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순수한 사랑이 비현실적 코미디로 와닿는 세상 꼬집기

이 영화의 포스터나 예고편을 본 사람은 모두 순도 100퍼센트의 코미디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코미디 장르에 가슴 아픈 멜로의 요소를 첨가하고, 거기다 조폭 액션 영화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대중적 장르들의 혼합이다.

이런 복합 장르는 적절한 배합률을 갖지 못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지루함을 줄 수도 있는데,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이런 위험성은 비켜갔다. 너무 코미디다 싶을 때 멜로라는 카드를 슬쩍 들이밀면서 예상 밖의 방향으로 가고, 또 그러다가 공식대로 해피엔딩이 되면서 웃음을 통해 ‘사랑’에 대한 진지함을 얘기한다.

주인공 손태일(차태현)은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며 아들만 잘되는 걸 바라는 어머니가 있다. 하지만 태일에게 중요한건 고생하는 어머니도 아니고 자신의 미래도 아니다. 어릴 적 젖동무인 주일매(손예진)를 차지하려는 일념뿐이다.

그런 그에게 일매의 아버지 주영달(유동근)은 어릴 적부터 뭔가 하나씩 달성 목표를 제시한다. 하지만 한가지 임무가 달성되면 태일에게는 더 어려운 목표가 정해진다. 그 정해진 코스를 밟게 만들면서 영달이 태일에게, 곧 관객에게 전달하는 이데올로기는 육체적 욕망이 억제된 ‘순수한 사랑’이다.


21세기 ‘허벅지 찌르기’에 배꼽

영달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내의 무덤 앞에서 자신이 태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태일이 그 시절의 자신을 많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위해 참아야 하는지를 얘기해준다.

일매 아버지의 경험에서 나온 가르침에 깨달은 바가 생긴 태일은 글자 그대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일매에 대한 모든 육체적 욕망을 자제한다. 혹 일매가 원하더라도 그녀의 허벅지를 찌르며 태일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키스조차 허용되지 않는 ‘완전 무구의 혼전 순결’을 제창한다.

하지만 이런 결혼을 목표로 한 순결한 연애에 대한 외침은 갖가지 웃음을 제공하며 슬며시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교훈적이거나 케케묵은 훈계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태일이 코피를 쏟으며 공부하는 모든 과정은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가득 차 있고, 일매와 다른 남학생의 로맨틱한 순간은 순식간에 태일의 등장과 더불어 개그가 되며, 심지어 일매가 간절하게 태일의 키스를 원할 때 그녀를 나무라며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서도 폭소가 터지도록 만든다.

사실 태일이 일매와의 결혼을 위해 순결하게 일매 곁을 지키는 모습은 코미디적 요소를 제외하면 한국 대중문화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랑 받았던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영민(안성기), <모래시계>(김종학, 1995)의 재희(이정재), <남자의 향기>(장현수, 1998)의 혁수(김승우) 등은 평생동안 한 여성을 순수하게 마음으로 사랑하는 남성들이다.

이런 남성과 유사한 남녀주인공이 등장하는 모든 멜로 영화에는 키스 이외의 육체적 관계는 없거나 혹은 있어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규칙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에서 그대로 지켜진다. 또한 이런 멜로드라마에서는 영원한 사랑을 유지시키기 위한 모티브로 죽음이 자주 등장하는데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죽음의 근처까지 간다.


가부장제의 틀로 만들어낸 코미디

태일과 영달이 영화의 두주인공으로서 모든 관심을 끌고 있을 때 여주인공이지만 오히려 주변부적 인물로 보이는 일매는 바로 가부장제에서 결혼의 결정권이 남성들의 몫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일매가 태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은 초반부에도 아주 조금 보여지긴 하지만 일매가 태일과 결혼을 하는 문제는 그녀의 아버지가 결정하는 것으로 확정된다.

그래서 태일은 영화의 시작부터 자신이 일매를 사랑하고 결혼을 원하는 것을 일매 자신과 얘기해야 될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에게 허락받아야 될 것으로 여긴다. 이점은 영화의 모든 에피소드가 시작되고 코미디가 출발하게 되는 근거를 제공한다.

또한 일매가 태일이 아니라 다른 남성을 결혼 상대자로 결정하자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영달과 태일이 비밀리에 시행하는 행동도 일매와 직접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일매의 상대 남자를 골탕먹이는 것이다.

즉 태일이 일매와 결혼하는 데 필요한 것이 일매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아버지의 허락이었던 것처럼 일매가 태일에게 돌아오는 것도 일매의 결정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일매가 결혼하려고 하는 상대 남성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가부장제라는 틀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코미디가 된다.

영달과 태일 사이에서 주변부에 머물던 일매가 주인공의 자리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그녀가 죽을 병에 걸린 후다.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는 점은 일매가 태일이 아닌 다른 남성과 결혼하겠다는 선언을 합법화 할 뿐 아니라 그녀가 그 남성과 아주 많이 섹스를 했다는 경험도 정당화시킨다.

결혼을 약속한 것과 다름없는 태일과의 키스도 허락되지 않았던 일매에게 병은 모든 일탈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당연한 이유가 된다.

문제는 모든 결정권을 영달과 태일에게 맡겨 버린 채 20대 초반을 넘긴 일매가 사회 생활을 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스스로 남성을 선택하거나 성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태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쉽게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한 바람둥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보여준 독단적인 행동과 말은 태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거짓이었을 뿐 영달에 의해 구축된 ‘이상적인 만남과 결혼’에 대한 거부는 아니다. 일매는 결국 태일 보다 더, 혹은 태일 만큼 진실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인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일매와 태일이 죽음을 모티브로 삼은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유사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라는 주제도 동일함에 불구하고 왜 코미디를 지향했을까? 여기에는 대중적인 장르를 택한 상업적인 이유보다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멜로드라마일 수 밖에 없던 순수한 사랑이 이제 비현실적인 코미디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대답이 더 어울린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와 동시에 개봉하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봉만대)이 현실적 묘사에 치중한 현대 젊은 남녀의 사랑과 섹스에 대한 반영이라고 생각한다면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섹스가 없는 첫사랑을 결혼까지 이끌고 간다는 것이 코미디가 아니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이지 않을까 싶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6/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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