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갈데까지 가보자"

민주당 신당론, 첩첩산중→점입가경→갈수록 태산→?

마주 보고 달리는 급행열차 두 대가 정면 충돌을 향해 가속 페달을 거듭 밟고 있다. 신당 논의를 둘러싼 민주당 신ㆍ구 주류의 세 대결은 장외 신경전을 넘어 장내 혈투로 변하더니 6월 첫째 주에는 사생결단의 대 폭발로 이어질 전망이다.

워낙 양쪽의 입장 차이가 현격한 데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어 특단의 대책을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분당=필패’라는 등식을 서로가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데 서둘러 불화를 가중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온건ㆍ중도파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신 주류 측은 6월 첫째 주에 국회의원 당무위원 합동총회를 열어 신당문제를 논의하고 4일과 6일께 두 차례 당무회의를 더 연 뒤 신당추진위 구성안 처리를 매듭짓겠다는 방침이다. 신 주류 강경파인 신기남 의원은 “수적으로나 명분으로나 신당은 대세를 형성했다”며 “인적 청산을 하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다 포용키로 한 만큼 이제 더 내놓을 카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구 주류 측은 “지난번 당무회의에서 신 주류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중도파 의원들도 참여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소모적인 신당 논의를 중단하고 민주당 중심의 대통령 국정 수행을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 주류의 핵심 격인 박상천 정통모임 대표는 “향후 개최될 당무회의에서 추진위 안의 강행처리를 시도하지는 못할 것이며 강행하면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무효화시킬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 같은 입장표명만 놓고 보면 물과 기름의 만남이고 견원지간의 대화 수준이다. 현재로서는 분당을 위한 양측의 명분쌓기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막가파식의 고성이 난무한 당내 격돌

장외로만 맴돌던 민주당 신ㆍ구 주류의 설전은 5월30일 당무회의 때부터 장내에서 본격 점화됐다. 장내 대결 제1라운드에서는 선혈만 낭자한 혈전을 벌인 채 양측 모두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현격한 입장 차를 만천하에 공개한 게 유일한 소득이랄까.

이 과정에서 시정잡배식 막말이 오가는 모습만 TV 등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제살 물어뜯기식 신당 논의였다는 반응만 나왔다. 아마 한나라당 의원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난상토론을 넘어선 막말 교환은 회의 시작 단계서부터 예고됐다. 신 주류 측 이해찬 의원이 “신당 추진위 구성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겠다”고 신당추진위 구성 건의 상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구 주류 측 정균환 총무와 이윤수 의원은 “내주 당무위원ㆍ의원 연석회의에서 논의하자”고 제지했고, 정대철 대표와 이상수 총장이 이에 응하며 첫 고비는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구 주류 측 박상천 의원의 신당 반대 발언이 30분 넘게 계속되자 신 주류 측 천용택 의원이 “강의를 하는 것이냐”며 태클을 걸면서 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윤수 의원이 “천용택이 조심해”라고 고성을 지르자 천 의원은 “너부터 조심해 임마”라고 막말로 응수했다. 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 의원이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싸가지 없게 까불어”라며 더욱 험하게 나오면서 두 사람간에는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그 다음 상황은 불을 보듯 훤했다. 신 주류 측 이해찬 이상수 의원은 “이런 분이 최고위원으로… 실망스럽다” “박 의원의 발언은 자의적 색깔론”등으로 공격했고, 구 주류 측에서는 “신당을 하려면 총장을 내놓고 하라”는 반격이 이어졌다.

1라운드를 끝내며 더욱 ‘원수지간’이 된 양 세력이 신당 문제외의 일반적인 당무에서도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이강철 대구시지부장 직무대행의 지부장 임명 건을 이윤수 의원이 공개 반대하고 나서자 이번에는 신 주류 측이 이윤수 의원의 국회 예결위원장 내정과 예결위 구성을 놓고 ‘구 주류 편중’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

이강철 내정자의 임명이 유보되자 신 주류 의원들은 당무회의가 끝난 뒤 정대철 대표에게 불만을 터뜨리며 이 의원의 예결위원장 선정을 비롯한 예결위원 인선내용에 이의를 제기, 이 문제는 다음 최고위원회의로 넘어갔다.

또 서영교 여성국 부국장이 부대변인으로 추가 임명된 데 대해 사무처 당직자들의 노동조합격인 당직자협의회가 6월1일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서 부대변인이 사실상 신 주류 측 인사라는 점이 갈등의 요인이란 분석도 있다.

그동안 신당 창당에 반대의 뜻을 피력해 온 추미애 의원의 발언도 양측을 자극했다. 추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를 부정했던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자 민주당을 사수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며 분열과 패배주의로 혼란을 야기했던 책임을 회피하려는 술책”이라며 박상천 정균환 의원의 2선 후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신 주류측 신기남 의원은 “각자 마음속에 담고 있었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자제해온 것을 추 의원이 용감하고 과감하게 이야기했다”며 “추 의원은 정치개혁 과제를 함께 다룬 분으로 신당에 참여할 것”이라고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당사자인 박상천 정균환 의원은 “최근 추 의원이 신당파에 포섭된 것으로 아는데 신당쪽으로 가려는 준비단계”라며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는 정치인에 대해 자기 잣대로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고 발끈했다.


신당 대세론에 맞서 결사항전 태세

신 주류 측은 신당에 대한 대세가 형성된 만큼 이제는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태세다. 이재정 의원은 “신당 추진기구를 이끌어갈 운영위의 구성 비율 문제만 합의하면 될 것”이라며 “6월 첫째 주에 신당 논의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상수 사무총장도 “6월2일 연석회의에 이어 격일로 당무회의를 열어 논의를 끝내겠다”고 천명했다. 신당 추진세력들은 당무회의에서 신당추진기구 구성안을 상정한 뒤 구 주류가 반대할 경우 표결을 통해서라도 마무리하겠다는 태세다. 신당논의에 착수한 지난번 당무회의가 욕설로 얼룩진 데 대해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구 주류는 온몸을 다해 (신당 추진을) 막겠다는 기존의 태도에 변함이 없다. 구 주류 측은 신 주류가 신당추진위 구성안을 기습 처리할 경우 육탄 저지조까지 구성해 놓고 최후까지 당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하겠다는 자세다.

여기에는 호남 민심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광에도 은근히 기대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정균환 의원의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은 특검이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구속하자 “특검의 구속처리는 남북화해와 통일의 민족적 비전에 대한 사법적 테러”라고 비난했다.

그는 “사법테러의 주모자는 특검을 날치기 입법한 한나라당과 이 법을 수용한 현 정부 및 소 영웅심에서 직권을 남용해 과잉수사를 하고 있는 송두환 특검”이라고 규정했다. 차제에 노 대통령을 ‘반 DJ’의 선봉에 올려 놓고 지역 민심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는 계산법도 들어있는 것 같다.

신당 창당을 둘러싼 민주당 신ㆍ구 주류의 힘겨루기는 날이 갈수록 당사자들에겐 치열하게, 보는 이들에겐 지루하게 전개되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6/03 15:32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