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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세일즈맨?

변호사는 세일즈맨?

변호사 1만명시댜 앞둔 법조타운, 서바이벌 마케팅 전쟁

“입에 풀 칠하기도 어렵다.” 서울 서초동 변호사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물론 과장된 엄살이다. 변호사 5,000명 시대를 넘어 1만명 시대도 멀지 않았다지만, 여전히 변호사는 고소득 전문직 중 하나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지금도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많은 수입을 올리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예전 같지 않다”는 솔직한 실토에까지 눈을 흘길 필요는 없다. 전관예우의 유효 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한 변호사는 요즘은 짧게는 3개월,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자진 폐업한 뒤 고용 변호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업계 경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어지간한 명성을 갖춘 변호사가 아니라면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상을 떨며 직접 찾아오는 고객만 상대하는 영업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때론 법무사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고, 때론 고객들의 집을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이른바 ‘변호사 서바이벌 마케팅’ 시대다.


‘나홀로 소송’ 도우미 자처한 변호사들

서초동 법원 청사 동문 앞 법조 타운. ‘*** 변호사’ ‘** 법무법인’ ‘***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사무실 간판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몇몇 변호사 사무실에 걸려 있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나 홀로 소송 도우미’. 변호사들이 변호사의 도움 없이 의뢰인 혼자 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도와주는 영업을 한다는 것일 테다. 변호사 스스로 권위를 내던져 버린 것이다.

도우미 서비스의 원조를 자처하는 새서울합동법률사무소 조영환 변호사는 “업계가 포화 상태에 다다르면서 문턱을 낮춰 새로운 업무 영역을 확보해 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조 변호사가 도우미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벌써 4년여 전.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동료 변호사 5명과 함께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변호사 도우미 본부’를 설립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법정에 변호사가 아닌 의뢰인이 직접 나가는 대신 변호사들이 소장 등 각종 준비 서면을 작성해 주고 법정에서 대응 방향 등을 상세히 일러준다.

“변호사를 선임할 만한 돈이 없어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거나, 혹은 소송을 당해도 허둥대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디다. 그런 서민층 고객들을 타깃으로 삼은 겁니다.” 소송 가액이 5,000만원인 손해 배상 등 민사 소송을 예로 들어 보자.

서울이냐 지방이냐 혹은, 사건이 복잡하냐 간단하냐 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하려면 족히 1,000만원 가량의 비용은 감수해야 한다. 변호사 보수 400만~500만원, 인지대와 송달료 30만원, 부가세 40만~50만원, 여기에 성공 보수금 250만~500만원까지. 하지만 조금의 고생을 자처해서 ‘나홀로 소송’의 길을 택하면 비용이 5분의 1, 많게는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들의 ‘성공’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도우미’를 자처하는 변호사들이 최근에는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변호사들이 영역을 침범한다”고 아우성치던 법무사들이 도우미 서비스에 나선 뒤 규모를 키워 거꾸로 변호사를 영입하고 나선 사례까지 등장했다.

법무사 3명이 나홀로 소송 서비스를 진행해 온 세동합동법률사무소는 최근 변호사 2명의 영입을 마치고 7월 세동합동법률사무소로의 ‘승격’을 앞두고 있다. 월 50명이 넘는 고객이 몰리는 등 호황을 누리자 사업 규모를 좀 더 확대해보자는 취지다.

임완택 소장은 “나홀로 소송 서비스를 하다 보면 일부는 사건이 복잡하거나 의뢰인이 직접 소송을 진행할 만한 능력이 안돼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사건까지 모두 직접 소화해내기 위해 변호사를 영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발로 뛰는 변호사

‘고객께선 여유를 가지셔도 됩니다. 이제는 저희가 달려가겠습니다.’ 변호사 7명이 포진한 법무법인 한라가 최근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표현 그대로 의뢰인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건 변호사들이 직접 찾아가 상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보험회사나 화장품회사 등은 오라는 데가 없어도 직접 방문해 장사를 하는 데 변호사 사무실은 그간 문턱만 높여 놓은 채 직접 찾아오는 고객을 기다리고만 있었잖아요. 결국 변호사 업계에 보험 설계사의 영업 마인드를 도입한 셈입니다.” 김흥수 사무장은 서비스 도입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생각보다 변호사가 직접 찾아 와주길 바라는 이들은 많다. 현장에서 사업 계약서를 체결하는 사람, 합의를 봐야 하는데 혼자서는 두려운 사람, 남편에게 매를 맞고 집 밖으로 나오기가 어려운 아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 방문 비용이 10만원으로 결코 적지 않지만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법무법인 한라측은 서비스 차원에서 장애인이나 교통 환자, 매 맞는 여성 등에 대해서는 무료로 방문을 해주고 있다.

다른 업계에서는 이미 보편화한 마케팅 수단인 회원제 서비스도 변호사 업계에 침투했다. 김진희 법률사무소는 하루 100원 꼴인 3만6,500원의 연회비를 내면 언제라도 변호사와 각종 법률 문제를 직접 상담할 수 있는 ‘회원제 법률 자문 서비스’를 도입했다. 전화나 인터넷은 물론 대면 상담도 가능하다.

상담 기록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에 사실상 의뢰인 입장에서는 개인 고문 변호사를 둔 것과 다름 없는 셈이다. 회원이 소송을 의뢰할 경우 대한변호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보수기준규칙보다 훨씬 저렴하게 사건을 의뢰할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밋밋한 간판은 싫다

이름 석자 달랑 적어놓는 게 고작이었던 콧대 높은 변호사 사무실 간판도 최근 몰라 보게 달라졌다. 서초동 법조 타운에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이지만 ‘e-편한 소송’ ‘법대로 닷컴’ 등 이전엔 볼 수 없었던 톡톡 튀는 이름의 간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여성 변호사라는 것이, 혹은 판ㆍ검사 출신이라는 것도 주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간판에 ‘여성 변호사’임을 유난히 도드라지게 강조하고 있는 고순례 변호사 사무실. 한 직원은 “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서 이혼을 원하는 여성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자 변호사들에게 수치심을 느낀다든지 혹은 남성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병옥 변호사 사무실은 ‘판사 역임’이라는 문구를 통해 전관예우의 간접 효과를 노리고 있다. 사무실 직원은 “연수원 출신 변호사 보다는 판사 경력의 변호사들이 승소율이 높다는 인식 때문에 의뢰인들이 믿음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했다. 현재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 사무실만 1,000여곳.

무료 법률 상담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소송 전문 오피스 솔루션을 유료로 제공하는 등 아예 인터넷을 주요 사업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소장 변호사는 “중견 변호사들은 최근의 변화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3/06/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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