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미인이 복숭아를 좋아하는 까닭

휴일 아침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차 한 잔 하면서 토스트에 발라먹는 복숭아 잼의 맛은 일품이다. 복숭아는 도자(桃子)라고도 하는데, 맛은 달고 시며 따뜻한 성질이 있다. 과육이 흰 백도와 노란 황도로 나뉘고, 먹는 방법도 다양해서 날로 먹거나 통조림, 병조림, 주스, 잼 등을 만들어서 먹기도 한다. 생과일로는 수분이 많고 부드러운 백도를 쓰고, 통조림 등 가공용으로는 단단한 황도를 쓴다.

복숭아는 우리 몸에 필요한 수분을 생기게 하고 적취(積聚)를 제거하고 변비를 없애며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많이 먹으면 속에서 열이 생겨 부스럼이 생기거나 설사를 하게 된다. 또 장어와 같이 먹으면 설사를 하고, 자라와 먹으면 가슴통증을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방에서는 복숭아씨를 도인(桃仁)이라 하여 약에 쓰는데 주로 어혈을 제거하는 약으로 많이 쓰이며, 장을 윤활하게 하여 변비를 치료한다. 여성의 어혈로 인해 나타나는 월경이상이나 복통을 치료하고,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되지 않아서 피부가 건조하거나 저릴 때, 타박상이 있을 때 효과가 있다.

복숭아는 부인병에 아주 좋은 과일로서 꽃, 잎, 열매, 껍질, 뿌리가 모두 약이 된다. 대소변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복숭아 껍질이나 잎을 삶아 하루에 세 번 보리차 마시듯 마신다. 복숭아 생즙을 내어서 속이 답답할 때 먹으면 좋다. 다랑어를 먹고 중독 되었을 때는 싱싱한 복숭아를 껍질 째 먹으면 중독 증세가 없어진다고 한다.

복숭아는 폐가 약한 환자에게 좋은데 포도당이나 유기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식욕을 돋구어 주고 피로회복제, 수면제로도 쓰이며 재채기가 나고 코가 근질근질한 감기 초기 증상이 있을 때, 헛기침이 자주 나올 때 좋다.

타박상으로 몸이 부었을 때는 복숭아씨를 찧어 참기름에 개어 환부에 고약처럼 두껍게 바르고, 손발 튼 데도 아주 좋다. 일본의 게이샤들이 전통적으로 피부를 관리하는데 복숭아를 사케에 띄워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주근깨나 여드름에도 복숭아 잎 또는 과육을 달여서 그 물로 씻으면 효과가 있다.

복숭아는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과일이라고 여겨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았다. 이른 봄 복숭아꽃이 만발한 것이 봄철의 따뜻한 양기가 올라오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복숭아가 음기를 좋아하는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부적에 찍는 도장을 복숭아나무로 한다거나, 무당이 굿을 할 때 복숭아 가지를 이용한 것, 귀신이 씌었다고 복숭아 가지로 때려 귀신을 쫓으려 한 것이나, 돌날 복숭아 모양을 새긴 돌반지를 아기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무병장수를 바랬던 것들이 모두 잡귀를 물리치는 도구의 의미로 복숭아를 쓴 것이다.

다른 과일도 그렇지만 복숭아가 우리 생활에 주는 효용이 적지 않은 듯하다. 만물은 모두 본연의 성품이 있는데, 사람 뿐 아니라 동물, 식물도 그렇다. 복숭아도 하늘과 땅의 뜻을 이어받아 자신의 기(氣)를 세상에 펼치고 있는 것인데, 우리 인간이 그 기운을 빌려서 먹기도 하고, 귀신을 쫓는 데 쓰기도 하는 것이다.

빌려쓰는 것에 대해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있는데, 그 첫째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고, 둘째가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 잘 지켜진다면, 우리 사회의 음식 법도는 저절로 바로잡아 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좋은 먹거리들이 늘어나게 되고,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우리 지구도 건강해질 것이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

입력시간 2003/06/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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