 손예진으로 시작해서 끝이 날 것인가?

7월 7일 KBS에서 첫 방송 할 예정인 한 드라마를 놓고 일간지와 스포츠지를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에서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시작도 하지 않는 드라마에 대한 팬클럽이 결성되고 인터넷 사이트에 드라마와 관련된 카페가 속속 개설돼 7월의 방송을 기다리자며 때 이른 성원을 보내는 등 이상 열기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는 장소의 모든 편의 제공을 내세우며 드라마 촬영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분명 극성스런 반응이다. 한달에 30여개의 각종 드라마가 KBS, MBC, SBS 등 방송 3사를 통해 방송된다. 하지만 이처럼 방송 전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는 극히 드물다. 아우성의 진원지는 바로 윤석호PD다.

그는 2000년 가을에는 ‘가을 동화’로, 2001~2003년 겨울에는 ‘겨울 연가’로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 설레며 손만 닿아도 이내 터져버리는 봉숭아 같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10대에서부터 속물스러움이 생활이라는 영역으로 환치되며 웬만한 자극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중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윤석호 PD에 쏠린 눈과 귀

윤석호PD가 애초부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의도한 것처럼 돼버린 계절 연작의 세 번째 드라마 ‘여름 향기’가 일반인과 언론의 열띤 관심 속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촬영장소 헌팅과 주연 캐스팅을 마치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름 향기’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드라마의 무대는 어디가 될 것인가, 어떤 갈등으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인가, 배경음악은 어떤 것이 사용될 것인가 등등 드라마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도 그럴 것이 시트콤의 고정 출연 정도로만 연기자로서의 존재를 시청자에게 알렸을 뿐인 송혜교와 송승헌, 설익은 연기로 각광받지 못했던 신인 연기자 원빈이 ‘가을 동화’로 스타덤에 올랐고 배용준과 최지우는 ‘겨울 연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스타성을 한껏 높였다.

‘가을 동화’의 무대가 됐던 강원 양양의 폐교를 비롯한 촬영 장소는 국내 시청자뿐만 아니라 한류 열풍을 타고 ‘가을 동화’를 접한 대만, 중국인들의 관광 1순위로 부상했다. ‘겨울연가’ 무대였던 남이섬 등은 ‘겨울연가’의 방송으로 평소 관광객보다 10배가 넘는 사람들이 찾았고, 최근 일본 방송을 통해 ‘겨울연가’를 접한 젊은 일본인들은 ‘겨울 연가’ 배경지를 방문하고 있다.

이뿐이랴. 중년층에게 익숙하지만 10대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가을동화’의 배경음악 ‘로망스’는 세대의 간극을 일시에 없애버리며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악으로 자리잡게 했으며 ‘겨울 연가’는 이름조차 생소한 신인 가수 류가 부른 주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와 ‘못 잊어’가 방송에서, 길거리에서 내내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가을동화’와 ‘겨울연가’의 주연들의 헤어스타일은 방송 다음날 젊은이들의 머리 모양이 됐고 그들의 패션과 소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극중 대사는 연인들에게 애용되는 사랑을 증표 하는 언어로까지 자리잡았다.

상황이 이러니 윤석호PD의 ‘여름 향기’에 때 이른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름 향기’에서 시청자들에게 진한 성하(盛夏)의 향기를 내뿜을 사람은 손예진과 송승헌이다. 윤PD와 ‘가을 동화’에서 함께 작업했던 송승헌은 송혜교와 주연을 했으면서도 조연에 불과했던 원빈의 뜻하지 않는 인기(?)에 눌리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선 명실공히 시청자의 눈길을 잡는 선봉장으로 나선다.

이영애 최지우 명세빈 김하늘 등 청순한 이미지의 배우 계보를 이으며 드라마와 영화에서 캐스팅 1순위로 오른 손예진이 송승헌과 함께 ‘여름 향기’를 발산할 예정이다.

“손예진은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미인이라는 인상을 받았으며 착한 눈빛이 인상적이고 촉촉한 느낌이 좋다. 송승헌은 강렬한 느낌을 주는 숯검정 같은 눈썹은 그의 장점이자 한계인데 이번 작품에선 그 눈썹이 변하고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설 것이다.” 윤석호PD의 이들 캐스팅에 대한 배경 설명이다.


