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되돌리기] 기막힌 사내들

박복한 네 남자의 재기발랄 랩소디

권력은 기적을 낳는다. 특히 부패한 권력일수록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기이한 일들을 만들어 낸다. 체육관에서 대통령 선거를 한 기막힌 80년, 99.99%라는 기적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전두환씨가 있었고, 그로부터 7년 후에는 한 심약한 대학생이 책상을 ‘탁’치자 ‘악’하고 죽었다는, 과학적으로 X-File에 붙일만한 기막힌 사건도 있었다.

영화 ‘기막힌 사내들’ 역시 기적 같은 일의 연속이다. 연쇄살인으로 떠들썩한 90년대 서울 한복판. 형사들은 피해자의 신분에서 공통점을 추리해 국회의원 연쇄살인사건으로 수사의 초점을 맞춰나간다.

하지만 희대의 살인극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사건의 진실은 이러하다. 어수룩한 두 도둑이 사람을 여럿 죽였는데 ‘기적적으로’ 그들이 모두 국회의원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코미디 같은 사건의 최대 희생자는 왠지 어설프게 세상을 살다가 제대로 건진 것 하나 없는 보잘것없는 사내들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매번 우연히 지나가다가 용의자로 지목되는 서팔호(손현주 분), 항상 부지런히 자살을 시도하지만 용의주도하지 못해 실패하고 마는 추락(신하균 분), 콩밥은 자주 먹지만 알고 보면 별 볼일 없는 덕배(최종원 분)와 달수(양택조 분), 이 기막히게 재수없는 네 명이 연쇄살인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우리네 삶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한 때는 한 도시의 주민들 모두가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로 매도되던 기막힌 일이 있었고, 또 한 때는 집 나간 아들이 익사체로 발견돼도 제대로 수사한번 해보지 못하는 답답한 시절도 있었다. 무서운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는다. 무서운 권력이란 원래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98년 서울. 이제 더 이상 가시적 폭력을 행사하는 ‘무서운 권력’은 없는 듯하다. 그래도 우리를 옥죄어 오는 무언가가 있다. 부자들만 골라 죽였는데 알고보니 모두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허탈감, 갈피를 못 잡고 선량한 시민들만 족치는 수사관들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언론을 보면서 느껴지는 씁쓸함.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기막힌 시대인 모양이다.

주제야 어찌됐건 사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런 무거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특유의 신파조로 남파 공작원 운운하며 사건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는 임원희의 오버연기나 항상 어수룩하다가 중요한 순간 ‘진실이 상실된 시대’를 외치는 신하균의 부적절한 타이밍에서 오는 코믹연기, 도둑들이 전화 상에서 주고받는 사투리가 극도로 과장된 표준어로 자막처리 되는 장난스러운 설정과 영화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드는 감독 특유의 재기발랄함까지 그야말로 신선함이 팔딱팔딱 뛴다.

98년 개봉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좋았다 하니 연극계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장진감독으로서는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참고로 이 영화는 감독과 배우에 대해 깊은 연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흙 속의 진주요, 누군가가 재밌다고 해 덩달아 본 사람들에게는 떨떠름한 땡감 같을 수도 있다. 어색한 장면전환과 익숙하지 않은 농담에 첫 맛이 좀 떫겠지만 그래도 오래 곱씹어 보면 뭐든 단맛이 나기 마련 아닌가.

입력시간 2003/06/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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