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제2의 아우성'에 건다

성교육 강사 구성애의 ‘아우성’이 다시 바람을 일으킬 조짐이다. 그 바람의 바깥엔 성폭행으로 얼룩졌던 그녀의 피맺힌 고백도 흘러 다닌다. 성폭행범이 누구였는지, 왜 자궁을 들어내야 했는지, 그녀의 아픈 과거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누군가 불쑥 이런 말을 내뱉었다. “구성애는 안 생겼잖아?” 얼굴이 무기(?)인데, 그녀가 어떻게 성폭행을 당했는지 의문스러워 하는 듯한 말투다.

성폭행이라는 범죄가 일어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피해자인 여성에게서 찾으려 한다. 여성이 남성를 유혹해서, 혹은 적절한 대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다는 식이다. 그러니 안 생긴 여성이, 성적 매력이 별로인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성폭행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여긴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의하면 성폭행이라는 범죄는 전적으로 여성의 외모나 나이 등에 상관없이, 육체적인 힘의 우월성을 인정 받고자 하는 남성들의 왜곡된 ‘힘의 논리’에 의해 저질러진다. 구성애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힘의 논리’에 의한 성폭행 피해를 막고자 동분서주한다.

엊그제 신세대 탤런트 김승현이 남 몰래 세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됐다. 성에 무지했던 18세 고교생 때 그의 학교 1년 선배인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사랑했기에 아기를 뗄 수 없었다”며 눈물 어린 과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이런 그에게 많은 네티즌들의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 성숙함을 칭찬하고 싶다는 얘기들 일색이다. 몇 해전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다는 고백으로 인기가 치솟았던 탤런트 윤다훈처럼 그의 주가도 이번 사건으로 오히려 높아질 듯하다. 미혼모는 있어도 미혼부는 없는 나라이기에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는 이들의 태도가 박수를 받는 걸까?

성폭행의 원인을 피해 여성에게서 찾는 심리나, 김승현을 칭찬하는 심리나 결국은 닮은 꼴이다. 남성은 자신의 성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게 우리 사회다. 시대가 바뀌어도 좀체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 남성 우위의 일그러진 성 문화를 젊은 세대에서부터 바꾸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는 구성애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3/06/03 14:15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