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요.”우리나라 호텔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김봉영 ‘그랜드 하얏트 서울’호텔 홍보부장(60)이 ‘커리어 우먼’으로선 드물게 60세를 채우고 12월31일 정년 퇴임한다. 그녀는 이 경험들을 엮어 앞으로 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정년퇴임전에 ‘호텔로 출근하는 여자’(세계의 여성들 발행, 7,500원)라는 책을 펴냈다.

“일단 쉬고 싶어요. 남편(강신표 인제대 인류학과 교수)이 있는 김해로 내려갈 계획입니다. 인제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맡아달란 제의도 받았구요. ” 그 어느 젊은이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호텔인으로서의 16년 세월을 끝내고 이제 다시 또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는 김봉영씨.

사실 그가 호텔에 첫 발을 내디딘 때는 이미 여자로선 한물 간 나이(44세)였다. 남편 유학중 하와이 카할라 힐튼호텔에서 5년간 일했던 경험이 밑천이 돼, 당시 친구였던 김재익(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작고)씨 소개로 83년부터 힐튼 호텔에서 근무하게 됐다. 이후 그는 83~84년 힐튼호텔 근무를 제외하곤 무려 13년간‘ 하얏트’홍보부장으로 스카웃돼 한 자리를 지켰다.

“늦게 사회에 출발 한 것이 저에겐 덕이 됐다고 생각해요. 외부에선 호텔에서 일하는 여자라며 바라보는 의혹에 찬 시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었구요. 프리랜서로 학생들 영어 지도등 오래동안 활동해와서 그런지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따른 두려움도 없었어요.”

그는 자신이 근무하며 호텔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개선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호텔은 세상을 향한 창이자 응접실이지요. 문화적 정치적 거래가 벌어질 수도 있고 불륜의 현장이 될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호텔을 색안경 쓰고 바라보진 않앗으면 해요. 불륜관계가 꼭 호텔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잖습니까.”

“아마 호텔을 떠나더라도, 매일 아침 호텔 로비에 들어서며 오늘은 또 어떤 사람과 어떤 일로 만나게 될까 설레던 기억을 지울 수 없겠지요.”

그 기억 속엔 클린턴 대통령 방한시 혹시 불미스런 일이 생길까 호텔 후배들을 단속하던 일, 마지막 부부 동반여행이 되었던 ‘세기의 커플’찰스 왕세자부부의 짐을 따로따로 챙기던 일도 한켠에 자리잡고있다. 또‘J.J. 마호니스’나 ‘송바’등 시설이 하얏트 명소로 사랑받게 되기까지 억척스럽게 홍보하며, 이벤트를 위해 뛰며 흘렸던 무수한 땀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들이다.

“주변에서 가족들이 양보하고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야망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고 게으르게 주저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자식이 아플 때, 시집간 딸의 해산 구완조차 해주지 못했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는 3남매의 다감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다소 야한 제목의 ‘ 호텔로 출근하는 여자’는 여성과 호텔이라는 편견을 딛고 성실히 살았던 한 여성의 20년 직장생활 고백이다.

송영주·주간한국부 차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