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대부분의 남녀는 자신이 사랑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와 결혼할 것을 바란다.

심지어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남녀라도 그 이유를 들어보면 변함없는 사랑을 기대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결혼을 위한 조건으로 사랑을 중요시하는 이런 현상은 예전에는 아주 드물었던 성향이다.

물론 아주 오랜 옛적에도 많은 남녀가 사랑을 하였겠지만 오늘날처럼 아주 당연하고 필수적인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금까지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성을 지나치게 억압해왔던 것에 대한 반작용처럼, 현시대에 와서 사랑이 지나치게 미화되는 듯하다.

진료실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사랑과는 무관한 성적 만족을 위해서 혼외 정사를 일삼는 남성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뒤늦게 발견한 사랑에 충실하고자 가정을 벗어나려는 부인들의 용기에 격려를 보낼 일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비록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면서도 숭고한 것으로 인정하더라도, 사랑이 감정의 경험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결혼과 가정 생활이라는 현실과 이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불행으로 이어지기 쉬운 잘못된 결혼 동기들 중에는 ‘사랑’도 포함된다. 특히 처음 보는 순간부터 열렬한 사랑에 빠진 경우나, 그 사람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게 되었다고 큰소리치는 경우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이성에게 한눈에 반하는 경우는 상대방을 이상적인 인물로 왜곡하여 인식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무의식적 현상에 대해서 당사자가 전혀 모르고 있으면 의식적인 통제를 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심리 내면의 문제를 상대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강박적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욕구를 완전하게 충족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함께 지내면서 점점 많은 실망을 겪게 되고 갈등이 깊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의 존재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헤어지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상대에 대해서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집착하면서 비난하게 되는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사랑으로 시작했던 관계가 헤어날 수 없는 애증의 함정으로 바뀌는 것은 사랑에 대한 기대가 맹목적이고 또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보면 비교적 어린 시절에 만나 일찍 결혼한 경우, 오랜 기간 연애를 하면서 수없이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하다가 결혼한 경우, 또 상대에 대한 죄책감이나 연민에서 결혼을 결심한 경우 등에서도 위와 같은 심리적 현상이 관찰된다.

물론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남녀가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자신들만의 감정에 따른 결정을 내리기 전에 주변의 객관적인 지적과 염려를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혼 전 상담이나 ‘부부학교’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이들이 평균 가정보다도 오히려 더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남녀가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혼에 까지 이르게 되기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사랑의 모습과 역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연애 때에는 서로에 대한 열정이 사랑의 증표가 되겠지만, 결혼 후에는 안정된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완수하려는 태도가 사랑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정을 지켜온 부부의 사랑은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 대한 책임감, 도덕적 판단 기준, 상호 존중과 같은 전 인격적 태도로 확장된다.

오랜 풍상을 함께 견디며 살아온 노부부가 점점 서로를 닮아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수룡 www.npspecial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