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역사 재해석한 '죽은 자를 위한 변명'. 친일문제에 새로운 파문

"자유주의적 이론은 내 숙명"

일제의 역사 재해석한 '죽은 자를 위한 변명'. 친일문제에 새로운 파문

작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57)씨가 뜨거운 감자를 불쑥 던졌다. 자유주의자,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그는 21번째 저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서 일제 시대의 친일 문제라는 채 꺼지지 않은 불씨를 세상에 던졌다.

‘궤변’이라는 데서부터 ‘망언’이라는 신문평은 이 책이 일으킨 후폭풍의 정도를 어느 정도 반영해 준다. 급기야 그는 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너무 심하지 않은가”며 따지듯 물었다. 당시 그 기자 왈, “나는 처음부터 반감을 갖고 읽었다”는 것. 예상했던 바였다. 복씨는 “악평이라도 안 써 주는 것보단 낫다”며 “정치가나, 작가나, 그 점에서 똑같은 것”이라고 대꾸했다. 위악인가.

“(내책을)읽어 보려고도 하지 않고 욕하는 사람들이 문제지요. 적어도 나는 객관적인 입장에 서려고 항상 애 썼어요.” 영국의 리처드 스톨, 미국의 라이샤워나 마크 피티 등의 저서를 참고했던 것은 한ㆍ일 사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결과, 일제 식민치하는 경제적으로는 조선 말기보다 훨씬 잘 살았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으로야 더할 나위 없는 압제의 시대일지라도, 보통 사람에 대한 법의 남용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압제의 시대, 물질적으로 개선"

안병직의 ‘근대 조선 공업화 연구’ 등에서 보듯, 식민지 시대 조선인의인구는 1910년 1,311만여명에서 1942년 2,552만여명으로 94%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압제속에서도 조선 사람들의 물질적 조건이 개선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아니냐는 논리다.

통치의 결과는 인구 증감으로 반영된다는 가설을 그는 강력 적용했다. 그는 “국사학계에 부실한 노비생존률이나 영아사망률 등의 자료는 일본사학계 연구 성과의 도움을 받았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면 박해하는 국내학계의 분위기로서는 불가능한 연구”라고 말했다.

최근 개소한 서울대 낙성대 경제연구소(소장 이영훈)가 내 놓은 일제하 조선 경제 연구 결과에서도 일제 시대의 경제 성장률이 1년에 3~4%로,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한 조선 후기 상황과 극히 대비된다는 것. 그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해 그는 일제치하 한국은 벨기에 치하의 콩고 같은 추출ㆍ약탈적 사회가 아닌, 정착을 목표로 한 사회였다는 논지를 편다. “견딜만 한 지옥이었다는 거죠.”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인구 증가라는 것이다.

“흑인 노예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린 토니 모리슨의 소설을 보면 자식을 노예로 만들지 않기 위해 죽이기까지 하잖아요?” 그렇다면 1910년에 접어 들어 의병이 진압되고 사회적 안정기로 접어 들자 출산률의 증가하면서 동시에 영아 사망률이 저하한다는 통계적 수치는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이다.

여기에다 갑오경장 당시는 말로만 나왔던 노비 해방 문제까지 해결된 일제하의 사회는 적어도 모리슨의 소설에 그려진 상황보다는 낫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내 말의 요지는 친일파의 정당화에 있는 게 아니예요. 그들의 통치가 악독하긴 했지만, 나라의 틀은 잘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직시하자는 거죠.”그는 친일의 문제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단서 조항을 단다.

“일본의 식민 통치에 성과가 있었다는 말은 망언이 아니다. 단, 그것이 정당화된다면 망언이다.” 문제는 그 같은 망언을 관료나 정치인 등 공인이 자행한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그는 일본인이 하는 망언의 구조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의 경우, 시간이 좀 흘렀다 싶으면 또 불거지는 악순환에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계산이 갈려 있다는 거죠.” 그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서 규탄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그들의 지지도는 오히려 올라가는, 묘한 역설적 함수 관계를 이용한다는 것.

그는 “그러나 도조 등 A급 전범의 묘소인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고위 공직자들이 집단 참배하는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범까지 추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정부는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개별 참배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와야 해요.”

YS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라며 중앙청의 돔을 제거하던 때, 그는 모신문에 ‘식민 유산을 자산으로 만들자’는 기고를 했다. 일본인의 죄상을 기록한 벽을 세우는 등 식민 유산을 우리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친일파의 이름을 쪼아 새긴 대구 팔공산의 바위를 우리 스스로 쪼아 없애는 짓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달러ㆍ영어 공용론, 용병론 등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위를 건드려 논쟁의 중심에 떠 오르는 일에 그는 이력이 났다. 한국 사회의 암묵적 규범으로 굳건한 토대 위에 서 있는 민족주의에 반하는 언동은 그에게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적 통념이 개인을 얼마나 조작하는가를 이번 일로 절감한 거죠.”발표 직후 국내의 언론과 학계에서 던져진 비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민족주의를 가리켜 “민족주의란 개인의 이기주의를 확대, 또는 집단적으로 추구한 데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논고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데 있는 지도 모른다. 묘한 책 제목에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논리학의 기초적 명제를 대입해 보자.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란 말의 이중 부정은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한 논고가 될 터이다. 바로 그 점이다.

실제로 고려대 한국사학과 정태헌 교수는 “일제 식민지 통치에 긍정적인 일본학계의 자료를 얼기설기 엮어 자신의 잘못된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평할 가치도 없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출판 직후 민족 문제 연구소 김민철 연구실장이 제의해 온 논쟁을 그 같은 말로써 아예 원천 봉쇄한 것이다.

복씨는 그러나 “GNP 자료 등 실증적 수치를 더 보충해서 증보해 나갈 작정”이라며 자신의 ‘새 자식’을 꾸준히 보듬어 갈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다짐했다. “나는 자유주의자 하이예크보다 더 멀리, 자유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내 논리를 따라 간다면, 나는 절벽 너머까지 가는 사람이다. 등단 17년 동안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그것은 바로 이론가의 숙명이다.” 여기에 그는 덧붙였다.

“일단 세상에 나온 책은 저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자식이나 같은 거요.” 복씨의 새 ‘자식’이 한국 언론에서보다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더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그는 “조선 거류 일본인에 대한 연구,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인 또는 일본인 관료에 대한 연구 등에 대해서는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라며 학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은 초판발행일이 광복절인 8월 15일이다.

장병욱 차장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