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 주고 사면 손해"

불황 속 호황 누리는 저가 브랜드 시장

6월19일 오후 9시 서울 명동의 화장품숍 ‘미샤(MISSHA)’. 평일 오후인데도 10대로 보이는 앳된 얼굴에서부터 30대의 미시 아줌마까지 발라보고 뿌려보는 인파로 가득 차 있다. 표정도 다양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쇼핑객이 있는가 하면 ‘하나를 골라도 제대로 골라야…’라는 얼굴도 보인다.

매니큐어와 클렌징 제품을 구입하러 왔다는 대학생 강선아(19)씨는 “친구가 저렴한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인터넷으로 조회해본 뒤 찾아왔다”며 “이런 제품일수록 제대로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가던 중 눈에 띄어 들렀다는 미시 직장인 이인영(33)씨는 “화장품 가격이 3,300원이라는 문구를 보고 호기심으로 들어왔다”며 “워낙 싸니까 부담 없이 사용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020세대 겨냥한 오프라인 마케팅

알뜰 쇼핑족들로 ‘불황 속 호황’을 누리는 이 가게에는 250여 상품이 모두 3,300원이다. 세안 후 기초 손질을 위한 스킨ㆍ로션ㆍ크림 등 피부타입별 스킨케어 제품에서 메이크업을 위한 립스틱, 마스카라, 파우더와 콤팩트, 목욕용품과 향수까지.

여성은 물론 남성용 화장품도 많다. 가장 싼 것은 단돈 200원에 판매되는 화장용 펜슬깎이, 가장 비싼 것이라야 8,900원 짜리 미샤 프라임의 기능성 화장품이다. 일반 브랜드 가격과 비교하면 3분의1, 어떤 것은 5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 가게는 2000년 1월 온라인 전용 브랜드 ‘미샤’로 탄생한 ㈜에이블 C&C의 오프라인 매장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을 겨냥한 화장품의 ‘합리적인 가격’만들기가 마케팅의 목표다. 그 전략은 불황의 곡선을 타고 성공신화로 이어지면서 신림동과 노량진, 명동에 2~4호점을 낸데 이어 7월 중에는 건대 앞과 종로에 5,6호점을 잇달아 오픈할 예정이다.

이 가게를 찾았던 고객들은 웹 사이트(www.beautynet.co.kr)상에 사용 후기 등을 올리며 제품 정보를 공유하는데, 6월 현재 가입 회원이 110만 명에 달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불황에 따른 재고물량을 털기 위해 대대적인 세일 판매에 들어갔지만, 약삭빠른 소비자들의 알뜰 쇼핑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샤’와 같은 온라인 브랜드의 오프라인화가 대표적이다.

온라인 유통의 장점을 오프라인에서도 그대로 살렸다는 평이다. ‘미샤’의 홍보팀 한판식(32)대리는 “유통 과정과 포장, 광고로 발생하는 가격 거품을 제거해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50% 할인점 등에 젊은이들 몰려

온라인 브랜드의 오프라인화나 저가 전문 고급(?)브랜드 만들기가 알뜰 쇼핑족을 겨냥한 기업측 전략이라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50%족’은 새로운 구매 패턴이다. 50%족은 웬만한 대형 할인점이나 전문점의 할인 %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최소한 반값 이하로 살 수 있는 곳만 찾아 다닌다. 새내기 대학생 박모(19)씨는 인터넷 사이트의 알뜰 쇼핑 동호회에 가입해 가장 싼 곳을 찾아 다니는 50%족이다. 박씨는 “화장품 할인율 체크는 기본이고 의류 구입이나 미용실 등도 싼 곳을 찾아 다닌다”며 “제 값을 다 주고 쇼핑하는 것은 어리석은 구매형태”라고 말했다.

알뜰 쇼핑족을 자처하는 회사원 이창운(30)씨도 마찬가지. “명품은 아니지만, 기능이나 외관상 전혀 문제가 없는 제품을 50% 이상 깎은 가격으로 샀을 때는 얄팍한 주머니를 털었지만 마치 돈을 번듯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역시 젊음의 거리인 이대 앞과 신촌, 명동 등이다. 예외 없이 파격적인 할인 가격을 내세워 고객을 끌어들이기 때문인데, ‘단돈 몇 천원’이나 ‘5년 전 가격’같은 홍보 문구는 이미 일반화됐고 ‘80% 정리세일’ ‘단 하루 깜짝 세일’등 파격적인 광고가 주를 이룬다. 아예 다른 매장과 비교해 비싸면 그만큼 현금으로 환불해 준다는 최저가 전략을 펴는 곳도 있다.

프랑스 수입 액세서리를 주로 취급한다는 이대 앞 액세서리점 NAZCA의 김준호(29) 사장은 “이제는 아무리 비싸게 수입해왔다 해도 비싼 값을 부르면 안 나가니 50~80% 이하의 값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비싸다는 고객이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옷 가게와 미용실, 네일 케어숍, 안경점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 심지어 음식점에도 할인 안내 광고판이 내걸렸다. 비빔밥 전문 체인점인 한스비빔밥 이대점은 골뱅이 비빔밥, 참치(회) 비빔밥 등 대부분의 메뉴를 정상 가격인 5,000원에서 30% 할인된 가격인 3,500원에 판매한다. 이 가게의 한 관계자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보통 수준의 가격 할인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저가 매장 재등장

가격이 시중보다 훨씬 싼 인터넷 쇼핑몰에도 할인판매장이 들어섰다. 특히 과거 IMF시절 동네 어귀에서나 봄직한 저가용품점인 ‘1,000원 숍’이 인터넷으로 무대를 바꿔 재등장해 눈길을 끈다.

포탈사이트 네이트의 인터넷 쇼핑몰 네이트몰(mall.nate.com)은 1,000원짜리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천냥하우스’를 최근 열었다. 냉장고 냄새제거 참숯, 세탁망, 건조대, 매직블럭 등 주방용품에서 완구류까지 총 180여종의 상품이 구비돼 있다. 값은 모두 1,000원. 그러나 주문은 1만원부터 가능하며 3만원이 넘어야 무료로 배달해 준다.

박종국 네이트닷컴 EC팀장은 “불황으로 인터넷에서도 더욱 저렴하게 생필품을 구입하려는 네티즌이 늘었다”며 “천냥하우스는 이틀 간격으로 상품을 업데이트해 고객의 수요를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중견쇼핑몰 트레이디포(www.tradepot.co.kr)는 1만원에 원하는 상품을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는 ‘1만원마트’를 열었다. 선글라스나 전기 헤머, 정상가 3만 7,000원자리 핸즈프리 등도 모두 1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3/06/25 11:38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