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하나은행의 편리한 논리

SK글로벌 주채권은행이 되고 보니 하나은행은 요즘 죽을 맛이다. ‘청산형 법정관리’라는 초강수를 던져 SK㈜의 출자전환액을 8,500억원으로 겨우 끌어 올려놓았지만 앞 길은 여전히 첩첩 산중이다.

SK㈜의 소액 주주들과 노조, 그리고 대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은 저마다 법적 대응을 외치며 ‘3각 공세’를 펴고 있다. 국내외 채권단 일각에서도 SK㈜ 출자전환 규모, 비협약 금융기관 현금매입 비율 등에 반대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

이쯤 되니 하나은행 내부에서는 이런 푸념이 나온다. “누군 이러고 싶답니까. 조금씩 양보해서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 아닙니까.”

급기야 김승유 행장도 나섰다. 김 행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소버린이 선량한 투자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페큐레이터(투기적 투자자)에 불과하다. 하나은행은 소버린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혹시 하나은행측은 2년 전을 기억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공룡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 위기에 처했던 그 때, 외환은행이나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에게는 하나은행이 ‘눈엣 가시’였다.

‘현대건설에 대한 모든 채권은 만기 연장한다’는 채권단 합의를 깨고 특정금전신탁에 포함돼 있던 300억원 어치의 기업어음(CP)을 돌렸고, 현대석유화학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하고도 유독 하나은행만 약속한 119억원 지원에 미적거렸다.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 지원에 불참한 채 가장 먼저 나서서 채권단으로부터 현금을 받고 손을 뺐다. “은행의 이익만 내세워 번번이 기업구조조정 행보에 딴지를 건다”는 비난에 그 때 하나은행은 이렇게 대꾸했다.

“은행 수익성을 저해하는 행위 자체가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다”라고. 그 때도 김 행장이 거들었다. 그는 현대건설 지원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하나은행 대주주인 알리안츠와 국제금융공사(IFC)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이 주채권은행이면 은행 수익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내가 주채권은행이면 모두가 조금씩 희생해야 한다니. 또 남의 대주주는 투기적 자본이니까 무시해도 좋고, 내 대주주는 존중해야 한다니. 하나은행식 편리한 논리인가 보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6/10 15:10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