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프레소] 피아니스트 정원영

'자유'로 해석한 서정성과 감성

“다른 악기는 일부러 안 썼어요.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데는 최소한의 악기만으로 가능하다고 믿었으니까요.” 피아니스트 정원영(43)이 5년의 침묵을 깨고, 4집 ‘Are You Happy?’(EMI)를 발표했다.

‘당신은 행복한 지’를 묻는 질문을 그는 12 작품의 음악으로 바꿔 묻고 있다. 쿨과 펑키를 넘나 들던 그의 자유로운 재즈 어법은 이 앨범을 만나 서정 일변도로 바뀌었다.

그의 서정은 예컨대 ‘어두워 지기 전에/아무도 잡을 수 없는 그런 꿈이 있는 걸/아픈 가슴으로 맞는 아침’(‘행복’)이었다가, ‘지구를 떠나기 전까지는 당신 여자’임을 나지막이 고백하는 어떤 여인의 마음(‘The Girl From Mars’)도 된다.

‘동백꽃 순정’이란 타이틀도 눈에 띈다. 얼른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뽕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복고적이고 한국적 취향이 물씬 풍겨난다. 그것은 정원영의 서정적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는 아코디언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이 노래는 결국 짝사랑이라는 우리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사랑의 본질에 육박하는 어떤 소중한 감정을 일깨워 준다. 요컨대 정원영은 점점 사그러드는 한국적 감성을 신선한 음악 어법으로 불러낸 것이다.

“밴드 활동 위주로만 하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본령을 보이자는 의도였죠.” Gigs와 정원영-한상원 밴드 등 퓨전이나 펑키 밴드 리더로서의 모습을 일신해 보자는 것. “그 동안 음악 생활에 쫓겨 미처 짚고 넘어 가지 못 했던 내면의 문제들이 1년 전부터 떠올라 그때그때 써 둔 것”이라고 정원영은 말했다.

결론은 강력한 서정성이었다. 쿨 재즈, 클래식, 포크적인 요소를 다 합쳐 만든 이번 앨범이 그 답이다. 여행 다닐 때마다 짐 속에 넣고 다니던 고은, 곽재구 등의 시어들도 큰 힘이 됐다. 그것들이 한데 모여 21세기 한국인의 마음속에 파고 든다. 이 앨범은 보스톤의 버클리(Berklee) 음대에서 7년 동안 프로페셔널 뮤직과에서 수학하고 돌아 와 정신 없이 음악만 했던 자신의 삶에 찍는 하나의 쉼표다.

제임스 브라운의 펑크에 심취해 그것을 배우러 미국에 갔으나 막상 가 보니 재즈에 매료돼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듯 그는 음악적으로 오직 이것뿐이라는 식의 목표는 없다. 거기서 생기는 여유나 공간감을 즐기는 편이다. 요즘은 화려한 기교보다, 하나의 소리를 길게 늘여 거기에 집중하는 앰비언트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그는 서울예전 겸임 교수, 동덕여대와 서울공연예술학교의 강사 등 세 직함으로 불린다. 정원영은 학생들에게 재즈를 가르칠 때 참으로 행복하고 신 난다고 한다. “계속 아이들 만나 피아노 치고 가르치는 것”으로 자신의 현재를 요약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 그는 “나의 음악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두 가지로 읽힌다. 먼저, 미국서 재즈를 공부하고 온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재즈 뮤지션이라고만 여기는 고정 관념에 대한 일종의 반발감이다. 둘째, 나이 50전까지는 수시로 뉴욕 등지에 가서 최신 음악 풍조를 확인하는 등 인접 장르에 대한 탐색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바로 그가 추구하는 ‘정원영표’음악이다.

그러나 그는 재즈에 대해 변함 없는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다. “허비 행콕은 굉장히 어려운 가운데 따스함이 있어서, 키스 자렛은 불치병(근무력증)과 싸우면서도 음악적으로 인간미를 잃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이에요.” 그가 좋아 하는 재즈 피아니스트들이다. 특히 자렛이 솔로 피아노로 발표한 근작 ‘I Love You Porgy’는 그의 표현을 빌면 “너무 착해서 놀란” 작품이다.

당신은 행복한가, 정녕? 여기까지 많은 것들을 떨궈 버리지나 않았는지?

정원영의 새 앨범은 그 해답을 도출해 내는 데 큰 조력자가 될 지도 모른다. 그는 말했다. “여러 음반을 발표해 봤지만, 딴 앨범들보다 제 기분이 좋아요.”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3/06/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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