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문신의 문화적 의미

Q : 닭 피로 문신을 하면 평상시에는 안 보이다 술을 마시면 보인다는데…

A : 정말 무서운 질문입니다. 동물의 피에는 여러 가지 병균이 들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닭이 에이즈에 걸려 있다면 닭의 피가 몸에 닿는 순간 당신은 에이즈에 감염되겠지요.

어느 문신(文身) 사이트에서 발견한 질문과 대답이다. 그밖에도 문신 비용과 디자인, 시술 과정의 고통과 안전성, 문신 관리수칙 등과 관련된 이야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문신에 대한 문화적 자존심이라고 할까.

상업적인 홍보가 목적인 사이트이기는 하지만, 문신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무지로부터 문신의 문화적 의미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문신을 하나의 문화로 진지하게 대하고자 하는 태도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만약 문신을 연구하는 후대의 문화사가가 있다면, 2003년 5월 31일의 한ㆍ일 축구전을 두고 한국의 문신 문화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기술하게 될 것 같다. 결승골을 넣고 응원단에게 문신을 보여준 안정환 선수의 골 세리머니 때문이다. 물론 문신의 대중화가 안 선수로부터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문신이 문화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한ㆍ일전의 골 세리머니가 엄청난 역할을 한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문신이 사회적 금기를 비켜나면서 문화적 승인을 향해 문턱을 살짝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문신은 그 역사적 기원을 따지는 일이 무의미할 정도로 오래된 문화이다. 사전에 의하면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5,000년 전의 시신과 4,000년 전의 이집트 미이라에서도 문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읽었던 고고학 탐정에서는 1995년 중국 우코크의 냉동무덤에서 발견된 시신들에게 신화적 동물의 문신이 남아 있다는 기록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주나라의 형서 여형(呂刑)에서는 관가의 재물을 훔친 죄인에게 절도라는 글자를 몸이나 얼굴에 새기는 묵형(墨刑)을 찾아볼 수 있으며, 최인호의 장편소설 해신에는 장보고가 노예무역상 염장에게 얼굴에 도적이라는 글자를 새기는 자자형(刺字刑)을 내리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수호지에 등장하는 노지심은 대머리가 대표적인 신체적 특징인데, 그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는 등판을 뒤덮고 있는 꽃 문신이기도 하다.

문신의 의미를 따지는 일은 사실상 문화인류학적인 과제이다. 수박 겉 핥기가 되겠지만 4가지 정도로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식별 또는 구분의 표시로서의 문신이다. 문신은 같은 종족을 표시하는 기호이기도 하고, 종족 내부의 서열과 신분을 표시하는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영웅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신성한 표식이기도 하고, 범죄자를 처벌하고 배타적으로 구분하는 낙인(烙印)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주술적·마술적인 상징으로서의 문신이다. 문신을 하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지며, 흑마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 것이다. 몸에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부적을 만드는 제의적인 행위인 셈이다.

세 번째는 미용과 치료를 위한 문신이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눈썹 문신처럼 문신은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장식하고자 하는 인간적 욕구를 대변한다. 동시에 피부병과 같은 상처를 가리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다. 멜라닌 색소 부족이 원인인 백반증에 문신이 사용되었던 것이 그 예이다.

네 번째는 통과 의례로서의 문신이다. 문신을 그려 넣어 전사로 인정 받는 뉴질랜드 마오리 족의 성인식처럼, 문신은 준거집단의 사회적 승인을 대변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에 유행하는 헤나(henna)와 플라노 아트(Flano Art)와 같은 패션 문신은 스타일(style)로서의 문신이라고 볼 수 있다. 스타일은 자신의 모든 문화적 기원과 관련되는 동시에 특정한 기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딕 헵디지(Dick Hebdige)의 지적처럼 스타일은 문화적 의미의 기원들을 표층적인 차원에서 환기시킬 뿐이지 결코 기원이나 목적의 진정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왜 문신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스타일로서의 문신은 구별, 주술, 미용, 통과 의례 등의 의미를 중층적으로 환기시키면서 ‘그냥’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스타일로서의 문신, 그 배후에 놓인 심리적 기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몸에 대한 욕망, 달리 말하면 몸을 둘러싼 나르시시즘의 발현이 아닐까 한다. 문신과 스타일, 그리고 나르시시즘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에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6/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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