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웃음에 담긴 눈물의 의미

며칠 전 탤런트 이유진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자신이 혼혈임을 밝혔다. 그 동안 이유진의 얼굴 생김을 둘러싸고 혹시 혼혈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유진과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었다. 자신의 연예활동에 지장이 생길까봐 사실을 은폐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감출 수가 없어서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게 됐다는 이유진의 슬픈 가족사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은 변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머리염색을 한 젊은이를 보면 입맛이 싹 달아난 표정으로 혀를 차는 어른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웬만큼 쇼킹한 색깔이 아닌 다음에야 그다지 시선도 끌지 못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에도 혼혈아가 있었다. 그 아이가 길거리를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는 했었다. 금발에 훤칠한 키가 돋보이던 그 남자아이는 무척이나 슬퍼하며 마구 달려갔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본 혼혈 남학생은 많은 사람들이 힐끗힐끗 보는데도 이미 면역이 되었던지 무심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고 국제적인 감각이 통용되고 있어도 아직은 혼혈이라는 존재가 사람들의 시선을 충분히 끄는구나 싶었다.

요즘도 이런데 몇 십년 전 혼혈로 태어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까. 연예계에도 이런 혼혈인들이 많이 있었다. 신세대 스타인 윤미래나 소냐도 혼혈이라는 것 때문에 특히 더 주목을 받았고 그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혼혈 1세대라 불리는 인순이, 윤수일, 함중아, 박일준 등이 있다.

어렸을 적, 남모를 고통과 눈물을 삼켰을 그들은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신하듯 연예인으로 성공했다. 뛰어난 가창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부동의 인기를 고수하고 있는 인순이. 결혼과 가수생활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순이는 딸을 미국에서 낳았다. 딸을 낳고 토크쇼에 나왔던 인순이는 그때의 초조하고 복잡미묘했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었다.

“배는 불러가는데 아기가 그냥 나올지 선탠을 하고 나올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눈물이 길게 선을 그으며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었다. 무척이나 괴로웠을텐데도 세련된 조크로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던 인순이의 그때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었다. 지금도 윤수일의 아파트는 세대의 구분없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부르는 애창곡이 되었고 빅게임이 열리는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최고의 응원가로 사랑받고 있다.

홍대앞에 있는 카페에 가보면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젊은 여자들과 아무 거리낌없이 붙어 앉아서 술을 마시며 사랑을 불태우고 있다. 또한 농촌에서는 장가를 못간 노총각들이 러시아나 동남아의 아가씨들과 국제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요즘 SBS 웃찻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이태식이 지방행사때문에 김포공항에 갔다가 박일준을 만났다. “오, 이태식… 너 출연하는 거 잘 보고 있다. 하여튼 코미디에서 뜨려면 특이한 걸 해야 돼. 황마담처럼 여장을 하든가.” “선배님도 예전에 코미디프로에 출연 하셨잖아요?”

이태식의 질문에 박일준은 껄껄대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그래 나도 코미디할때 특이한 거 했었어.”“뭐 하셨는데요?” “튀기!”

역시…. 고수는 다르다. 눈물을 웃음으로 표현할 줄 안다. 그 웃음에 내포된 한 가닥 눈물을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강한 생명력을 가진 진정한 프로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2003/06/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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