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그후 1년] “컨테이너가 관이 되지 않겠소”

장현동 노인회관 옆. 수해 이주민들의 임시 거처인 컨테이너가 가로 세로로 줄 지어져 20동이 자리잡고 있다. ‘장현동 95번지 황**’ ‘11동 99번지 정**’ …. 컨테이너 앞에 굵게 쓰여진 번지수는 아직껏 주민들이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20동 중 9동이 아직 살 집을 찾지 못한 이들의 보금자리다.

비닐 문 사이로 온갖 집기가 널려 있는 정모씨 집(컨테이너). 삽이나, 고무장갑 등 지난해 여름에 썼을 것 같은 도구들이 뒤엉켜 있다. 인기척을 내자 오십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이곳 생활이 벌써 10개월 째란다.

“장현 저수지 밑에서 아저씨(남편)는 농사를 짓고, 저는 구멍가게를 하면서 살았어요. 저수지가 터지면서 집이고 가게고 모두 떠내려 갔죠.” 발 디딜 틈 조차 없어 보이는 5평 남짓한 컨테이너 내부는 열기가 후끈하다. 요즘 몸이 아파 농사일을 하기도 힘들다는 아저씨는 가재 도구들이 널려 있는 방 안에 모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다.

“바깥 온도가 28도만 되면 안에 있을 수가 없어요. 무조건 그늘 있는 곳을 찾아 나가는 거죠. 선풍기도 살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컨테이너 거주자 중에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가까스로 집을 짓기 시작해 2~3개월 후면 이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숨에 땅이 꺼진다. “수해 나기 1년 전에 2,000만원을 융자받아 막 지은 집이 수해로 떠내려 간 거예요. 이번 집 짓는데도 4,000만원 정도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도대체 감당할 수 있을 지 막막하네요.”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옆 컨테이너의 최옥규(70) 할머니는 컨테이너 생활을 언제 접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땅도 없고 돈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조그만 집 한 채 뿐이었는데 지난해 비에 떠내려 갔다”고 했다. 요즘은 시의 독촉에 바짝바짝 목이 타 들어 갈 지경이다.

“자꾸 나가라고 하잖소. 게다가 내달부터는 그간 공짜로 이용했던 전기세도 내야 한다고 하고.” 언제 왔는지 앞 동에 사는 박선자(81) 할머니가 옆에서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입을 연다. “어제도 시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어.” 박 할머니는 위로금으로 받은 돈 중 110만원을 주고 컨테이너를 아예 구입했다.

“집을 짓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니 어디 땅이라도 생기면 컨테이너를 옮겨 두고 살 작정”이라고 했다. 손녀 딸을 등에 업고 먼 산을 바라보던 최 할머니가 한 마디 거든다. “저 양반은 컨테이너랑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거지. 장애인 아들이 거둘 것도 아니고. 죽으면 컨테이너가 관이 되지 않겠소.”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2003/06/18 15:22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