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외도를 겪고 난 부부들 중의 많은 비율이 이혼을 선택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다시 잘 해보기로 약속을 한 부부들 중에서 또 다시 많은 비율이 아주 오래도록 관계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부부들은 서로를 배우자로서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부인은 남편이 도무지 믿음을 주지 않는다고 하고, 남편은 부인이 용서하겠다고 해놓고서 자신을 옭아매려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외도를 한 경우에 그 아내는 남편이 정말로 ‘그 여자’와의 관계를 끝냈는지, 또 다시 외도를 저지를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는지 몹시 불안해 한다. 그러면서 남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겠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을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남편의 외출과 귀가 시간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점심은 누구와 먹었는지 확인하고, 남편의 ‘핸드폰’ 통화목록을 확인하고, 남편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점검하곤 한다.

다행히 남편이 이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해서 서서히 진정해간다고 해도, TV 드라마나 거리에서 외도를 연상하게 하는 자극들이 너무 많으므로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괴롭다. 결국 이 모든 고통의 뿌리를 제공한 남편에 대한 원망을 그칠 수가 없다.

남편의 경우에도 외도를 저지른 당사자라서 참고 견디지만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부인은 남편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수시로 전화를 하고, 휴대전화나 ‘이메일’까지도 확인 한다. 그래도 자녀들 앞에서는 체면을 세워주었으면 했는데, 하도 많이 싸우다 보니 이젠 곁에 누가 있는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친가나 처가 모임에 가서도 부인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있으니, 다른 친지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부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자기 입으로는 말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웬만한 사람은 다 눈치챘을 것이다.

부인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외식을 데려가도 부인은 예전에 누구와 와 봤느냐, 왜 이제까지는 데려오지 않았느냐, 저쪽 남녀도 ‘불륜’ 아니냐 등등 캐어물어서 편히 식사할 수가 없다.

결국 남편은 부부관계의 회복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란다. 자신이 ‘죄인’이니 다 포기하고 ‘돈 버는 기계’처럼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고 살던지, 차라리 깨끗하게 이혼을 하고 마음이라도 편히 살던지 확실한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은 ‘용서가 먼저냐, 믿음이 먼저냐’ 라는 함정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함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함정에 빠진 두 사람이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먼저 처음 생각한 것보다 자신들이 최악의 상황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외도 사건이 견디기 힘든 시련을 준다는 점은 틀림없지만, 만성적인 외도와 폭력 같은 경우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이혼 수속을 밟는 경우와 비교하면, 그래도 두 사람은 아직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신의 몫에 전념하려는 마음을 스스로 북돋워야 한다. 부부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면 더 좋지만, 상대 배우자가 아직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경우라도 자기 몫은 자신이 해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용서나 신뢰는 그것을 말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각자가 애쓰는 오랜 과정에 대한 평가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외도 이후 부부관계의 회복은 단순히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전혀 새로운 관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 과정은 예상 외로 쓰라릴 수도 있지만, 그 결실은 기대한 것보다 훨씬 풍성할 것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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