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 체제이후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각종 호재와 악재 속에 살얼음판과 같은 균형을 유지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외환시장에 대한 부담으로 증시 흐름이 대부분 외국인투자가들의 동향에 연동돼 있다보니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그동안은 외국인이 주식을 매수하면 주가가 상승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락하는 명쾌한 이분법적 잣대만 있으면 누구나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주식시장을 둘러싼 해외변수가 불투명하게 진행되면서 외국인투자가들이 불규칙(?)한 매매패턴을 나타내고 있으며 덩달아 기관투자가들도 눈치보기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최근까지 주식시장의 흐름을 좌우했던 변수들을 점검함으로써 앞으로의 전개 방향을 가늠해 본다.

◇이달초 주가가 반등할 수 있었던 배경은

6월이후 300포인트대를 기준으로 4개월여 동안 장기 횡보하던 종합주가지수가 이달들어 400포인트에 바짝 육박할 정도로 급반등한 것은 무엇보다 일본 엔화 가치 강세와 이로 인한 아시아 외환시장 안정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한두달전까지도 1달러당 150엔대를 넘나들던 일본 엔화가치는 최근 미국이 두차례의 금리인하 조치를 실시하면서 이달들어 1달러당 110엔대로 비싸졌다.

미 달러화 약세및 일본 엔화 강세는 달러베이스로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금들의 자산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미국시장 일변도로 투자를 집중시키던 전세계 투자자금의 관심이엔화강세를 배경으로 한 아시아 이머징마켓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 관계자들은 “일본 엔화가치가 상승하자 환율 변동에 따른 평가손실 우려감이 줄어들면서 국내 주식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가 부쩍 늘어났다”며 “선진국의 세계 금융시장 위기에 대한 공조 노력이 가시화되면 될수록 엔화가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동시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권역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달들어서만 28일 현재 1조2,401억원을 매수하고 7,059억원을 매도해 5,342억원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는 지난 3월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규모다.

주가상승의 또 다른 요인에는 정부가 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조기에 마무리짓는 동시에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

실제로 추석을 전후해 정부가 금융기관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으며 시중에 현금유동성이 풍부해지자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이 사상 처음 한자리수 시대로 진입하는 저금리현상이 나타났다.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고수익 금융상품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경신 대유리젠트증권 이사는 “저금리로 인해 투자자금을 운영할 마땅한 금융상품을 찾지 못한 기관투자가들이 주식시장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일반투자자들 역시 추가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을 털어내면서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 국내 구조조정의 잣대로 인식되온 기아자동차 처리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점등도 투자심리를 북돋웠다.

◇최근 주가가 조정을 받는 이유는

주가지수 400포인트를 바짝 육박할 정도로 기세좋게 상승세를 타던 주식시장이 최근 일주일가량 조정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엔화가치 강세기조가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가치가 1달러당 110엔대로 치솟자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진단, 국내 주식시장의 가장 큰 매수세력으로 떠오른 외국인투자가들이 재차 아시아 외환시장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기간동안 외국인투자가들의 주식매매 실적은 월초와 달리 소폭의 순매수 또는 순매도로 일관해 엔화 추이에 맞춰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관망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주식시장의 매수주체가 사라지면서 주가지수선물과 연계된 기관투자가들의 프로그램 매매가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도 주가 조정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프로그램 매매는 선물및 옵션등 파생상품 가격이 실물 주가와 차이를 보일 때마다 파생상품을 사고 주식을 팔거나 주식을 사고 파생상품을 파는 방식의 매매를 통해 차익을 얻는다.

이 때문에 주가와 파생상품간의 차이가 나타나면 가차없이 주식을 사거나 팔면서 실물주가와 파생상품간의 차이를 수렴시켜 결국 주가가 일정한 지수대에서 횡보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나타냈다.

이 밖에 380~400포인트대에 밀집된 매물벽(그동안 매매된 주식규모가 잠재 매물로 대기하는 것)을 소화시킬 매수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점과 월초 단기 급등한 후 지수 400선에 육박한데 따른 심리적 압박감도 조정장세를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앞으로 주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정부가 5대 재벌그룹의 자금 독식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기관별 재벌그룹 채권인수 제한 조치를 내린 것이 주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미 일부 재벌 그룹 계열사들은 채권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봉쇄되자 유상증자를 추진하는등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성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정부가 내년말까지 그룹사들의 부채비율을 200%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긁어 모으기’가 위험수위로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재벌그룹들의 유상증자 물량부담으로 주식시장의 회복 가능성이 정상 상태에 비해 절반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110엔대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엔화의 추이 역시 부담요인의 하나다.

반면 한국 구조조정의 핵심인 재벌개혁의 첫 단추를 채웠다고 판단하는 외국인투자가들의 시각을 감안하면 외국자본의 주식시장 유입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가가 단기 급등했다고는 하지만 국내 기업의 주가는 청산가치(보유하고 있는 순수한 자산을 처분했을 경우의 가치)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점도 투자 매리트를 높이고 있다.

결국 호·악재가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엔화의 추이와 이에 연동된 외국인투자가들의 주식매수 강도가 주식시장의 흐름을 결정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정동배 대우증권 투자정보부장은 “외국인투자가들의 국내 주식매수는 앞으로 좀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초와 같이 주가를 끌어올릴 정도의 무조건적인 매수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저금리라는 배경에다 구조조정기금의 유입등으로 기업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면 주식시장이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낙관했다.

김형기·서울경제신문 증권부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