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장화, 홍련

여성의 육체에 담긴 공포 극대화

한국영화사에서 공포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적다. 제작되는 영화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도 많지 않다. 기록상으로 가장 많은 공포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973년의 9편인데 그 해에 제작된 영화는 125편이었던 걸 보면 아주 적은 비율이다.

그 9편의 영화 중에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고 회자되는 작품은 거의 없다. 오히려 70년대 이전, 즉 대중문화에서 영화의 힘이 지배적이었던 1960년대에 만들어진 <목없는 미녀>(1966ㆍ이용민), <월하의 공동묘지>(1967ㆍ권철휘), <천년호>(1969ㆍ신상옥) 등은 아직까지도 기억되는 작품들이다.

영화제 혹은 텔레비전에서 상영되기도 하고, 그 중 가장 화려한 캐스팅과 더불어 한국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월하의 공동묘지>는 작년에 DVD로도 출시되었다.

1980년대에는 60년대 작품들과 유사한 영화들이 제작된다. 제목도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을 상기시키는 <월하의 한>(1980ㆍ김인수), <망령의 웨딩드레스>(1981ㆍ박윤교), <목없는 여살인마>(1985ㆍ 김영환) 등이 개봉되었지만 관객동원 수는 10년 이상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60년대의 괴기영화의 성적에도 미치지 못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60년대의 ‘괴기영화’(당시는 공포보다 이 용어가 더 자주 쓰였다)는 그 이후와 비교해 볼 때 당대의 유명한 감독과 인기 배우들이 합작한 좀 더 주류에 속한 장르였다.

하지만 점점 괴기영화는 삼류 혹은 비주류로 전락했고 창조력을 시험한다거나 어떤 전복적 전략은 찾을 수 없었던, 단지 여름에 팔리는 ‘싸구려 상품’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구식 혹은 일본식 공포 영화들이 등장하면서 공포영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지만 정작 잘 만들어진 한국식 귀신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고괴담>이 그나마 토종 귀신과 가장 흡사했고,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식스 센스>에서 동양적 혼령이 등장했던 점이다.


장화홍련의 현대적 재해석

<장화, 홍련>은 여러 가지 면에서 눈 여겨 볼 만한 공포 영화다. 고전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앞서 집약 설명한 한국의 공포 영화의 역사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장화, 홍련>은 ‘장화홍련전’의 ‘원혼’ 혹은 ‘원귀’와는 분명한 차이를 두고있다. 달리 말하면 원작을 어떻게 현대적 맥락에서 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미(장화)와 수연(홍련)은 장화와 홍련처럼 유년기에 엄마를 잃은 것도 아니고 아빠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것도 아니다. 아빠는 장화 홍련의 아버지처럼 딸들의 슬픈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계모의 말을 주의깊게 듣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고전소설과 다른 점은 허씨 부인처럼 못생기지도 않았고, 결혼해서 아들 셋을 낳지도 않았으며, 흉계를 꾸며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편안하게 지내는 것도 아닌 새로운 ‘새엄마’다. 새엄마는 젊고, 아름다우며, 병적일 만큼 깔끔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티를 마시며 책을 읽는 세련된 사람이다.

하지만 새엄마는 지나치게 수다스러울 때가 있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신경 쇠약 증세가 있는데 자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많다. 새엄마가 수미에게 “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라고 물으며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공포의 근원에 대한 적절한 답안처럼 다가온다.

과거 한국의 공포ㆍ괴기물들이 하나 같이 권선징악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야기 구조 내에 특히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선악을 구분해온 것과 달리 <장화, 홍련>에서는 좀더 현대적 시선에서 여성 인물들, 그리고 남성(아빠)까지 모두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로 묘사된다.

수미는 마치 엄마처럼 아빠의 속옷을 챙기고 잠든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동생을 끔찍하게 대한다는 점에서 새엄마와 라이벌 관계를 자처한다.

새엄마는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는 자매들과 냉랭한 남편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 곧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반복하며 잊지 못할 ‘기억’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내용은 새엄마 뿐만 아니라 수미도 죄책감에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피의 분노와 공포

‘장화홍련전’에서 계모가 장화를 죽음으로 몰기 위해 장화가 낙태한 증거로 ‘피묻은 쥐’를 사용했던 것은 <장화, 홍련>에서 새엄마가 ‘유일하게’ 시집오며 가져온 ‘새’와 수연의 첫 생리와 연결된다. 영화 전반부에 무서워하는 수연을 옆에 재우고 잠든 수미는 악몽을 꾼다.

시커먼 소녀 귀신이 자신에게 점점 다가와 아주 가까이 왔을 때 다리 밑으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기겁하다 깨서 옆 자리의 수연을 찾는다. 수연이 생리를 시작한걸 확인하고 안방 화장실로 생리대를 가지러 갔다가 마주친 새엄마는 생리도 자신과 동시에 한다며 묘한 태도를 보인다.

피와 관련된 다른 장면은 새엄마의 자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다다를 때이며 공포가 고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태아로 변한 피묻은 쥐가 곤히 자고 있던 장화의 이불 밑에서 발견된 것처럼 피묻은 새가 곤히 잠들어 있는 수연의 침대 속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장화의 이불에서 발견된 피뭍은 무엇과 상당히 비슷한 장치이다.

수미가 아닌 좀 전에 생리를 시작한 수연의 침대에서 뭔가가 발견됐다는 것은 생리를 하고 임신과 낙태 혹은 유산 등의 사건이 벌어지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공포이다. 말하자면 과거에서부터 귀신이 다 여성이었던 것은 가부장제내에서 희생당한 여성의 한이 담겨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포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은 ‘여성성’ 자체라는 얘기다.

새엄마와 동시에 생리를 하는 수연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밝혀지는 내막을 보면 더욱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장화, 홍련>은 마지막에 영화 내내 관객을 궁금하게 했던 비밀, 새엄마의 가장 무서운 기억을 밝히면서 시작했던 장면으로 다시 돌아오며 일종의 슬픈 안도감을 안겨준다. 경치가 아름다운 시골 한적한 곳, 햇살이 밝게 내리비추는 따뜻한 오후에 호수에 발을 담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 있지만 첫 장면에 있던 행복함은 없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그때 이미 공포가 시작됐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시네마 단신
   


문근영, 광주국제영화제에 성금기탁

<장화, 홍련>에서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언니에게 의지하는 수연을 연기한 문근영이 광주국제영화제에 1,000만원을 기탁해 화제가 되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현재 광주 국제고 1학년에 재학 중인 문근영은 자신의 고향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보탬이 되고자 성금을 냈다고 말했다. 문근영은 KBS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어린 시절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 드라마 <아내>에서 김희애의 딸로도 출연 중이다.


부천국제영화제, 35개국서 190편 출품

제 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대한 첫 발표가 있었다. 7월 10일부터 19일까지 10일 동안 진행될 영화제는 “사랑, 환상, 모험”이라는 주제로 “관객을 생각하는 영화제, 재미있는 영화제, 가까이 있는 영화제”라는 방향성을 갖고 35개국, 190편 내외 (장편 100편 내와, 단편 90편 내외)를 상영한다.

“매혹과 열정의 볼리우드”라는 제목으로 인도의 대중영화를 6편 정도 상영하고, 캐나다 감독 가이 매딘Guy Maddin특별전, “홍콩영화의 전성시대: 쇼브라더스 회고전,” 야쿠자 영화의 대부인 “후카사쿠 긴지 회고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입력시간 2003/06/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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