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어린이, 청춘, 그리고 남과 여

프랑소와 트뤼포 박스 세트

DVD로 영화를 감상하면서 비디오 기기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어떻게 저런 화질로 영화를 봤을까. 전후좌우로 잘린 화면은 또 어떻고. 비디오로 본 영화는 영화라고도 할 수 없는, 줄거리 파악에 지나지 않는 거였어. 비디오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에 대한 모욕에 다름 아니군”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DVD로 영화 감상하는 데 중독된 이들은, 돈 걱정이 부쩍 늘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고전 명작들이 한 두개도 아니고, 시리즈나 박스 세트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작만 일별해 봐도 감독 이름 하에 묶인 것으로는 <프랑소와 트뤼포 박스 세트> <스파이크 리 박스 세트> <베르너 헤어조그 박스 세트> <프랑소와 오종 박스 세트> <알프리드 히치콕 시리즈> <로베르 브레송 박스 세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박스 세트> <페데리코 펠리니 박스 세트>를 꼽을 수 있다. 주제별 모음집으로는 <몬스터 콜렉션> <뮤지컬 콜렉션> <아카데미상 시리즈> <러시안 클래식 시리즈> <에픽 트리올로지> 등이 있다.

이 묵직한 고전 명작들은 화질과 음질 보정은 기본이고, 영화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해주는 코멘터리나 제작 다큐 등의 스페셜 피처를 곁들이고 있다. 아예 작은 해설서를 만들어 공들인 패키지와 함께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프랑소와 트뤼포 박스 세트>도 우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보았던 트뤼포의 대표작을 깨끗한 화면으로 다시 보는 감회에다 스페셜 피처의 기록 필름들도 여간 귀한 것들이 아니다. 5개의 타이틀을 링바인더에 끼울 수 있도록 한, 앨범형 케이스 역시 칭찬을 많이 들었다. 따라서 세련된 외장만 보고도 지갑을 열고 싶어 안달하게 된다. <프랑소와 트뤼포 박스 세트>(알토미디어)에 포함된 작품들은 5편이다.

소년의 성장을 그린 1959년 작 <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청춘기의 사랑을 그린 1968년 작 <훔친 키스 Baisers Voles>,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를 탐색한 1961년 작 <줄르와 짐 Jules et Jim>, 중년 남성의 외도를 소재로 한 1964년 작 <부드러운 살결 La peau douce>, 미국 갱 영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1960년 작 <피아니스트를 쏴라 Tirez Sur Le Pianiste> 등이다.

여기에는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평생 추구했던 테마가 담겨있다. 어린이에 대한 매혹, 청춘의 성장, 남과 여의 관계, 미국 문화와 영화에 대한 동경이 그것이다.

트뤼포가 추구했던 또 하나의 주제는 영화 자체에 대한 매혹과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대한 사랑을 꼽을 수 있다. 이 테마를 대표하는 작품은 워너사에서 출시된 <아메리카의 밤 Day for Night>이다. 이는 영화 촬영 현장 이면에 카메라를 들이댄 즐거운 작품으로 1973년에 발표되었다. 이렇게 모두 6편의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부드러운 살결>이다.

영화는 남녀의 꼭 잡은 손을 클로즈 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녀의 사랑이라는 가장 흔하지만 특별한 감정을 이야기할 것임을 드러내는 도입부다. 존경받는 작가이자 출판사 사장이며, 귀여운 딸의 아버지이고 성실한 가장인 피에르는 젊고 아름다운 스튜어디스 니꼴과 사랑에 빠져 아내와 이혼하고 니꼴과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니꼴은 두 사람이 함께 살 집을 둘러보며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중년 남자에게 찾아온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 묘사가 너무나 적확해서 마음의 파문이 한동안 가라앉질 않는다. 카트린느 드누브의 언니인 프랑소와즈 돌레악이 자유분방하고 천진한 사랑으로 부르주아계 중년 남자의 생을 송두리채 뿌리 뽑는 니꼴 역을 맡았다. 중년 남성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옥선희 DVD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5/2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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