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바둑계는 외화내빈의 한해였다. 한마디로 성적은 프로나 아마나 최고의 한해였지만 경제한파로 인한 기전 축소로 프로기사의 수입은 큰 폭으로 줄었고 아마대회도 상당수가 줄어들어 바둑계는 일년 내내 찬바람이 돌았다.

이창호의 독주는 끊기질 않았다. 단 한명도 그에게 제재를 가하지 못했으니 말 그대로 독주였다. 독주는 국내에서 뿐 아니라 국제전에서도 같은 현상이어서 본격 기전에서 이창호가 우승을 놓친 것은 딱 한번에 불과할 정도로 철저한 상승세를 유지했다.

국내기전의 경우 이창호가 못가진 타이틀은 3개인데 그것은 스승 조훈현이 가지고있다. 그러나 이창호가 스승에게 패한 건 연말에 치러진 국수전 뿐이다. 바둑왕전은 패하긴 했지만 속기전인 관계로 논외이며 패왕전은 이창호가 불참한 대회. 따라서 이창호는 최훈현 최명훈 유창혁으로 이어지는 도전자 그룹에게 거의 완승을 거두었다.

국제전에서 이창호에게 도전한 상대는 유창혁 창하오 마샤오춘. 그러나 그들도 결국 이창호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유창혁은 연초에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이창호에게 1:3으로 패퇴했고 5월에는 중국의 희망 창하오가 한수 배우고 돌아갔다.

그 다음 연말에 마칠 예정이었던 삼성화재배는 아시안게임 관계로 내년초로 미뤄져 일단 우승을 확정짓지는 못했다. 현재 1패를 당하고 있지만 워낙 마샤오춘에겐 강한 전적을 자랑하고 있어 역시 이창호의 우승 가능성은 절반을 넘는다.

세계 바둑계는 역시 이창호의 말발굽 아래 지배된 상태. 아직 변변찮은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의 마샤오춘이 일단 가장 강력한 도전자. 이미 95년 세계정상에 섰던 그이기에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는 최근까지 무려 이창호에게 10연패를 당한 전력이 있어 이창호를 밀어낼 힘까지는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간혹 덜미를 잡을 수는 있을듯. 일본에서는 요다 노리모토가 이창호의 천적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역대전적 2승6패가 이를 웅변해준다. 다만 요다의 경우 이창호를 이기기보다는 만나러 오는 과정이 더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성적이 들쭉날쭉하여 꾸준한 성적을 내는 것이 급선무.

아마바둑계로 돌이켜보면 영화제목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 가 생각난다. 20년만에 세계 아마바둑계를 석권한 김찬우 아마7단의 쾌거가 제일가는 뉴스. 쓸만한 재목은 모조리 프로무대에 다 앗긴 아마바둑계로선 숙원을 푼 한해였다. 실제로 한중일 3국의 개인전이라고 해야할 세계아마선수권에서 한국은 번번히 우승후보로 꼽히면서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못한 원한을 20년만에 푼 것. 아마 올해 최고의 뉴스가 아닐까 싶다.

그다음 세계페어바둑선수권에서 박성균 김세실조가 우승을 차지해 아마바둑계는 겹경사를 맞았다. 일종의 혼합복식이라 할 페어바둑은 연조가 일본에 비해 현저히 짧은 우리로서는 낯선 종목. 그러나 탁월한 기량으로 금세 격차를 뛰어넘고 우승을 차지해 미래 기전에 대해서는 희망을 부풀리게 되었다.

여류바둑계도 역시 풍성했다. 바로 황염이 보해컵 세계여류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정체된 여류바둑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아직 중국의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황염을 필두로 어린 기재들이 수두룩해 역시 희망을 가질만한 한해였다. 진재호·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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