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새해엔 떤 얼굴이 떠오르고 또 어떤 인물이 가라앉을 것인가. 해가 갈수록 이창호의 위세가 굳건해지는 가운데 99년 바둑계는 다가올 21세기의 대표주자를 가리는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과연 지천명을 바라보는 조훈현은 건재할 것인가. 창창한 20대 주자들은 언제까지나 ‘내일은 태양’에 만족할 것인가. 더불어 절정의 나이를 맞은 유창혁은 얼마나 더 선전할 것인가. 해외엔 과연 이창호의 적수가 있는가. 갖은 화두마다 궁금증만 더해진다.

우연의 일치지만 토끼해를 맞아 토기띠들이 얼마나 뛸 것인가가 국내바둑은 물론 세계바둑계의 판도변화에 키를 쥐고 있다. 물론 올해 25살 한창의 나이인 토끼띠 이창호가 그 선두에 서있다. 최명훈도 동갑내기.

당장 이창호의 위세를 꺾을 자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후발주자들의 선전여하에 따라 이창호도 지분의 반정도는 토해내야 할 지 모른다. 다라서 99년 한해는 이창호의 점령지를 어느 주자가 어느 정도 잠식할지가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다.

국내무대는 먼저 유창혁이 태풍의 눈이다. 지난해 12월21일 이창호로부터 배달왕전을 따내며 장장 9개월만에 무관에서 탈피했다는 것이 일단 청신호다. 해마다 유창혁은 연초에 ‘선전’해온 기사인만큼 이 여세를 몰아 연초부터 상당한 가속페달을 밟을 것이다.

물론 그도 잃었던 땅이 많아 당장 도전권을 따내기는 어려울 지 모르지만 대략 3월 정도부터는 각종 도전무대에 얼굴을 들이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조훈현보다 유창혁이 이창호에겐 ‘약’이 된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그가 밑에서부터 엉뚱하게 좌초되지만 않는다면 3개정도의 타이틀은 충분히 가져갈 실력은 된다. 다만 그도 기복이 좀 심하다는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이창호를 능히 이길 실력이 있는데도 무명에게도 맥없이 추락하는 경우가 있어 이 모든 가정이 허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조훈현은 소리소문없이 3관왕에 올라있다. 다만 속기전을 빼고나면 패왕, 국수전등 ‘물건’이 작은 타이틀뿐인데 상금액수만 보면 프로로서 그리 만족할 순 없는 성적이다. 따라서 그도 더 늦기전에 ‘한건’을 올려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세계무대를 겨냥하겠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국내전 농사가 풍작이어야 가능한 기대다. 작년의 경우 국내전에서 이창호에게 ‘죽을 쑨’뒤 세계무대에서도 4강에 한번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침체한 예가 그 방증이다. 단번에 올라서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급격한 하락세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최명훈이나 목진석등 신예 주자의 선전여부가 관심사. 이젠 그들도 어엿한 20대이므로 더이상 준우승이나 본선진출따위로 칭찬을 들을 나이는 지난 셈이다. 따라서 바짝 긴장해 도전권을 한두차례라도 잡아야 하며 꼭 한번쯤은 이창호를 꺾어봐야 한다. 그것이 쉽지 않다면 21세기도 그들의 것이 된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지나간 고수들의 예에서 보듯 준우승만 수차례 하다가 흘러간 스타들이 어디 한둘인가.

더불어 중국의 신세대스타 창하오가 과연 이창호에 맞설 주자로 간택되느냐도 관심거리다. 일단 그는 한국에 즐비한 많은 신예군보다 낫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사실 그의 무대가 중국이어서 비교대상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의 무명기사보다 결코 실력면에서 나은 것도 없다. 따라서 그가 중국의 1인자라면 최명훈 목진석을 척척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그럴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99년은 이창호를 정점에 두고 유창혁이가 거리를 바짝 좁히며 신예들이 집단으로 달라붙는 형국이 될 것이다. 그리고 1년후 이창호가 과연 몇개의 타이틀을 지켰는지가 관심사가 될 것이다.

진재호·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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