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누드·불륜에서 이승엽 홈런까지 암울한 현실에서의 '도피심리'도 한 몫

대한민국이 신드롬에 빠졌다?
로또·누드·불륜에서 이승엽 홈런까지
암울한 현실에서의 '도피심리'도 한 몫


‘신드롬’으로 어지러운 사회다. 올 초부터 ‘로또’가 몰고 온 대박 신드롬에 전국이 들썩이더니 최근 들어서는 이효리에서 이승엽으로 이어지는 스타 신드롬에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성현아, 권민중, 이혜영의 ‘알몸’이 뜨겁게 달군 ‘누드 신드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가 신드롬으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가 일부 계층의 풍속도를 다룬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가 젊은 세대의 동거 신드롬을 낳았는가 하면, 드라마 ‘앞집 여자’와 영화 ‘바람난 가족’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숨어 있던 불륜을 큰 신드롬으로 꺼집어냈다. 그야말로 신드롬 천국이라 할만하다.


신드롬이 신드롬을 창조한다

신드롬은 사회ㆍ문화ㆍ경제 각 영역을 가리지 않고 새롭게 불거져 나온다.언론이 만들어내는 것이긴 하지만 신드롬이 스스로 신드롬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우려할만하다. ‘신드롬을 창조하는 신드롬’유행이라고나 할까. 10월 1일과 2일 각 신문의 기사를 검색하니 별별 신드롬도 다 있다.

◇ “딸녀 신드롬이 인터넷을 강타하고 있다….”(일간스포츠 10.1)

◇ “이송정 신드롬…상섬 이승엽(27ㆍ삼성)이 아시아 홈런 기록에 도전하는 동안 미모의 여성이 스타덤에 올랐다….”(스포츠투데이 10.2)

◇ “독감 예방 접종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히 ‘예방 주사 신드롬’이라 부를 만 하다….”(일간스포츠 10.2)

◇ “NQ 신드롬 김무곤 교수, NQ로 살아라….”(스포츠서울 10.1)

이 가운데는 정체불명(?)의 신드롬도 끼어 있다. ‘딸녀’는 신데렐라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모의 한 여성이 딸기를 들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며 붙여진 애칭이며, ‘NQ’는 ‘Network Quotient’의 약자로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만들고 꾸려가느냐를 나타내는 척도를 일컫는다.

이처럼 일반인에게 생소한 사안에 대해서도 젊은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신드롬이란 말은 여과 없이 사용되는 것이 요즘의 풍토다. 젊은 세대의 유행을 반영하는 웹진 ‘시대소리’ 운영위원이자 문화비평가인 변희재씨는 “실제 신드롬이 일지 않고 있는데 언론이나 관련 업계가 상업적으로 신드롬이라고 조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신드롬이란 단어에 대한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드롬은 원래 일련의 병적 징후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용어다. 한마디로 증후군이란 뜻이다. 때문에 현재의 ‘신드롬 증후군’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우려의 시선이 다분히 많다. “튀는 것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대중에 거기에 휩쓸리게 해서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反문화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드롬을 찾고, 전파하고, 휘젓고, 뒤삼킨다. 유난히 우리 사회에 신드롬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 동안 신드롬의 주 원인을 ‘빨리 달아오르는 대신 빨리 식는다’는 우리 국민의 냄비 근성에서 찾는 시각이 많았으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2003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구며 ‘문화 아이콘’으로 우뚝 선 섹시걸 이효리를 보자. 그녀는 ‘핑클’ 활동시 팀의 리더였지만, 예쁘기 그지 없는 성유리와 가창력이 뛰어난 옥주현에 밀려 그리 눈에 띄지 못했다. 그런 이효리가 섹시퀸으로 거듭난 것은 가수로 솔로 활동을 선언한 이후부터.

웃으면 보일 듯 말 듯한 애교 넘치는 눈웃음과 글래머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옷차림으로 혈기왕성한 뭇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였고, “셀프 누드 찍은 적 있다”, “느낌이 통하면 (사랑에 빠지는데) 1분 안에도 가능하다”, “학창시절 왕따였다”와 같은 거침없고 당돌한 발언으로 현대적인 여인상에 매력을 느끼는 여성 팬들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이런 효리 신드롬을 두고 대중문?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성공의 주 원인은 따로 있다. 문화평론가 배국남씨는 그녀의 성공은 가요계와 언론이 합작한 ‘고도의 상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꼬집는다.

“효리 신드롬의 일등 공신은 스타 탄생에 목말라 있던 가요계와 언론이 그 주역입니다. 스타가 나와야 ‘꿩 먹고 알 먹기’식으로 대중의 관심도 끌고, 상품도 팔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가수와 노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가슴성형 논란, 헤어스타일 등 온갖 가십을 화제 삼으면서 일부 스포츠 신문의 1면이 ‘효리의 일기장’이 된 웃지 못할 상황이 초래된 것입니다.”

변희재씨 역시 “팔 가치가 없는 상품까지 그럴듯하게 포장해 대중을 기만하는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라며 ‘지나친 상품화’와 맞물린 신드롬에 대해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불안정한 사회의 한 단면"

끊임없는 불황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 신드롬의 이면에서 작용한다는 견해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 김진세 원장은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흥미 위주의 가십에 관심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도 “신드롬 열기에 동참하며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는다는 것이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자칫 자신과 삶과 무관한 문제에 빠져 정말 중요한 현실의 문제를 놓쳐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컨대 이승엽의 홈런에 대중이 열광하는 동안, 이보다 훨씬 중대한 사회 문제인 ‘청년 실업’ 등에 관한 대안 마련과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신드롬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려’ 일색인 것은 신드롬이 사회의 심리를 투영해내고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본연의 기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강영희씨는 “과거 신드롬이 급변하는 사회 문화 환경에서 대중의 사회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 일종의 ‘좌표’ 역할을 했다면, 최근에는 완전히 마케팅의 수단으로 속류화했다. 이제 하나하나의 신드롬을 분석하며 원인을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3-10-16 14:5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