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잠잠해졌다. 통합방송법 국회상정보류, 종합유선방송법 이번 회기내 개정, 대통령직속자문기구 방송개혁위원회 설치령 국무회의통과, 중계유선방송 8시간 방송중단…. 숨가쁘게 진행된 방송정책 논의에 따라 방송관련단체들이 거칠게 쏟아냈던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8일 청와대가 방송개혁위원회의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방송개혁위원장 내정자 강원용목사(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 활발한 목회활동과 그에 못지않은 사회참여로 ‘한국 개신교의 얼굴’로 꼽히고 있는 인물이다. 강목사는 방송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62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4년간 근무했다. 이후 방송윤리위원회가 88년 방송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권한을 확대하면서 초대 위원장이 됐다. 강위원장은 방송심의의 기틀을 마련하고 방송개발원을 설립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점을 인정받고 있다.

방송계가 방송개혁위원회 내정자에 대해 비난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방송의 독립, 방송위원회의 독립’을 위해 애쓴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91년 당시 강위원장은 방송위원회 위상강화를 위해 구 공보처와 다투다가 결국 임기를 2년여 남겨놓고 사직하고 말았다. 지난달 국민회의가 통합방송법 상정보류를 발표했을 때부터 방송관련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주제는 ‘정부의 방송 장악 음모’였다. 그러나 강목사가 개혁위원장으로 내정되면서 그러한 의심은 일단 ‘아니다’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두 번씩이나 요청을 거절했다가 결국 위워장 직을 수락한 강목사의 생각도 일단 방송계의 의견과 일치하는 듯하다. 강위원장내정자는 “방송위원회는 반드시 독립되어야 한다. 방송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은 방송위원회가 해야한다”며 힘주어 이야기했다. “방송은 철두철미하게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을 위한, 국민의 방송이 돼야 한다”며 “정권이든 재벌이든 방송과 적절한 관계는 가지되 방송의 독립을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설에 대해서는 “통합방송법안이 방송위원회 위상 강화 등 방송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신념에 변화가 전혀 없다”며 “내가 위원장이 된 것 자체가 음모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느냐”고 되물을 정도이다. 그리고 “9월의 세미나에서 내놓은 의견과 지금의 입장이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강위원장내정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크리스챤아카데미는 9월 방송법과 관련해 ‘방송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서는 △지나치게 몰려있는 정부·여당의 방송위 위원 추천 몫을 줄이고 △대기업·언론사·외국자본의 위성방송 사업 단계적 제한적 참여를 주장했었다.

부위원장 내정자인 강대인교수(계명대 신문방송학과)도 같은 주장을 펴온 사람. 그는 “방송개혁위에서 마련할 새 방송법안은 방송위원회 위상 강화 등 기존 여·야 법안의 밑 그림을 보완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개혁위원회는 조만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코오롱빌딩에 사무실을 차리고 3개월의 한시적인 업무에 들어간다. 학계와 업계를 대표하는 30명의 실행위원회가 개혁위원회를 보좌한다. 우리 방송의 밑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권오현·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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