남도의 여름풍경 만끽

그리고 이전 두 작품의 무대가 주로 강원이었지만 이번 ‘여름 향기’의 무대는 윤석호PD가 유년의 삽화를 그렸던 전라도이다. 전남 보성의 조형미 넘치는 차밭, 전북 무주의 짙푸른 숲, 전남 담양의 시원스런 대밭, 전북 고창의 고즈넉한 산사와 변산반도의 싱그런 햇살이 ‘여름 향기’의 방향제로 사용될 것이다.

윤PD는 “앞서 만든 두 작품과 다른 느낌과 영상을 연출하기 위해 전라도를 선택했다. 남도의 여름 녹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영상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주제와 내용전개, 캐릭터의 성격 설정에 비를 주요한 소재로 활용하려고 한다. 화면이 비로 촉촉하게 젖을 것 같다. 물기 어린 느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초반 배경이 장마철이다. 폭우로 산에서 길을 잃고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남녀가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 드라마 전반을 수놓을 것이다”라며 드라마의 주제를 넌지시 알려준다.

윤석호PD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가 연출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내일은 사랑’ ‘느낌’ ‘컬러’ ‘순수’ ‘은비령’에서부터 ‘가을동화’ ‘겨울연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견지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설렘이 상실된 삶은 황량하기만 하다. 설렘을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정말 자기 인생을 모두 거는 운명적인 사랑이야말로 우리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을 하며 멜로 드라마의 옹호론을 펼친다.

‘운명적인 사랑’ 이라는 언급은 윤PD의 드라마에 동시에 쏟아지는 인기와 비판에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사랑의 의미마저 퇴색하고 만남에서 헤어짐으로 가는 길은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일회용 사랑과 인스턴트 사랑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사랑 방식이 된 지 오래다.

좋은 상황과 조건에서 만나다 조금만 힘들어지거나 약간의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쿨’이라는 용어를 들이대며 자로 잰 듯한 정확함으로 작별을 고한다. 이를 두고 세련된 연인이라는 논리까지 동원된다. 사람들은 이런 사랑방식이 대세라 한다. 사랑의 유효성을 논하는 것 마저 촌스럽게 여기는 것이 요즘 현실의 속내다.


몽환적 사랑, 그리고 순수

현실이 이런데도 윤PD는 모든 것을 거는 운명적인 사랑, 그것도 몽환적 사랑을 그리려 한다.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철저히 계산된 사랑이 횡행할수록 가슴속 저변에선 역으로 순수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그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바로 윤PD는 그러한 사람들의 본능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윤PD 드라마 속의 사랑이 매우 단순유치하고 신파조라고 비판하면서도 그의 드라마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정말 인생을 바쳐 사랑을 해봤다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현실에서 사랑을 하다 지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속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사랑에 대한 희망을 되살린다면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희망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사랑을 그린다.” 사랑에 대한 기대, 삶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기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그의 연출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랑을 그린 드라마와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윤PD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해답은 윤PD의 드라마 촬영장을 찾으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는 그림 한 장면을 잡기 위해 햇빛과 조명, 그리고 장소의 방향 등을 결벽증환자처럼 연구하며 촬영에 들어간다. 그러한 촬영의 결과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영상으로 표출된다.

그는 영상을 위해 내용까지 수정하는 스타일이며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출자이다. 롱테이크 등 다양한 촬영 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영화와 달리 텔레비전 드라마는 매체 특성상 클로즈업을 위주로 할 수밖에 없는데 윤PD의 영상은 영화의 화면처럼 감각적인 영상을 느끼게 하고 이 때문에 대중문화의 폭발력을 갖고 있는 10~30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사실 ‘가을 동화’나 ‘겨울 연가’의 평균 시청률은 20~30%대로 일반 드라마보다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엄청난 시청률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PD의 드라마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은 대중문화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며 여론을 선도하는 10~30대를 움직여 이들이 강력한 드라마의 지원자로 나설 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의식과 생활의 유행의 코드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PD의 드라마에 대해 “현실이 거세된 사랑타령은 대중들의 진정한 의식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라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사라지고 사랑의 의미마저 박제된 각박한 현실에서 드라마 한편을 보며 잠시 동안 사랑의 순수성과 영원성, 그리고 운명성을 맛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5/29 16:1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