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특강정치 "맞죠?! 나한테 줄 서세요"

국정운영 철학·개혁 당위성 설파에 주력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강의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에서 식사를 겸한 공무원들과의 회동에서, 순시차 방문한 현장에서, 또는 인터넷을 통한 화상 조회에서 자신의 국정철학과 실천 의지를 밝히는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

4월17일 3급이상 공직자들과의 인터넷 조회를 시작으로 5월에는 차관급 공직자 특강과 전남대 특강, 6월 들어서는 무려 7차례의 특별 강연이 있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이 국정운영 철학을 직접 밝히는 것이 뭐가 어떠냐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 반면 대통령이 실질적인 국정 관리보다 국정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통령이 집권 후 각계 공무원들과의 첫 대면자리에서 국정에 대한 좌표와 비전을 제시하는 일은 관례였다. 횟수가 잦다고는 해도 집권 초기에 각계 집단과의 만남이 집중된 것 뿐이라고 설명하면 그것도 그만이다. 문제는 강연의 성격과 내용에 있다.

노 대통령은 줄곧 개혁 당위성과 개혁주체론을 설파하려고 애썼다. 일반 공무원과 군ㆍ경찰, 세무 관계자들, 국정원 직원을 만난 자리에서 청중은 달랐지만 화제는 거의 동일했다. 노 대통령은 새 정부의 노선에 맞게 각 부처의 기능과 역할을 주문하기 보다는 ‘공무원내 개혁주체세력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개혁의 당위성을 뭉뚱그려 설명하느라 그 선도가 다소 떨어졌고 오히려 공무원에 대한 줄서기ㆍ편가르기 의혹만 낳고 있다. 또 강요식 어법에 주력하다 보니 그간의 비판과 지적사항 등은 아예 무시하거나 악의적 공격으로만 치부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盧 강연의 이론적 근거라는 윤성식 교수 저서는 어떤 책인가?

노 대통령의 특강은 일선에서 국가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들을 직접 접촉해 육성으로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ㆍ이해시킴으로써 이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개혁의 불씨’를 아래서부터 피어 오르게 하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이런 노 대통령의 강연 주제인 ‘국가개조론’의 이론적 근거는 고려대 윤성식 교수의 저서 ‘정부개혁의 비젼과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윤 교수는 대통령 정책자문단과 인수위 정무분과 위원을 거쳐 지금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민간위원을 맡고 있다. 노 대통령은 윤 교수 저서를 “정말 잘 쓴 책”이라고 격려한 뒤 부처 장관들에게도 일독을 권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특강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효율적인 정부’와 ‘정부개혁의 목표는 국가능력의 향상 및 정부 실패의 교정’ 등은 윤 교수의 평소 지론이다. 또 ‘행동 양식을 개혁하는 문화개혁’을 강조한 것도 윤 교수가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관심, 열정 및 개혁 참여 등이 필요하다. 지도자는 변화를 촉진하는 인자(因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과 맥이 닿아 있다.

또 “개혁 책임자가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는 등도 노 대통령 강의내용의 주요 골격으로 활용된다.

노 대통령은 이런 윤 교수 저서내용을 골자로 한 ‘공무원내 개혁주체세력 구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6월11일 3급이상 공무원들과의 인터넷 조회에서 노 대통령은 “개혁과 국민통합은 공직사회가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혁신이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자 마지막”이라고 강조했으며 이틀 후인 13일 국세청 간부들과의 특강에서는 “제가 자진 산발적인 개혁이 아니라 국가를 개조하는 개혁…근본적인 개혁은 행동양식을 개혁하는 것으로 문화의 개혁을 하겠다”고 역설했다.

또 16일 경찰 지휘관을 초청한 자리에서는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열심인 사람이 있으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아서 잘 안되고 있어 정부에서 그런 틀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20일 중앙부터 실ㆍ국장과의 특강에서는 “개혁주체세력에 대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느 사회나 앞서 가는 사람과 발목잡는 사람이 있다”며 “이대로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업그레이드 할 수 없고 동북아 주도세력이 될 수 없으므로 전 국가 모든 영역이 다 바뀌어야 한다”고 국가개조론을 거듭 피력했다.

노 대통령의 특강에는 윤 교수 영역이외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언론이나 야당 지적에 대한 해명 및 반박이다.

6월11일에는 “대통령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떤 경로를 통해 즉시 건의해달라. 돌아서서 뒷소리하는 그런 것 서로 하지 맙시다”고 했으며, 13일에는 “신문보면 열 받칠까봐 요즘은 잘 안 본다. 많은 언론이 비판 비난으로 흔들겠지만 꿋꿋하게 간다”고 언급했다. 또 “여론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고 성공한 대통령은 내가 평가하겠다. 내 스스로 양심과 소신으로 평가하겠다”고 톤을 높이기도 했다.

16일에는 “대한민국이 문화혁명이 가능한 나라냐. 문화혁명ㆍ편가르기라고 하는 것은 말이 좋아 비판이지 딴죽거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대응했으며, 20일에는 “노사관계가 초점이 됐지만 면은 많고, 쓸 것은 없고 그것밖에 더 있나. 누가 뭐라고 쓰든 상관없다. 줄서라고 한 말 때문에 줄이 문제라고 하는데 정말 쓸 게 없나보다. 노무현 빼고 나면…” 등으로 노골적인 `언론비판'을 했다.


“한국판 문화대혁명의 전조?”

이런 노 대통령의 연이은 특강에 대해 야당과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에다 상대 의견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강연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나서서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고 이는 공무원에 대한 협박을 넘어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며 “여론의 지적을 특유의 말장난으로 교묘히 물을 타고 있다”고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 대통령의 특강정치에 대한 지적을 종합하면 이렇다. 먼저 절차상 문제이다. 중간간부급 공무원들을 청와대로 대거 초청하거나 인터넷 조회 등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만나고 설명하다 보니 사이에 있는 총리이하 각 부처 장ㆍ차관 및 자치단체장의 입장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또 1주일이 멀다하고 진행되는 강연은 대통령의 효율적인 국정운영 및 시스템 행정과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내각에 지시하고 내각이 간부급 공무원에게, 또 중간간부급에서 말단 직원까지 순차적으로 지시내용이 하달되는 것이 바로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시스템 행정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내용면에서도 그렇다. 노 대통령은 제도와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 혁신주체들이 앞장서 개혁을 추진토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이의 운영이 자칫 과거 군의 ‘하나회’ ‘알짜회’ 같은 사조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노 대통령은 ‘줄서라’ 발언에 대해 “도박판에서도 남들 다 가는 데 가면 배당이 적다”며 “지금 ‘노무현 안된다’고 할 때 한번 가보라. 배당이 크지 않겠나”고 말하고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지금 줄서야 고물도 커진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밖에 강의 내내 보여지는 특유의 거침없는 어법은 열성적이거나 감성적인 지지자들에게는 큰 박수를 받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에게는 극도의 거부감을 준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일방식 논리 구사가 다른 의견은 모두 흔들거나 공격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어 비판자들은 그런 자세까지 추가로 비판하게 되고, 노 대통령은 또다시 이를 악의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ㆍ반격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특강정치는 ‘공식적 개혁세력’인 각 부처 업무혁신팀을 비롯해, 학습모임, 주니어보드 등의 ‘비공식적 개혁세력’에 대한 공직사회 안팎의 관심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노 대통령이 의도했든 안했든 특강정치 논란이 노 대통령의 정부개혁 메시지를 증폭시킴으로써 공식ㆍ비공식 개혁주체세력의 활동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 효과를 가져온 부분은 있다.

염영남기자

입력시간 2003/06/24 15:56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