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기상이변을 몰고 왔던 98년 엘니뇨가 99년엔 어떤 후유증을 남길 것인가.

식량 전문가들은 엘니뇨로 인한 피해가 엘니뇨 현상이 발생한 해보다 그 다음해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엘니뇨 기상 이변이 세계 곡물의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예모 삼성 지구환경 연구소 수석연구원은 “ 엘니뇨 현상이 농업생산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선 깊이 분석된 적이 없으나 과거 경험을 통해서 엘니뇨 및 라니냐 현상이 곡물 생산량과 국제 곡물가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며 세계식량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엘니뇨가 끝난 다음 해에 쌀 작황이 좋지 않았던 전례가 있어 어렵게 IMF터널을 헤쳐나오고 있는 우리들에게 식량위기까지 겹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97-98년 엘니뇨 동안 남미나 미국, 동남아시아가 겪었던 전형적인 엘니뇨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98년 기상이변이라면 새해 벽두 영동 산간 지방에 찾아왔던 폭설, 봄이 일찍 오면서 나타났던 이상고온 현상, 이에 따른 벌떼의 도심 출현과 모기떼의 극성, 여름의 게릴라성 폭우, 가을의 여름 같은 기온(섭씨 32.8도, 50년만에 최고 기록)등을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98년 국내 쌀 작황은 엘니뇨 피해 때문인지 97년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났다. 엘니뇨가 발생한 시점인 97년 쌀 수확량은 10a(아르)당 518㎏(평년 수량 455㎏)을 기록, 평년작 대비 63㎏이나 증가했다. 그러나 98년엔 482㎏(평년 수량 470㎏)을 기록, 평년작 대비 12㎏증가에 그쳤다.

엘니뇨가 시작한 97년의 쌀 수확량은 평년에 비해 다소 높은 기온과 평년 강수량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대풍을 거뒀으나 98년엔 평년 수량을 겨우 넘겨, 엘니뇨가 농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정예모 연구원은 “보통 엘니뇨가 소멸한 뒤 다음 해 봄까지 농사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 99년 역시 엘니뇨의 후유증은 계속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80년 이후 우리나라엔 모두 4-5차례의 엘니뇨가 닥쳤으나 쌀 작황은 엘니뇨가 몰고 온 기상 조건에 따라 달랐다. ‘약간 높은 강우량’과 ‘다소 많은 강수량’은 농사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여름철 저온’이나 ‘일조부족’ ‘봄가뭄’등이 나타났던 해엔 작황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에서 기록적인 엘니뇨라 했던 82년 엘니뇨 때 경북 전남 일부 지역에 봄가뭄이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쌀 수량은 평년작 대비 10㎏가 증가한 것등이 이를 반증하는 결과다.

엘니뇨가 국내 농사에 두드러지게 나쁜 영향을 주었던 해로는 87, 93, 94년을 꼽고 있다. 모두 엘니뇨가 종료되던 해.

86~87년 엘니뇨때는 86년은 평년 기상과 같았으나 87년엔 봄가뭄이 7월 중순까지 이어져 쌀 수확량이 평년작 대비 15㎏감소했다.

또 94~95 엘니뇨 역시 94년엔 여름의 몬순 약화와 고온 건조 열대야의 연속등 기상이변에도 불구하고 쌀 수확량은 평년작에 비해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95년엔 일부지역의 봄가뭄과 8월의 저온과 일조부족 현상 때문에 평년작 보다 5㎏나 감소했다.

사실 전문가들이 엘니뇨 이후 국내식량위기를 걱정하는 이유는 식량자급율이 97-98%에 이르는 쌀때문이 아니다. 쌀을 제외한 옥수수 대두 소맥등 곡물의 국내 자급률은 5%에 불과, 국내 기후와는 상관없이 해외 기상 조건이 나쁠 경우 작황 부진으로 곡물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이 충격을 흡수할 대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구촌은 이미 70년대초 세계식량위기를 호되게 경험했다. 70년대 초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구소련 중국 동남아 지역및 호주등 지역의 극심한 한발, 브라질의 대홍수, 서부아프리카 사하라지역의 가뭄으로, 72~73년 세계곡물생산은 전년에 비해 3% 정도가 감소했다. 생산량이 감소하자 구소련과 중국은 세계 총생산량의 3% (72년 세계 곡물교역량의 25%에 해당하는 3,700만톤)정도의 곡물을 수입했는데 이에 따라 세계 곡물가격이 폭등하기 시작, 쌀은 367% 소맥은 212% 옥수수는 137% 대두는 115%나 올랐다.

또 82~83년 엘니뇨 이후 옥수수는 26% 콩은 18%, 86~87년의 경우 콩은 42% 옥수수는 41% 밀은 31%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미국 월드 워치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다행히 99년 엘니뇨로 인한 세계곡물 생산량이 국가별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위협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식량위기 위협이 잠재돼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98년도 세계 곡물생산량은 18억7,780만톤으로 97년 대비 0.6% 감소(추정치)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의 경우 양쯔강 대홍수로 곡물 생산량이 전년대비 약 10%나 감소했으며 러시아 역시 곡물생산량이 40년 이래 최악의 상황인 것으로 밝혀져 중국이나 러시아가 식량 수입에 나설 경우 식량 시장에 가격 상승등 연쇄적으로 위기를 파급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곡물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 곧바로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국내 곡물 수입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식량위기는 기후만이 좌우하는 문제는 아니다. 인구문제, 농업기술문제, 경작지, 물 등 환경요소등 다른 요인들도 불안정해질 경우 세계식량위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 외적 불안요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식량자급체제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UR협상이 진행돼 오면서 곡물 수입량은 계속 늘어, 국내 곡물 전체의 자급률이 OECD회원국중 가장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장 외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곡물 수입량을 줄이는 것이 어렵다면 수입선 다변화등 위험 분산 노력이라도 기울여 세계곡물시장 교란의 영향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순권 경북대 교수가 추진해온 옥수수재단 설립 사업 역시 북한에 옥수수 종자를 개량해 식량난을 덜어주는 동시에 국내 옥수수 자급률을 향상시키는 방안의 하나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송영주·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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