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 진출등 합법화한 기업형 조직으로 탈바꿈
조폭, 한국형 마피아로 진화 금융업 진출등 합법화한 기업형 조직으로 탈바꿈
이제는 ‘마피아’로 간다. 과거의 조폭(조직폭력배)에서 훈장처럼 생각했던 의리와 우정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철저한 조직 생리와 냉정한 비즈니스 마인드만 존재할 뿐이다. 7월28일 새벽 경기 성남시 수진동 한 실내포장 마차에서 조직폭력배 성남 K파 행동대장 문모(26)씨가 회칼에 마구 찔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문씨 살해범으로 경찰에 검거된 이모(26)씨는 그와 코흘리개 때부터 이웃에서 함께 살아온 20년 죽마고우. 중2 때 중퇴한 두 사람은 유흥업소에서 웨이터 생활을 함께 했고 폭력조직에도 같이 들어갔다. 화끈한 성격도 비슷해 주먹세계 후배들로부터 인기를 끌었고 선배들의 신임을 받아 둘 다 행동대장을 맡았다. 이들은 몸에 용(龍) 문신도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할 만큼 두터운 의리를 과시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결별의 순간이 닥쳤다. 성남K파 두목은 행동대장 이씨를 호출, “조직을 배반하려는 문씨를 없애버려라”고 명령했다. 고민하던 이씨는 ‘의리’보다 냉혹한 ‘비즈니스’를 택했다. 마피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다.
조폭의 전형도 바뀌고 있다. 유흥업소의 관리권을 장악코자 영역 다툼을 벌이며, 건설현장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해 이권을 빼앗고,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이젠 고전이 됐다. 합법화된 기업형 마피아 조직으로 탈바꿈 하면서 금융업 등에 진출하는 등 점차 기업ㆍ지능화하고 있다. 반면 규모 10명 이하의 소규모 신규 폭력조직은 크게 늘었다. 기존의 중대규모 조직은 마피아형으로 기업화하고, 폭력 현장에는 신규 조직이 유입되는 ‘이원화’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이다. ‘강력범죄 소탕 100일 계획’을 펼치고 있는 경찰청에 따르면 1급 조폭 규모는 총 200여 개 파, 4,000여명. 이들은 활동동향이 정기적으로 체크될 만큼 주요 감시대상. 그러나 B,C급 폭력배까지 포함할 경우 전국적으로 400여 개 파, 1만1,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20세 이상 남성 1,500명당 1명이 조폭 리스트에 올라 있는 셈이다. 올들어 7월까지 경찰이 검거한 조직 폭력배는 1,78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682명)에 비해 5.9% 늘어났다. 그러나 신규 조폭은 지난해(606명)보다 78.9%나 증가, 1,084명에 달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55.2%로 폭력조직의 주축을 이뤘으며, 30대 26.6%, 40대 이상 8.0%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대는 10.2%나 차지해 갓 고교를 졸업했거나 중퇴한 10대가 구직난 등으로 꾸준히 폭력조직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수사국의 이동선 형사 과장은 “기존 대형 조직들이 금융ㆍ사채업 등 합법화한 기업형으로 전환하면서 적발 건수가 줄어든 반면 소규모 신규 조직 결성이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며 “최근의 심각한 청년실업과 ‘친구’와 ‘야인시대’등 조폭을 미화한 영상매체의 영향으로 10대들의 폭력조직 유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폭이 진출한 분야는 금융업계 부동산업계 등 다양하다.
국제 PJ파 고문 여운환 등은 벤처 기업의 M&A 작업을 유도하고, 가공 인물을 마치 외국인 투자자로 위장해 증시에 투자, 개미군단을 끌어 모으는 ‘작전세력’에 가담했다. 또 자금사정이 어려운 유망 벤처기업에 자금을 대주고 경영권을 가로채는 수법도 쓴다.
또 부도가 난 건물이나 입주자들 때문에 골치 아픈 건물 입찰에 관여해 경락을 받은 후 건물을 타인에게 넘기면서 건물 입주자들의 방해를 처리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아파트 건설 예정부지와 재개발 지역에 건달들을 보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지주 등을 협박하는 등 사고처리에 동원된다.
입력시간 : 2003-10-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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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